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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 지킴이) 월호 한국화 서예원

[토론토 중앙일보] 기사입력 2009/11/04 11:41

왼쪽부터 유경숙, 박영주, 고길자씨

왼쪽부터 유경숙, 박영주, 고길자씨

스승과 제자가 대를 이어 23년째 묵향을 전하고 있는 ‘월호 한국화 서예원’은 토론토 복합문화사회에 한국 전통의 멋을 널리 알리는 문화대사로 빛나는 역할을 감당해왔다.

서예원을 오픈한 월호(月湖) 박영주 화백은 서화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인 이민사회에 선비의 기품을 담은 한국화와 힘찬 붓글씨의 씨앗을 뿌려 아마추어 서화가 수백명을 길러냈고, 박 화백 밑에서 20년간 실력을 쌓은 직계제자 고길자·유경숙 씨는 현재 서예원의 교사로 강단을 지키고 있다.

열 살 미만 어린이부터 여든을 넘긴 노인에 이르기까지 붓을 잡고 한글을 쓰며 한국화를 그리는 작업을 이 땅에서 쉼없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서예원의 3인방에게 한국화와 서예의 멋과 매력을 들어봤다.


월호 박영주
화려한 이력의 겸손한 예술가

‘호수에 비친 달’로 불리는 월호(月湖) 박영주 화백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학과에 재학 하던 1960년에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동양화 입선, 1962년에 전국미술전 동양화 서예에 입선한 실력파다.

월호는 대학시절 지도교수이며 동양화 분야에서 대가들을 길러낸 한국화단의 거목인 월전 장우성 화백이 지어준 이름이다. 대학생 박영주의 고요한 성품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졸업과 동시에 보성여고 미술교사로 채용되었고, 박 화백은 은사 월전 선생의 그림에 심취해 미술교사로 재직한 10년간 월급을 몽땅 털어 넣으면서 월전의 개인레슨을 받았다.

당시 추상화의 열풍으로 전통적인 동양화에 대한 관심이 적어졌지만, 박 화백은 동양화의 은은하고 깊은 멋에 빠져있었다.

기자가 동양화와 한국화를 혼동하자 박 화백은 “내가 대학에 다닐 때는 한국·중국·일본의 그림을 동양화로 통칭했다. 이후 동양화의 재료는 같지만 3국의 화풍이 뚜렷이 구별된다는 점에서 한국화로 세분화됐다”고 설명했다.

한문을 일필휘지로 써 내려가는 그의 서예 실력 역시 대학 때 입선으로 이미 증명됐다. 서예는 원곡 김기승 선생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시·서·화 3절이 조화를 이루는 한국화 화가의 길을 걷던 그는 1972년 남편 김태진 씨와 함께 캐나다 토론토로 이민하면서 삶에 일대 변화를 겪는다.

편의점 안주인에서 교사로

붓을 잡던 고운 손의 화가는 다른 이민 여성들처럼 남편을 도와 편의점 일에 매달리며 가게 안주인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바쁜 이민생활로 억눌려있던 그의 재능을 밖으로 끄집어 낸 사람은 이들 부부가 출석하던 한인연합교회의 이상철 담임목사였다. 새 교우 심방을 온 이 목사는 그의 작품에 큰 감명을 받고 “한인사회에 꼭 필요한 문화 프로그램”이라며 서예교실을 적극 권했다.

우선 시간 내기도 힘들었지만, 나이든 학생들을 잘 가르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이 목사는 10여년간 지속적으로 서예 지도를 권유했고, 숙고에 숙고를 거듭하던 박 화백은 1986년 5월 마침내 한인연합교회 친교실에 ‘월호 서예교실’을 오픈했다.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한국적인 것에 목말라하던 사람들로 서예교실은 첫 시간에 50여명이 몰렸고, 전성기 때는 77명까지 출석했다.

박 화백은 “그렇게 많이 모일 줄은 몰랐다. 테이블을 다닥다닥 붙여놓은 친교실에서 모두들 즐겁게 먹을 갈고 붓을 잡았다. 첫해에 바로 전시회를 할 정도로 열성적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봄·가을 클래스로 진행되는 서예교실에 대한 소문이 동포사회에 무성해지면서 세 번째 클래스부터 한인여성회가 공동 후원했다.

서예교실을 찾는 학생들은 마음에서 우러난 열정으로 밤을 새워가며 붓글씨를 연습해 왔고, 그 열정을 높이 산 박 화백은 2년마다 정기적으로 전시회를 개최했다.

박 화백은 “전시회에 혹시 관람자가 적지 않을까 걱정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자녀들은 어머니, 아버지의 솜씨에 감탄하며 더욱 존경하는 화목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정말 보기좋은 광경들이었다”고 말했다.


민간문화 대사로 바빴던 20년

서예교실에서 가르치는 틈틈이 작품에 전념해온 박 화백은 1989년 OSIE 갤러리에서 제1회 박영주 작품전을 열었다. 박 화백은 “당시 44점을 출품했는데 전시회가 끝나기도 전에 완판됐다. 지인 중 한명은 ‘교민잔치’라고 표현했다. 나 자신도 깜짝놀랐다”며 활짝 웃었다.

그의 부지런한 성품은 문화대사로 동분서주한 그동안의 족적으로 대변된다. 서예교실을 오픈한 1986년 캐나다한국예술진흥협회 창립멤버로 참여했고, 1991년 소수민족축제인 캐라반에서 서예교실 학생들과 9일간의 축제기간 동안 외국 관람객들에게 붓글씨 시범으로 한국을 알렸다. 서예 시범은 캐라반이 폐지된 해까지 계속됐고, 붓글씨 이름을 선물로 받은 외국인들이 내놓은 기부금들은 캐나다한인양자회, 토론토한인회관 건립기금, 성인장애인공동체 등에 성금으로 전달했다.

1991년 10월에는 로얄온타리오박물관(ROM)의 ‘포커스 오브 코리아(Focus of Korea)’와 토론토대학 오픈하우스 행사에 초청받아 주류사회에 서화를 소개했다. ROM 도서관에는 박 화백의 한글서예 작품 ‘동동’이 영구 소장돼 있다.

1992년 캐나다한인미술협회 창립에 기여하고, 1996년-97년 미협 회장을 지낸 박 화백은 매년 미협전에 참여하고 있다. 2000년에는 제2회 개인전과 화집을 출간했다.

2001년 웨스턴온타리오대학 ‘한국의 밤’에서 관람객들의 탄성을 이끌어 낸 박 화백은 2003년 제3회 개인전을 열었으며 2005년에는 토론토 아트 엑스포(Toronto Art Expo)에도 참가했다.

박 화백의 왕성한 예술활동은 2007년 제작된 WIN(Women's Intercultural Network)의 ‘전통과 변화(Traditions and Transitions)’ DVD에 담겨있다. 7개국 이민여성의 이민 전후의 삶을 다룬 이 DVD는 2008년 고등학교와 컬리지 등에서 교재로 채택되면서 국제여성의 날에 온주교육부장관의 표창을 받았다.


2006년 월호 한국화 서예원 개명

서화교실 창립 20주년인 2006년에는 ‘월호 서예교실’을 ‘월호 한국화 서예원’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20년간 꾸준히 수업에 참가한 고길자·김덕자·문주옥·박금자·유경숙·윤봉림·정인형· 함정자 등 수제자 8명에게 교사자격증을 수여했다.

박 화백은 “교사자격증에 무슨 거창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20년간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실력을 연마한 분들에게 감사와 격려를 드리고 싶었다. 8명 모두 실력이 출중하다”고 말했다.

혹시 박 화백 밑에서 서예를 배운 외국인 제자는 없을까? 박 화백은 “외국인 학생들도 있었지만, 한글도 모르고 또 붓에 몸의 기운을 담아 선을 자유자재로 그리기까지 10년이 걸리는 등 많은 인내를 요구해 꾸준히 배우는 것을 어려워했다. 그러나 한국화와 서예에 대한 관심은 매우 높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한자로 서예를 배워 국전에서 입상까지 한 박 화백이 한글서예로 전환한 배경도 궁금했다.

“작품을 본 비한인들이 중국작가냐고 물었고, 중국 관람객들은 은근히 한자에 대해 긍지를 보이더라. 한자를 쓰는 이유를 명쾌히 설명하기도 힘들고, 또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한글을 널리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미술 교사 시절에 이미 학생들에게 한글서예를 가르친 경험이 있다. 당시 학생들은 한문을 배우지 않은 세대여서 박 화백은 한글로 붓글씨를 가르쳤고, 자녀의 전시회에 초청받은 부모들은 할아버지 서예가를 상상하고 왔다가 젊은 미인 선생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2006년 창립20주년 기념식 후 제자들에게 수업의 일부를 맡겼던 박 화백은 2009년부터는 서예원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개인 작품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다솔(茶率) 고길자

불교신자인 고길자 씨는 ‘차와 선’이라는 뜻의 다솔(茶率)이 호다. 1975년 이민한 그는 메마른 이민생활에 갈증을 느끼다가 1986년 신문에서 서예교실 소식을 듣고 연합교실로 달려갔다.

스승의 가르침을 스폰지처럼 빨아들인 그는 해를 거듭할수록 일취월장하는 실력을 뽐냈다. 다솔은 “첫 시간 벼루에 먹을 갈면서 바로 이것이라는 느낌이 왔다. 한지와 마주앉아 사군자를 치고 시를 쓰고 묵상을 하는 그 시간이 참 좋았다”고 회상했다.

교사로 강단에 선 그는 스승의 뒤를 이어 우리문화의 혼을 계승하는 일에 큰 사명감을 갖고 있다. 2006년 토론토총영사관에서 개인전시회를 가졌고, 개인화집도 3집까지 발간했다.

영주 부석사 근일 큰스님의 선시를 즐겨 적는 그의 화집은 한글·영어·한문으로 설명돼 있다.

다솔은 “영주 부석사를 찾는 국내외의 수많은 방문객들에게 전해진 첫째, 두 번째 화집이 순식간에 동이 났고, 그 열기에 3집까지 내게 됐다. 외국인들의 반응이 너무도 뜨거운데 놀랐고 한국의 선시와 서화를 세계적으로 알릴 수 있어 보람이 크다. 수 천 권의 화집이 전 세계에 퍼져있다. 선시를 영문으로 번역하는 작업은 고교 영어 선생인 딸을 포함해 세 자녀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것이다”고 설명했다.

다솔의 자녀들은 엄마의 열렬한 후원자이고, 외국 사위 역시 ‘원더풀 장모’라며 엄지손가락을 세운다. 집안에서 아내가 화선지를 꺼내면 20여년간 기꺼이 옆에서 먹물을 갈아주던 남편 최명수 씨는 이제 그녀의 학생이다. 8살 때 외할머니 밑에서 서예를 시작한 외손녀(10·클레어)는 내년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다솔은 “서예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인격수양 그 자체다. 현재 가르치고 있는 학생 중 80대 어르신이 세 분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은퇴 후 시작하는 분들도 많다. 누구든 환영한다”며 동참을 권했다. 다솔은 이민 후 가장 큰 인연으로 스승 월호 선생과의 만남을 꼽는다.

한솔 유경숙

1972년 이민한 한솔(큰 소나무) 유경숙 씨는 스승 월호와 비슷한 동선을 걸어왔다. 월호와 같은 교회를 섬기며 서예교실 첫 시간부터 참가, 서예교실 총무와 부회장으로 봉사한 한솔은 1993년 중앙일보주최 중앙대상공모전에서 동상을 받았고 월호와 함께 캐나다한국예술진흥협회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솔은 “취미로 시작했다가 점차 그 매력에 빠져들게 됐다. 서예교실 초기 동포사회의 뜨거운 서화 열정으로 더 신나게 달려온 것 같다”고 말했다.

중·고등학교 때의 습자시간을 추억삼아 기초부터 탄탄히 실력을 쌓아온 그 역시 2006년 창립20주년 기념식에서 교사자격증을 수여받고 지금은 서예원 강단을 지키고 있다.

서화의 매력에 대해 한솔은 “잡다한 생각에서 벗어나 집중할 수 있고, 나만의 공간에서 꽃을 피우고 작은 새를 가지에 앉혀 놓았을 때 많은 시간과 노력 후에 작품이 완성되면 그 성취감이 크다. 더욱이 전시회에서 전시된 자기의 그림을 보면서 흡족해 하며 화가된 기분도 드는데 사물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고 그런 것이 화가의 눈이 아닐까 생각한다. 노년에 멋진 취미생활을 한다는 자부심을 갖는 분들도 많다”고 말했다.

현재 학생 중에는 윈저에서 5시간 이상의 버스여행을 하면서 참석하는 분 등 너무 열성이어서 긴장될 때가 있다. 배울 때는 몰랐는데 막상 교사의 입장이 되고 보니 학생들 앞에서 무척 떨린다는 한솔은 하나라도 더 잘 가르쳐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집에서 더 많이 연습하고 연구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작품전시회는 가족축제

박 화백은 딸만 넷인 딸부자 엄마다. 딸 두 명(김양희, 김지희)과 외손녀 김경미는 이미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 타고난 재능을 인정받았다. 남편 김태진 씨도 2-3차례 서예 작품을 출품했다.

다솔 고 선생도 남편 최명수 씨와 외손녀 클레어를 가르치고 있고, 한솔 유 선생은 딸(장연수)을 제자로 양성하고 있다. 손재주가 남다른 최명수 씨와 한솔의 남편 장진무 씨는 2년마다 열리는 전시회에서 작품의 액자 작업과 조명, 작품 배열 등 궂은일을 도맡아 온 숨은 봉사자들이다.

박 화백은 “아마추어 서화가로 멋진 작품을 선보이는 회원들이 모두 자녀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가족들은 전시회에서 이번 해에는 누가 작품을 가질지 의논하며 즐거운 축제의 시간을 갖고 있다”며 화목한 분위기를 전했다.

서화로 이야기꽃을 피운 3인방은 자연에서 채취한 천연재료를 물감으로 쓰는 채색화에 대해서도 자랑했다. 분꽃과 나뭇잎 등 자연물감으로 표현하는 채색화는 서양 수채화와는 또 다른 은은하고 풍부한 표현이 담겨있다며 혹시 한국 채색화를 만날 기회를 갖는다면 세심하게 살펴보라고 당부했다.

박 화백은 “제자들의 뜨거운 열정에 밀려 여기까지 왔다. 그동안 많은 사랑과 관심을 쏟아주신 언론들과 동포들에게도 이번 기회를 빌려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월호 한국화 서예원은 핀치/영 스트릿 웨스트 인근 커뮤니티(7 Edithvale St.)에 위치해 있으며, 매주 화요일 오전9시30분-오전11시30분에 아침반(유경숙 지도), 오후7시-오후8시30분 저녁반(고길자 지도)이 있다. 클라스는 봄(2월-4월)과 가을(9월-11월)에 진행된다.

에글링턴/오크우드 인근 불교회관에서도 매주 토요일 오후1시30분-3시30분 서예수업(고길자 지도)이 있다. 2년마다 정기적으로 전시회를 갖고 있는 서예원은 2010년 4월 제10회 전시회를 계획하고 있다.

(오미자 기자 michelle@joongangcanad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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