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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교차로] 두 얼굴의 야누스처럼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요즘 매일 하고 산다. 아무개 딸이고 어떤 사람의 아내며 누구 엄마인지 정말 이게 내 참 모습인지 의심하며 산다. 한 때는 근사한 아버지를 갖고 싶었다. 일일 연속극 중에 멋지고 자상한, 돈과 권력을 가진 아버지를 보면 두살 때 세상 떠난 아비 모습이 유령처럼 머리를 스쳐갔다. 존재하지 않는 것은 믿기 어렵다. 그래도 나는 대쪽 같이 수절한 청상과부의 딸이고, 착하지만 고집불통인 한 남자의 아내고 천방지축 개성 독특한 세 아이의 엄마다. 생의 반 이상을 누구에게 뒤질세라 호들갑 떨며 이판사판 딸, 아내, 엄마 노릇하며 살아왔다. 내 인생에 가장 큰 축복이고 모진 숙제였던 어머니도 세상을 떠났다. 고집불통이 똥고집이 돼도 견딜만하고 애들도 결혼해 알콩달콩 잘 사는데 왜 그 이름들이 낯설어지는지. 가을이 깊어지기도 전에 가슴으로 삭풍이 몰아친다. 진짜 내 모습은 어디 가고 누구를 위해 여기까지 살아 왔을까. 정말이지 나는 누구일까?

야노스는 두 얼굴을 가진 신이다. 시작과 끝의 신으로 한해를 시작하는 영어의 1월 재뉴어리(January)는 '야누스의 달'을 의미하는 라틴어 야누아리우스(Januarius)에서 유래했다. 야누스는 원래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문(門)의 수호신이다. 문은 안에 있는 사람이 바깥 세상으로 나가는 통로다. 문이 없으면 고립되고 차단된다. 로마인들은 문은 앞뒤가 없어 두개의 얼굴을 가졌다고 생각했으며 문은 시작을 의미해 온갖 만물과 계절을 주관하는 신으로 숭배했다. 야누스 신전은 평화시에는 문을 닫고 전쟁이 나면 문을 연다. 로물루스가 로마를 세운 뒤 적들이 카피톨리움을 공격했는데 야누스가 뜨거운 샘물을 뿜어내 승리로 이끌었다. 로마인들은 전쟁이 터지면 야누스신전의 문을 열어놓고 야누스가 오기를 기다렸다.

야누스란 단어가 이중성의 상징이 된 것은 영국 철학자 쿠퍼가 그의 저서에서 "한쪽 얼굴로는 억지 미소를 짓고 다른 한 쪽으로 노여움과 분노를 표하는 작가들이 '야누스의 얼굴(Janus-Face)' 만큼 우스꽝스럽다"고 지적한데서 연유한다.

우리는 누구나 탈을 쓰고 산다. 스스로 만든 가면을 벗을 수 없어 두 얼굴의 야노스가 되어 갈등하고 절망한다. 문의 안 쪽에서는 점잖고 교양있던 내 모습이 문 밖으로 나서면 괴물이 되고 낯선 이방인이 된다. 세월을 탓하고 시대를 들먹이고 환경을 경멸하고 상대를 비난하고 타인을 손가락질 하며 내가 쓴 가면을 더 아름답게 치장한다. 탈을 쓰면 얼굴을 감출 수 있어 용감해지고 두려울 것이 없어진다. 탈을 쓴 내 얼굴은 과거와 미래, 일상과 비일상, 평범과 일탈의 모든 허물과 구속을 벗는 탈출구다. 양반탈을 쓰면 양반이 되고 각시탈를 쓰면 각시가 된다.



'야누스 왕 또는 두 얼굴의 인간(Le roi Janus ou l'homme aux deux visages, 18세기경, 채색판화, 카르나발레 미술관 소장)'에는 몸은 하나인데 머리가 둘인 야누스 왕이 양편에서 설득하는 사람들로 인해 갈등하는 모습이 보인다.

죽은 자는 갈등 하지 않는다. 갈등은 살아있는 자가 누리는 생의 찬미다. 영원히 탈을 쓰고 두 얼굴로 산다해도 살아있음은 야누스 샘물처럼 뜨겁게 생을 적신다.

되는 날이 있으면 안 되는 날도 있고, 풀리는 때가 있으면 안 풀리는 시간이 있다. 슬퍼지고 절망하고 다시 일어서는 모든 시간들 중에 그대와 내가 있었다. 전면과 뒤통수에 눈이 달린 야누스처럼 과거는 바라보고 잊어버리고, 앞은 내 눈이 볼 수 있는 아주 먼 곳까지, 내 이름 석자 붙들고 흔들리며 다시 걷는다.


이기희 / 윈드화랑 대표·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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