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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아무나 작가' 시대의 씁쓸함

어쩌다 세상이 만화판이 되었는지. 성기 부근에 점이 있다는 인터넷 상에 떠도는 전화녹취 말이다. 자신은 붉은 점만 있노라며 병원으로 달려가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행보는 코미디였다. 문제는 검은 점이 아니었는데. 점의 색깔만 밝히면 의혹은 무마되는 것인지.

유부남과 잠을 잤다고 밝히는 여배우의 거친 고백은 이해할 만하다. 아무도 배우에게 수녀의 성스러움을 기대하진 않으니까. 그래도 그렇지.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격조있게 사랑을 나누고 헤어질 수는 없을까. 물론 남녀관계란 게 아니라고 둘 만의 속사정이고 한쪽이 완강하게 부인하면 제삼자야 뭘 어쩌겠냐마는.

그 사이를 비집고 참견하는 작가의 등장은 또 뭘까. 작가는 기본적으로 타고나길 상관기질이 있어야 한다. 작가라면 세상을 비꼬고 풍자해야 하니 불의를 보면 참아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 기질을 잘못 발휘하면 구설수에 휘말리고 만다. '성기에 난 점' 운운하는 대화내용을 녹음했던 베스트셀러 작가의 맞장구는 남녀의 사랑을 천박하게 전락시키고 말았다.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감각적이지 않으면 안 되는 조바심이라도 생겨난 걸까.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세간의 주목을 받던 시인은 알았다. 대중들은 어느 부분에서 자지러지고 관심을 갖는지를. 컴퓨터 성교론으로 감각적으로 재빠르게 편승해서 유명세를 탔던 시인 최영미도 활자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던 모양이었다. 그녀는 'En선생'을 등장시켜 문단의 어둠 속으로 대중들을 끌고 들어가고 말았다.



술집 종업원 '경아'가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버스 안내양 '영자'가 대중의 마음을 강렬하게 파고 들었던 1970년대를 지나 이제 문학은 더 이상 순수문학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게 되어버렸다. 순수문학이라는 게 있기나 한 건지. 지금 내가 고리타분하게 대중문학과 순수문학의 경계를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그걸 논할 방대한 지식도 없을뿐더러 이미 문학도, 독자도 대중문학과 순수문학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말았다.

작가가 되는 문턱은 낮아졌다. 일정 분량의 원고를 채울 수만 있으면 한 편의 소설이 되고 시가 되는 세상이다. 인터넷에 펼쳐진 공간은 분량이라는 것도 제한이 없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고 있고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이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은 청빈해야 할 작가는 보이지 않고 지켜야 할 문학의 본질도 실종됐다. 있다면 사람들의 호기심을 건드리는 이기심만 있을 뿐이다.

문학을 관종의 수단으로 전락시킨 공지영과 김부선의 전화 녹취 내용은 감춰지지 않아서 신뢰가 가는 게 아니라 더 이상 까발릴 것도 없을 정도로 까발려서 수치스러운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만 확인시켜 주었다.

작가는 순수해야 한다. 불의하다고 해서 의도적으로 사람을 파멸시키려는 모의는 작가가 해야 할 몫은 아닌 것 같다. 문학 속에서 독자로 하여금 욕망의 본질 앞에 끌어다놓고 감춰진 본성을 경험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대중에게 비난의 돌멩이를 맞을지언정. 자신의 작품 속에서 뛰놀아야 하지 않을까.


권소희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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