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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닥터 민을 보내며

주일날이면 언제나 부인과 함께 메이플우드 성당 왼쪽 앞 줄에 앉아 미사를 드리던 그의 모습을 이제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다.

1960년대 초 젊은 과학도 민태방은 미국 유학 길에 오른다. 유학 수속을 하면서 우연히 만난 이화여대생 청미씨와 가까워 졌고 두 사람은 도미 후 각기 다른 주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도 교제를 계속하여 결국 결혼하기에 이른다.

유타대학에서 유기화학을 전공한 민태방은 박사학위 취득 후 미국에 남아 다국적 기업 아메리칸 사이나마이드의 연구원이 되는 길을 택한다. 그가 맡은 연구 프로젝트는 로켓 연료를 개발하는 것으로 군사목적과 우주개발에 필수적인 분야였다.

1970년대 한국은 눈부신 경제성장을 하고 있었으나 유신독재와 장기집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높아가고 있었다. 미국의 카터 대통령은 한국의 독재체제와 인권탄압을 문제 삼아 공공연하게 미군철수 의사를 밝혔으며 실제로 1만7000여 명의 미군을 감축하였다.



한국의 안보를 언제까지나 미군의 손에만 맡길 수 없다고 판단한 박정희 대통령은 비밀리에 원자탄 개발을 추진하였다. 이를 위하여 외국에서 관련분야 연구에 명성이 높은 여러 한인 과학자들을 초빙하였다. 박 대통령이 세계적인 핵물리학자 이휘소 박사에게 여러 차례 친필서신을 보내 도움을 요청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로켓 연료개발 전문가인 민태방 박사도 한국정부의 스카우트 대상이 되었다. 민 박사를 한국으로 초빙하기 위하여 한국의 고위관리들이 여러 차례 민 박사 집을 방문하여 간곡하게 귀국을 권유하였으나 부인의 적극적인 만류로 민 박사의 한국 행은 끝내 실현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는 한국에 부임하는 미군 장성들에게 한국어와 한문을 가르침으로써 나름대로 조국을 위하여 봉사하였다.

한국의 핵무기 자체개발계획은 북한보다 앞서기 시작한 경제력과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완성단계에 가까이 가 있었다. 그러나 1977년 이휘소 박사가 미국에서 의문의 교통사고로 숨지고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부하의 총탄에 맞아 서거하자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은 백지화되고 말았다.

민 박사는 그 후 아메리칸 사이나마이드의 선임연구원으로서 한국인들이 '게브랄티'라고 부르는 종합비타민제 '지브럴티(Gevral-T)'개발을 주도하였다.

풍채 좋고 잘생긴 민박사의 머리통은 유난히 크다. 그는 크고 좋은 그의 두뇌를 아낌없이 사용하여 평생을 연구활동에 전념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머리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남들보다 먼저 피곤해졌던 것 같다.

민 박사가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그가 70을 넘긴 10여 년 전 무렵이었다. 뉴저지 민 박사의 자택 앞 잔디밭에는 사과나무와 벚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부인이 외출에서 돌아와보니 사과나무가 보이지 않았다. 아연실색한 부인이 이유를 물으니 민 박사는 사과가 땅에 떨어져 밟히는 것이 싫어서 나무를 베어버렸노라고 답했다. 민 박사의 기행은 계속되어 얼마 후에는 벚꽃 나무까지 베어버렸다. 근래에는 민 박사가 치킨을 사러 간다며 차를 몰고 나갔다가 길을 잃고 4시간을 헤맨 끝에 경찰관의 안내로 집에 돌아온 적도 있었다.

2018년 10월, 중증치매와 폐렴으로 입원한 민 박사를 치료하던 RWJ 대학병원 의료팀은 부인 청미씨와 아들 존, 딸 캐서린 등 가족과 상의한 후 이미 뇌사상태에 빠진 민 박사의 몸에서 생명연장장치를 제거하였다. 바둑과 골프를 즐기던 한국 유학생 출신의 재미 원로 과학자 닥터 민은 향년 83세를 일기로 풍성한 열매 맺는 사과나무 같은 그의 삶을 마감하였다.


채수호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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