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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화장실의 사회학] '공개된 비밀장소'…사생활이냐 공공성이냐

한미 '남녀 공용화장실' 논란
미국…공공성.남녀평등 강조
한국…극악한 범죄예방 신경

최근 미국과 한국의 주요 이슈는 '화장실'이다. 미국에서 화장실은 사람들의 정치적 입장을 말해주는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을 하고 있다. 진보와 보수는 최근 '공립학교 성중립 화장실'을 두고 격돌 중이다. 한국에서는 '강남역 화장실'로 대변되는 묻지마 살인의 공포가 휩쓸고 있다. 공중화장실은 묘한 장소다.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는 공공적 공간이면서 가장 사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모순적 정체성. 그 사회의 화장실을 알면 그 사회의 단면이 보인다. '최후의 개인공간'인 화장실이 담고 있는 사회적 함의를 알아봤다.

▶밑이 보인다= 영화 '그래비티'의 주연이었던 샌드라 불럭은 2005년 인터뷰에서 유명인으로서 불편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시카고에 있는 한 클럽 화장실에 앉아 있는데 카메라가 발 밑으로 들어왔을 때"라고 답했다. 한국식 화장실이 익숙한 사람이라면 샌드라 불럭의 사연을 듣는 도중에 의문점이 생긴다. 어떻게 화장실 문 밑으로 카메라가 들어올 만한 틈이 있을까?

이는 바닥까지 완전히 막아버리지 않고 발을 보이게 만든 미국식 화장실의 특징 때문이다. 미국 공중화장실은 넓고 튼튼한 모양새이지만, 빈틈 투성이다. 문 아래 틈으로 사용자의 다리가 훤히 드러난다. 성인이 기어들어가고 나갈 수 있을 정도로 뻥 뚫렸다. 문 옆도 슬쩍 보면 다 보일 정도다.

도대체 왜?



사생활(프라이버시)을 중시하는 미국에서 화장실의 빈 틈은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미국 최대의 커뮤니티사이트 중 하나인 레딧(reddit)은 1년 전부터 왜 화장실에 넓은 틈이 필요한지에 대한 토론을 벌이고 있다.

가장 추천을 많이 받은 대답은 "화장실 안에서 하는 불법적(마약.성폭행 등) 행동을 방지하기 위해"였다. 다시 말해 바깥에서 사람이 들여다 볼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미국서 '공중'화장실은 사생활보다 '공공성'이 우선이라는 사회적 합의다.

▶노크하면 실례= 적당한 '공공성'은 오히려 프라이버시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화장실 밑과 옆의 빈 틈은 밖의 사람이 내부 사람과 어떤 종류의 소통도 하지 않고 사람이 있나를 확인할 수 있다.

한국에서 어릴 적 배우고, 누구나 하는 노크는 사실 내부자의 배변활동을 방해한다. 즉 화장실 안 사람은 어떤 방해(노크 소리)도 받지 않고 사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다.

▶평등의 잣대= 화장실은 한 사회가 얼마나 평등한지 보여주기도 한다. 남자화장실의 기저귀 교환대는 양성평등의 상징이다. 2014년 가주 의회는 남녀 화장실 모두에 기저귀 교환대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비록 브라운 주지사의 거부로 이 법은 시행되지 못했다. 하지만 미국은 '아이의 기저귀 정도'는 남자가 할 수 있다는 인식이 이미 저변에 깔려 있고, '양성평등'을 자랑하려는 대형 소매업체들이 남자화장실의 기저귀 교환대를 늘려가는 추세다.

사실 한국은 미국보다 먼저 2010년에 비슷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권고사항에 불과해서 실효성은 거의 없다. 아버지가 육아를 하는 프로그램이 최고의 인기를 끌어도, 여전히 한국은 남자가 육아를 하기 싫어하는 사회임을 화장실만 봐도 알 수 있다.

▶'섞자' vs '따로'= 최근 공중화장실에 대한 사회적 함의는 한미가 극명하게 다른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서로 다른 '성별'이 뒤섞이는 것에 대한 문제다.

노스캐롤라이나에서는 성전환 학생의 화장실 사용을 제한하는 법이 통과됐고 이는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갈등으로 이어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성전환 학생들이 본인의 선택에 따른 성별로 화장실 및 라커룸을 사용할 수 있는 지침을 모든 공립학교에 전달했다. LA통합교육구(LAUSD)는 성중립 화장실 사용을 적극 지지했다.

한편 한국에서는 강남역 묻지마 살인 사건 이후 남녀 공용화장실이 극악한 사건의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강남역 부근과 같은 유흥가 밀집 지역은 30% 이상이 남녀 공용 화장실을 이용하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공용 화장실이 강력범죄의 온상으로 지목되자 서울시는 화장실을 전수 조사하고 분리 화장실을 독려하기로 결정했다.

화장실은 때론 더럽게 느껴지지만, 실상은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공간이다. 매일 몇 차례씩 사용하는 공간인 만큼 사회의 변화가 고스란히 화장실 안에 투영된다. 미국과 한국에서 화장실을 모두 체험한 우리 한인들로서는 요즘 한미 양국의 '화장실 논쟁'이 흥미롭다.


조원희 기자 cho.wonhee@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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