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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정치적 '딱지' 붙이기

정치 용어 중 '레이블링(labeling)'이란 단어가 있다.

원래 뜻은 사람이나 사물, 현상 등을 짧은 단어로 묘사하는 것이다. 중범죄를 저지른 이를 '흉악범'이라고 부르는 식이다.

한국말로는 '딱지 붙이기'다.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이들을 시쳇말로 '수구 꼴통'이나 '종북 좌빨'로 매도하는 것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딱지 붙이기는 내용이나 성격, 의미 따위를 밝혀 정하는 것을 뜻하는 '규정'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정계의 딱지 붙이기는 딱지를 붙이는 측의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가치중립적인 규정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과 일본의 갈등이 비등점을 향해 끓기 시작하자 '토착 왜구'란 딱지가 등장했다. 한국민의 여론을 양분한 '조국 대전'과 관련해선 '강남 좌파'와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을 패러디한 '조로남불'이란 딱지가 나왔다.

정치에서 딱지 붙이기는 매우 중요한 테크닉이다. 입에 잘 붙는 딱지는 지지 세력 규합을 위한 깃발이자 정적의 약점을 찌르는 창이다. 또, 내 편도 네 편도 아닌 중도파에겐 양자택일, 정확히는 내 편이 되길 강요하는 압력이기도 하다.

의도가 선명하기에 딱지는 과장되기 마련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 보도를 '가짜 뉴스'란 말로 일축한다. 가짜 뉴스에 적잖이 시달렸다고 해도 설마 그에게 불리한 뉴스가 모두 가짜겠는가. 그럼에도 '가짜 뉴스' 딱지는 트럼프에게 든든한 방패가 됐다. 그의 열렬한 지지자들이 트럼프에 관한 불편한 뉴스를 접할 때, 가짜 뉴스라고 치부하게 됐기 때문이다.

딱지 붙이기는 이분법적 사고를 강요한다. 보수적인 이가 모두 꼴통이거나 진보적인 이가 모조리 종북일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딱지를 붙이는 이들은 의도적으로 양극단의 대립구도를 만들어 중도파에게 내 편인지 아닌지를 선택하도록 종용한다.

딱지 붙이기에도 장점은 있다. 복잡한 사안을 단순화시켜 명쾌한 결론을 내려준다는 점이다.

지난 1992년 대선 당시, 빌 클린턴은 재선에 도전한 조지 H. W. 부시에게 '경제에 관한 한 바보'란 딱지를 붙였다. 클린턴은 이 딱지로 캠페인 기간 내내 큰 효과를 봤고 결국 백악관 입성에 성공했다.

이처럼 과거엔 촌철살인의 함축을 담은 딱지도 종종 있었건만 언젠가부터 무책임한 선동, 독기 서린 저주를 담은 딱지 붙이기가 지구촌 곳곳에서 유행하고 있다.

딱지 붙이기는 정치인들만의 책임이 아니다. 일상에서도 딱지 붙이기는 흔하다. 가정, 학교, 직장, 동아리 등 많은 집단의 구성원들이 은연중에 다른 이에게 딱지를 붙인다. 특히 누군가에 의해 붙은 악의적인 딱지는 주홍글씨, 족쇄나 마찬가지다.

어쩌면 딱지 붙이기는 인간의 본성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본성에만 충실하면 본질을 놓친다. 대부분의 딱지는 나름의 이유, 개연성을 담지만 듣는 이의 독자적 판단을 흐리게 한다. 딱지에 꽂히면 달이 아닌,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게 되는 식이다.

인류가 딱지 붙이기에서 자유로워질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붙이는 딱지가 우리의 편견과 선입견,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이에 대한 막연한 적개심을 최대한 끌어내려는, 악의적 주술이 담긴 부적일 수도 있다는 점은 늘 기억해야 한다.

사고와 분석 과정을 생략한 많은 이들이 딱지에 열광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려주는 교훈은 인류 역사에 차고 넘친다.


임상환 / OC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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