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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LA의 100년 된 아파트들

1920년대 LA 경제는 호황이었다. 제조업, 석유산업, 영화와 무역업이 부흥했고 도시는 화려하게 장식된 건축물들로 뒤덮였다. LA시청과 TCL 차이니스 시어터도 이때 완공됐다. 특히 고전적인 직선미를 강조하며 크림색과 갈색의 조화를 중시한 아르데코 스타일의 아파트는 석유 부자, 갱스터, 영화배우들의 사랑을 받았다. 유명 건축가들이 동부와 유럽에서 LA로 몰려들었던 시기였다. 이후 1929년의 대공황을 비롯해 숱한 세월을 보냈지만 이때 지어진 '100년 아파트'들은 LA 곳곳에서 지금도 건재함을 잃지 않고 있다.

한인타운 윌셔와 베렌도의 '더 탈마지'는 무성영화 여배우 노마 탈마지의 이름을 딴 아파트로 1924년 완공됐다. 7가 선상의 '윈저 아파트'는 튜더 왕조 스타일로 1926년 지어진 뒤 2013년 리뉴얼돼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또 6가와 노먼디의 '더 애비'도 1927년 완성된 뒤 2016년 리뉴얼됐으며, 선셋 타워 호텔을 디자인한 건축가 르랜드 브라이언트가 1929년 세라노 선상에 완성한 '세인트 제르멘 아파트'는 건축학적 가치까지 인정받고 있다.

한인타운 바깥에도 스페인 스타일을 살린 할리우드의 '빌라 보니타', 지중해식 아르데코 분위기인 샌타모니카의 '더 샤먼트', 국립사적지로 등재된 할리우드 프리웨이 인근의 '할리웃 타워'가 건재하다. 프랑스의 성을 표방한 행콕파크의 '엘 로열'은 로레타 영, 클라크 게이블에 이어 니콜라스 케이지, 케이티 홈즈 등 당대의 영화배우들이 사랑한 아파트였다.

시민들은 지금도 이들 클래식 아파트에 깊은 애정을 보내고 있다. 윌셔에 1924년 완공된 '게이로드 아파트'는 현재 입주민의 30% 가량이 10년 이상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멀지 않은 곳의 '윌셔 로열'은 최근 LA 시민 2000여명을 대상으로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45%의 응답률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렌트비 1500달러에 프랑스 보자르 양식의 540스퀘어피트 아파트를 풀장과 함께 즐길 수 있는데 누가 마다할까.



100년 아파트에 살고 있는 한 지인은 휴머니즘이 느껴지는 아날로그적인 감성에 매료됐다고 말했다. 1922년 피코 선상에 완공된 작은 아파트인데 겉보기에 허름하고, 주차장은 좁지만 최근 리뉴얼해 내부는 깨끗하고, 렌트비는 신축 아파트보다 싸지만 면적은 넓다.

이에 비하면 요즘 신축되는 아파트들은 '닭장' 같다. 작게는 300~400스퀘어피트로 좁고, 작은 집 '타이니(tiny) 하우스'라고 포장하기엔 렌트비가 너무 비싸다. 매일 신기록을 갱신하는 증시와 50년래 최저인 실업률 등 경제 상황만 놓고 보면 100년 아파트가 지어졌던 시기에 결코 뒤지지 않는데 전혀 다른 아파트들이 양산되고 있는 요즘이다.

1970~80년대 일본에서 유행했던 음악 장르인 '시티 팝'은 세련된 음색으로 지금도 빠져드는 이들이 많다. 여러 장르들의 장점을 뽑아 만들어 특징은 다소 모호하지만 경제 호황기에 정상급 세션들이 참여한 수준 높은 연주와 완성도 높은 사운드는 지금 들어 봐도 일품이다. 혹자는 시티 팝을 들으면 화려한 네온사인이 빛나는 도쿄의 밤거리를 거니는 기분이라고 말한다. LA의 100년 아파트가 지친 현대인에게 숨 쉴 공간을 마련해 주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요즘 신축 아파트들은 미래에 어떤 의미를 전해줄 수 있을까. 어떤 울림이나 영감 같은 것을 후대에 전달할 수는 있을까. 그저 '인간성은 외면한 채 탐욕스럽기만 했던 자본주의의 패착'이란 설명과 함께 박물관 구석에서 관람객들의 외면을 받는 정도가 적합할 것 같다.


류정일 / 경제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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