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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칼럼]'차이니스 위스퍼스'의 지혜

박 용 필 / LA 논설고문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제 1위의 경제대국이 됐다고는 하지만 영어에서 만큼은 여전히 찬밥신세다. 19세기 중반 아편전쟁 이후 유럽의 먹잇감이 된 탓인지 '차이니스'는 대체로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가령 '차이니스 카피'는 짝퉁 모조품 '차이니스 머니'는 가짜 돈 '차이니스 투어'는 가이드가 보이고 싶은 곳만 안내하는 관광을 뜻한다.

골드러시와 대륙횡단 철도건설 때 생겨난 말도 있다. '차이나맨스 챈스(Chinaman's chance)'다. 당시 노동자로 유입된 중국인들은 아메리칸 드림은커녕 혹독한 인종차별을 받았다. 그런 터에 무슨 기회가? 역설적이게도 '차이나맨스 챈스'는 기회가 전혀 없다는 뜻으로 통한다. 오죽 차별이 심했으면 이런 표현이 나왔을까.

그런데 중국인들의 지혜에 감탄한 나머지 생겨난 말도 있다. '차이니스 위스퍼스(Chinese whispers)'가 바로 이에 속한다. '중국인들의 귀엣말'이라고 할까. 아무 근거없이 남을 헐뜯거나 남의 말 하기를 좋아하는 경우를 일컫는다.

원래는 어린이들이 즐겼던 놀이로 중국에 파송됐던 선교사들이 미국에 들여와 보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회자가 첫 순번자에게 귓속말을 건네면 이를 옆사람에 차례로 전달하는 게임이다. 처음과 마지막의 메시지가 비슷하거나 같아야 이긴다. 그러나 몇 사람 입과 귀를 거치다 보면 당초의 메시지가 뻥튀겨지거나 변질되기 십상이다.



요즘은 TV 코미디에서도 이 기법을 사용해 시청자들을 웃긴다. 유명인을 앉혀놓고 '아무개가 널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차례로 전하다 보면 마지막 출연자의 입에서 생뚱맞은 얘기가 나온다. '옆사람이 그러는데 아무개가 널 미워한데.' 방청석에선 폭소가 터져나오고.

미국서는 주로 장난감 전화기를 들고 게임을 벌인다. 얼토당토않은 결과가 나오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배꼽을 잡기도 하지만 사회자가 게임이 주는 교훈을 얘기하면 숙연해진다.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먹고 입을 게 풍족하지 않은 중국인들었지만 서양의 선교사들은 이들의 지혜에 감탄을 금치 못했던 모양이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 '차이니스 위스퍼스'를 통해 번지면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지난 연말 한국서 파문을 일으켰던 '청와대 문건'만 해도 그렇다. 발단은 비선 실세라는 인물이 중국집에서 가족모임을 가진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검찰 조사결과 그 가족행사가 몇 사람의 입과 귀를 거치면서 청와대의 '문고리 권력' 3인방도 참석한 '십상시 비밀회동'으로 둔갑했다는 것이다.

오토바이 기사를 시켜 대통령의 동생을 미행했다는 보고서도 황당하기 짝이 없다. 문건에 실명으로 등장하는 미행자는 알고 보니 유명 카페 사장. 졸지에 검찰에 불려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까지 받았다.

'차이니스 위스퍼스'는 교회의 주일학교에서도 가르친다. 좋은 말도 한 입 두 입 거치다 보면 험담으로 바뀐다는 점을 일깨워주기 위해서다. 믿기지는 않지만 가십(gossip)도 출처를 거슬러 올라가면 갓(god)과 맞닿는다고 한다. 신이 알면 얼마나 부아가 치밀까.

정치인들은 그렇다치고. 새해부터는 '차이니스 위스퍼스'를 우리 주변에서부터 몰아내자. 좋은 말만 하며 살아도 앞으로 남은 삶이 살아온 삶보다는 길지는 않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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