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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딥톡] "집 사는 건 포기했다" 대리도 과장도 주식광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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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20/08/02 13:02

부동산 막히고 암호화폐도 끝물
투자자예탁금 사상 첫 50조 넘기도
“점심 때 다들 코 박고 모바일 투자”
‘서학개미’ ‘주린이’ ‘천슬라’ 신조어



7월31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현황판에 표시된 코스피 종가. 연합뉴스





대기업 과장 이정준(37·가명) 씨는 결혼 후 7년 만에 다시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스마트폰에 다시 모바일 주식거래앱(MTS)을 깔고 전기차 관련 주식과 회사 동료가 추천해 주는 코스닥 종목 3~4개도 샀다. 이 씨는 “코로나가 터진 뒤 지난 3월에 주가가 회복되면서 주변에 50% 이상 수익을 본 사람들이 속속 생겨났다. 이러다가 나만 뒤처지는 거 아닌가 싶어서 하게 됐는데, 요즘에 정말 주식 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돈 불리려면 주식뿐"
직장가에 ‘주식 열풍’이 거세다. 3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주식을 사기 위한 대기 자금인 투자자예탁금은 지난 6월 26일 사상 처음으로 50조원을 돌파했다. 인터파크도서에선 올해 2월부터 7월 말까지 재테크·투자 분야 도서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배(102%) 넘게 팔렸다. 코로나 하락장에서 무섭게 매수에 나선 개인투자자들의 ‘동학개미 운동’을 필두로, 외국 주식을 사 모으는 ‘서학개미’, 주식투자 초보자를 가리키는 ‘주린이’, 주당 1000달러를 넘은 테슬라를 가리키는 ‘천슬라’와 ‘이천슬라’등 넘쳐나는 신조어들이 주식 열풍 시대를 실감케 한다.

주식 열풍의 가장 큰 배경은 마땅한 투자처가 없다는 것이다.
“집을 살 수 있었다면 주식은 안 했을 거예요. 하지만 불과 2년 만에 성동구나 마포구 쪽에 생각했던 아파트들이 너무 오른 데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까지 낮아져 대출받을 수 있는 금액이 줄어 집은 포기했어요. 코인(암호화폐)도 한물가고, 전세 살면서 모은 돈으로 할 수 있는 게 주식밖에 없더라고요.” 지난 2018년 결혼한 심 모(32) 과장의 얘기다. 실제 은행 예금 금리는 지난 6월 말 드디어 ‘0%’ 대로 주저앉았고, 금 투자도 ‘너무 많이 올랐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오르는 게 눈에 보이는 주식으로 돈이 몰릴 수밖에 없다.

"점심 먹으며 다들 스마트폰에 코 박아"
대세로 자리 잡은 주식 투자는 직장가의 일상마저 바꿔놓고 있다.
“출근해서 아침에 장 시작되면 9시 10분쯤 한번, 잠깐 화장실 갈 때 5분, 점심시간, 장 끝나고 나서 담배 피우거나 커피 마실 때 5분, 이 정도로 짬짬이 하는 거죠.”
국내 5대 대기업에 근무하는 김 모 차장은 “점심을 먹으면서 다들 스마트폰에 얼굴을 박고 있는 것 같다. 뭘 하든 모이면 주식 얘기”라고 전했다. 증권가에선 점심시간을 활용한 직장인들 때문에 12시~오후 1시 30분 사이 주식 거래량이 늘어났다는 말이 나온다.

인기 종목은 아무래도 코로나19 이후 부상한 ‘친환경·바이오·언택트(비대면)’ 관련주다. 수소차 선두기업인 현대차와 전기차 배터리 기업인 LG화학·삼성SDI, 바이오 대표주인 삼성바이오로직스·셀트리온, 언택트 관련주인 삼성전자·SK하이닉스·네이버·카카오 등에 개인 매수세가 쏠리고 있다.



개인 순매수 상위 10개 종목.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직원들의 주식 투자를 단속하는 기업들도 눈에 띈다. 여의도 소재 한 증권사의 경우 개별종목 투자가 가능한 부서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본부장이 ‘주식에 투자하느라 업무에 방해되지 않게 해라. 근무 시간에 주식 창 켜 놓은 거 적발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엄포를 놨다. 많은 기업이 사무실 안에서 외부 사이트를 접속할 수 없게 차단해 놓았지만, 모바일 거래가 일상화돼 이를 막기란 쉽지 않다.
게임하듯 모바일 주식하는 밀레니얼들
흥미롭게도 이번 주식 열풍의 중심엔 20~30대 젊은 층이 있다. 스마트폰을 통한 거래에 익숙하고 금융지식과 정보가 풍부한 데다 ‘돈을 벌어 즐겁게 살고 싶다’는 욕구도 강하다고 분석한다. KB증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자사 신규 계좌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3.9% 늘었는데 이 중 2030대의 비율이 56%에 달했다.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30대 초반의 A 씨는 아이폰 ‘주식’ 앱에 아마존·테슬라·애플·AMD 등 관심 종목을 열댓 개 모아두고 습관처럼 확인한다. MTS를 이용해 미국 증시가 시작하는 한국시간 오후 10시 30분부터 자기 전까지 해외주식 거래도 거부감없이 한다. 그는 “어차피 부동산은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이고, 저축이나 ETF(상징지수펀드)는 재미가 없다”며 “재테크를 공부한 뒤 개별 종목으로 거래해 수익을 내려는 또래들이 많다”고 했다.

국내 공기업 B(28) 대리는 “우리는 종이 화폐를 만져보지 못한 세대”라며 “백만원이든 천만원이든 (주식거래) 화면상에 오가는 숫자여서 손가락으로 게임을 하듯 사고팔고 하는 게 익숙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상장 기업들의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주식 투자 활성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문제는 최근 개별 종목을 단타 위주로 거래하거나 무리하게 돈을 빌려 투자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국내 금융권에 근무하는 박 모 차장은 “주변에 은행 몇 군데 돌아 1억씩 마통(마이너스 통장)을 당겨서 하는 사람도 많다”며 “지금 주식으로 한방 크게 키워놓지 않으면 영영 기회가 없다는 생각이 많다”고 말했다. 실제 빚을 내 투자하는 신용융자거래 잔고는 지난달 사상 첫 14조원을 넘어섰다. 이와 관련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최근의 시장을 “상승 랠리에서 나만 소외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진 FOMO(fear of missing out) 시장”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최근 3개월 투자자별 매매동향.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단기투자·정보맹신 ‘주의보’
재무 전문가인 채준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주식투자는 경제 성장 추세에 조금이라도 참여하는 훌륭한 투자 수단이지만,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개인들의 가장 나쁜 습성이 ‘단기로 거래하는 것’과 ‘주식 정보를 나와 극소수만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실물인 주식은 통화량이 늘수록 가격이 올라가는데, 지금의 상승은 정부가 돈을 너무 많이 풀어서 오른다는 면이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채 교수는 “개인은 매수·매도 타이밍을 고민할 필요 없이 시대와 산업이 바뀌는 방향에 발맞춰 가는 기업을 선택하면 된다”며 “절대 단기투자하지 말고 5~10년을 바라보되 미국·중국·유럽·일본 등 글로벌 포트폴리오를 가져가야 여러 변수 속에서 수익을 올리는 데 유리하다”고 조언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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