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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감사’ 고도의 훈련이 필요하다

미국 서부 개척시대에 미시시피 3부작으로 통칭되는 《톰소여의 모험》, 《미시시피강의 추억》, 《허클베리핀의 모험》 등으로 일약 스타가 된 마크 트웨인은 한때 한 단어에 5달러를 받을 정도로 그의 필력은 국민 작가로 불릴 만큼 인기가 있었다. 어느 날 그를 존경하는 독자가 5달러를 동봉하면서 가장 귀하게 생각하는 한 단어를 알려주면 자신의 평생 교훈으로 간직하며 살겠다는 편지를 받은 적 있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답장을 적었다. 그 단어는 ‘감사(thanks)’였다. 감사는 할 수 있는 형편이 되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고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정도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감사할 수 있는 인생은 여유가 있어야 하며, 긍정적이어야 하며, 주위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감사는 원인과 결과를 초월하는 그 자체다

감사는 사건이나 정황의 결과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요소를 초월한다. 감사는 원인과 결과 사이에서 있는 긴장감 강화할 수도 있고 완화할 수도 있다. 그 자체로서 동력이 있기 때문에 상황을 역동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열대 우림지역인 아마존 유역이 사하라 사막 지대보다 비가 많은 이유는 그곳에 비가 많이 내릴 필요충분조건인 수풀 밀집 지대라는 점이다. 비가 많아서 우림 지역이 되었다는 것보다 비가 필요한 수풀이 많기 때문에 비 내릴 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의 쿠부치(庫布其) 사막의 녹화사업 성공은 그 지역 일대의 강수량까지 변화시키고 있다는 보고가 있다.

다니엘은 감사할 줄 알았던 성경의 인물이었다. 그가 했던 감사란 그 결과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선제적 믿음의 표현도 아니었으며 그런 결과가 바뀌길 소원해서 가지는 간절함과는 거리가 있다. 성경의 진술에 의하면, 이미 원인과 결과를 뛰어넘는 감사 그 자체였다.



단 6:10b --“그는 늘 하듯이, 하루에 세 번씩 그의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감사를 드렸다.

실제로 원어를 곰곰이 살펴보자면, ‘민 카드마(מִן־קַדְמַ֖ת)’는 평상시 했던 것보다 “더 많이 감사했다”가 된다. 이미 법정 구속뿐만 아니라 사형선고까지 내려진 상황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 모습이다. 이러한 요동치지 않는 모습이 감사의 표현으로 나왔음을 알 수 있게 된다. 흔히 인간의 성정은 보은(payback) 차원의 표현으로서 감사가 이뤄지지만, 신앙의 인물들이 감사한 것은 현실감각이나 인지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감사’ 그 자체가 더욱 부각될 뿐이다.

목회 현장에서도 비슷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90이 넘은 어느 권사님이 자신의 손녀를 앞세워 정해진 새벽 시간에 교회 건물 주위를 서너 바퀴 차로 돌면서 기도하고 가곤 하신다. “무슨 기도를 하세요?” 물으니, “너무 늦게 주님을 알고 나서 이제 늙고 힘없는 나이에 교회 봉사는 생각조차 못 하니 드릴 것이라곤 감사한 마음밖에 없다면서 그거라도 주님 앞에 내어 드립니다”라고 하지 않는가!. 아무런 조건도 아닐뿐더러 어떤 결과에 대한 고백이나 표현의 차원을 훨씬 넘어선다. 다만 감사 그 자체만 주님 앞에 드러나는 순수 그 자체다.

감사는 신성(神性)이다.

감사는 인간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마음이 아니다. ‘감사합니다’의 고어 표현은 ‘고맙습니다’ 이며, 이는 ‘고마(神)’는 하나님을 뜻한다. 이 표현은 이미 하나님께로부터 감사한 마음이 인간에게 유전적으로 들어 있는 신성이다. 바울은 말세의 특징을 감사함이 없는 때라고 단정 짓고 있다 (딤후3). 감사는 겸손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감사할 여유가 없는 것은 스스로 높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자리에 서는 것일 뿐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면서 너희도 (이미 받은 감사로써) 이렇게 하라고 당부하셨는데(요 13:12 이하) 정작 제자들이 다른 사람들의 안중에도 없는 무감사의 사람이라면 비그리스도인 일 것이다.

응답보다 감사를 구하라

우리 형질 속에 이미 감사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것과도 일맥상통하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간절하다. 서양 문화에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thank you & thank you)’ 는 흔한 일상어이다. 영혼 없는 메시지는 의미 없는 소음일 뿐이다. 그러나 동양의 지극정성과 진정성이 감사함으로 표현된다면 각박한 팬데믹 시대에 넉넉한 은혜의 시대가 되고도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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