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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원의 추억의 "프로야구"] 최고령 야구 감독 김응룡

한화 이글스 감독에 전 해태 타이거즈와 삼성 라이온스에서 감독을 역임하면서 10번의 우승신화를 썼던 김응룡 감독이 선임됐다. 내부 승진이니 외부 영입이니 소문이 무성하더니 뜬금없이 8년 이상 현장에서 떠나있던 김응룡 씨를 감독으로 낙점했다.

 김 감독의 감독 복귀를 두고 팬들의 반응은 두 갈래로 엇갈린다. 그의 현장 복귀를 환영하는 팬들이 있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후배들에게 감독 자리를 열어주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지 않느냐는 반대의 의견을 보이는 팬들로 나뉜다.

 심하게는 70이 넘은 나이에 너무 욕심을 부리는 것이 아니냐며 못 마땅해 하는 사람도 있는 실정이다. 어쨌든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고 김응룡 감독이 어떻게 한화 이글스를 이끌어 나갈지를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

 김 감독은 고향이 평안남도로 6.25 사변 때 부산으로 피난을 온 실향민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한국전쟁 발발로 아버지 손에 끌려 1.4후퇴 때 월남하였고 1954년에 부산 개성중학교에서 야구선수 생활을 시작하였다.



 부산상고 졸업 후 당대 최고 팀이었던 농협 팀에 덩치가 너무 커서 둔할 것이라는 이유로 입단이 좌절되자 대한통운에 연습생으로 들어가 뼈를 깎는 노력 끝에 실업야구 최고의 홈런타자로 등극 장종훈, 김현수로 대표되는 연습생 신화의 원조가 된다.

 김 감독의 별명이 ‘코끼리’인데 1루수로 활약하던 선수시절 야수들이 던지는 공을 받아내는 모습이 마치 코끼리가 비스킷을 받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그리고 팬들이 잘 모르는 또 다른 별명이 백곰이었는데 타석에 들어서서 하는 행동이 백곰 같다고 해서 붙여졌다.

 김응룡 하면 잊을 수 없는 추억은 바로 1963년 ‘제 5회 아시아 선수권 야구 대회’ 결승전이다. 본 대회 최다 우승팀인 일본을 3-0으로 격침시켜 한국 야구 사상 처음으로 일본에게 승리를 거둔 시합에서 1회 선취타점, 8회 투런 홈런 등 전타점을 혼자 때려내며 한국야구 역사상 국제대회 처녀 우승의 일등공신이 되면서 국민적 스타가 되었다. 그 후 대한통운이 해체되어 크라운맥주로 바뀌고 다시 한일은행이 크라운 맥주 팀을 인수하는 동안에도 부동의 4번 타자로 활약하게 된다.

 그의 나이 32살에 선수 생활을 접고 김영덕 감독의 뒤를 이어 한일은행 감독으로 자리를 바꾸면서 화려하게 데뷔, 한일은행을 실업 최강 팀으로 이끌어 가며 성공가도를 걷게 된다.

 그러나 82년 프로야구가 창단되면서 그를 불러주는 팀은 아무데도 없었다. 자존심이 상한 그는 미국으로 야구 유학을 떠난다. 그때 만난 사람이 지금 메릴랜드 몽고메리대에서 투수 코치로 활약하고 있는 이덕준 씨다.

 그러다 김동엽 감독의 후임으로 한국프로야구의 외인구단이라 불리던 해태 타이거즈를 맡게 된다. 많은 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83년 팀을 맡은 지 1년 만에 타이거즈를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끄는 쾌거를 이루면서 한국 최고의 명장으로 11번의 한국시리즈 패권을 움켜쥐면서 우승제조 감독이라는 칭호를 얻게 된다. 선수들에게는 호랑이 감독으로 통하는 그지만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서는 퇴장도 불사하는 감독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가 받은 퇴장명령은 18번으로 이 기록 역시 국내 최고이다. 이제 한 평생 야구를 사랑하며 야구를 위해 살아온 인생의 마지막을 야구를 사랑하는 팬들을 위해 온힘을 다하면서 노익장을 과시할 것을 기대하며 그의 귀환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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