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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산책] ‘마스터피스’의 조건

외국인 예술가나 학자로부터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작을 소개한다면 어떤 작품을 꼽겠는가?”이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뭐라고 대답할까? 꽤 곤혹스러울 것 같다. 자랑스럽게 소개할 작가나 작품이 마땅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현대미술을 초창기부터 회고하는 전시회들이 열리면서 “국민화가들의 걸작 한 자리에!”라는 기사 제목이 단골로 등장한다. 이중섭, 박수근 같은 화가를 일컫는 말이다.

국민화가라? 대체 어느 국민이 이 분들을 ‘국민화가’로 추대했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미술가처럼 거론되고 평가된다.(국민화가라는 명칭이 북한의 ‘인민화가’를 흉내 낸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운데, 그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룬다)

국민화가들의 걸작? 외래어를 동원해서 미안한데, ‘마스터피스’라는 말을 생각해본다. 직역하면 걸작 또는 명작이라는 말인데 실제로는 예술성이나 역사성에서 깊고 넓은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아무 작품이나 ‘마스터피스’라고 부르지 않는다.



한국의 국민화가들의 그림에 ‘걸작’이라는 낱말이 합당한가라는 의문이 든다. 더 나가서는 이 작품들을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걸작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이 강하게 든다. 내 느낌을 말하자면 의문이라기보다 낭패감 또는 열패감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다.

우선 작품의 크기가 그렇다. 그림 자체의 크기도 그렇고, 내용의 크기도 그렇다.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걸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고, 너무 사소하고 개인적이다. 한국 현대사의 엄청난 굴곡과 아픔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아무리 식민지와 전쟁 등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고 하지만 우리 현대미술이 이렇게 왜소하고 앙상한가.

아주 오래 전 일이지만 오랫동안 프랑스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돌아온 교수 한 분이 신문 칼럼에 이중섭의 작품을 ‘삽화 수준’이라고 썼다가 큰 곤욕을 당한 적이 있다. 당시는 이중섭 신화 만들기가 한창 진행되던 때였다. 생각해 보면 그 교수의 언급이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었다. 한 예술가의 대중적 인기가 작품의 예술적 수준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우리 미술계의 현실이 전반적으로 열악했고 궁핍했기 때문에 큰 작품이 나오기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같은 시기에 문학에서는 ‘임꺽정’이나 ‘갑오농민전쟁’ 같은 대하소설이 나왔고, 그 전통이 이어져 ‘토지’ ‘장길산’ ‘태백산맥’ 같은 큰 작품들이 나왔다.

물론 그림이 커야 좋은 것이라는 말이 아니다. 인류 최고의 미술 중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모나리자’도 그리 큰 작품이 아니다. 작품에 담긴 정신의 크기나 역사적 의미 같은 면에서 대표적인 작품을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내 개인적 생각을 말한다면 시대를 조금 뒤로 잡는 아쉬움이 있지만 김환기, 김종영, 백남준, 이우환, 이응로, 유영국 같은 작가들과 작품을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작으로 꼽을 것 같다. 예술성, 시대정신, 역사성 등을 생각할 때 그렇다.

이와 관련해서 미술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대표작가’ 또는 ‘대표작’이라는 관점을 적용해보는 것도 매우 유익할 것 같다. 이런 작업이 역사적 맥락을 파악하고 현재의 상태를 점검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가령 미주 한인문학이나 미술의 대표작가와 작품이라는 질문에 대해 “이 작품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작품이나 작가가 있는가?


장소현 / 미술평론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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