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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점검] 건설현장 안전사고 줄이겠다는데...엔지니어링업계 반발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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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20/08/02 15:02



국토부 홈페이지에 올라온 건진법 시행령 개정 반대의견. [출처 국토교통부]





"건진법 시행령 개정 반대합니다."

"부실벌점 합산방식 반대합니다."

국토교통부(장관 김현미)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의 '입법예고·행정예고' 항목에 있는 '건설기술 진흥법 시행령 재입법예고'에는 무려 2800개 가까운 의견 글이 달렸다. 개정안에 대한 의견수렴 기간(6월 18일~7월 28일)에 올라온 글들이다.

그런데 거의 전부가 건설기술진흥법(건진법) 시행령 개정에 반대한다는 내용이다. 다른 입법예고나 행정예고에는 겨우 두세 개, 많아야 10개 안팎의 의견이 붙은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이례적인 상황이다.

건진법 개정안 '반대' 2800여건
사연은 이렇다. 국토부는 지난 1월 부실시공과 안전사고 때 건설사, 설계·감리사 등에 부과한 벌점을 공사 입찰에 반영하는 방식을 바꾸는 내용으로 건진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건설현장의 안전사고를 줄이기 위한 강수였다.

기존에는 반기마다 업체가 받은 벌점을 공사나 용역 건수로 나눠 평균 점수를 산정했는데, 앞으로는 공사와 용역 건수를 따지지 않고 합산하겠다는 것이다. 공사 100건을 진행하는 업체가 벌점을 10점을 받았다면 종전에는 0.1점이 적용됐지만, 앞으로는 그대로 10점이 다 반영된다는 의미다.



지난해 9월 서울 구로구의 안양교 확장공사 현장에서 굴착 장비가 다리 위로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뉴스 1]






벌점제도가 1995년 도입돼 벌점에 따라 입찰참가제한, PQ(Pre Qualification, 입찰참가자격 사전심사) 시 감점 등 불이익을 주는 규정은 있지만, 실제로 불이익을 받는 회사가 드물 정도로 유명무실해 정비가 필요하다는 게 국토부 판단이다. PQ는 공사 입찰시 참가자의 기술 능력, 관리 및 경영 상태 등을 종합 평가해 업체가 성공적으로 용역을 수행할 수 있는지를 사전에 심사하는 절차다.

벌점이 2점 이상 5점 미만이면 0.5점이, 5점 이상 10점 미만이면 1점이 감점된다. 또 2014년 434명에서 2018년 485명으로 건설현장 사고 사망자가 증가세인 것도 벌점제도를 강화한 이유 중 하나였다. 시행령이 개정되면 2023년부터 바뀐 내용으로 벌점이 적용된다.

상위권 설계·감리업체 "생존권 위협"
하지만 개정안대로 시행될 경우 공공사업 입찰 때 불이익과 선분양 제한 등을 우려한 건설사와 엔지니어링업체(설계, 감리 담당)가 강하게 반발하면서 국토부가 한발 물러섰다. 벌점 합산 방침은 유지하되 벌점 부과 방식과 기준을 보다 명확히 하고, 특정 기준을 충족할 경우 벌점을 깎아주는 제도를 만든 것이다.

예를 들어 건설업체가 공사하는 현장에서 반기(6개월) 동안 사망사고가 없으면 다음 반기에 측정된 부실벌점의 20%를 깎아주는 내용이다. 2년 동안 사망사고가 없을 경우 부실벌점 경감률은 59%에 달하게 된다.



 부실 벌점에 따른 감점 현황. [자료 국토교통부]






국토부는 이런 방안들을 담아 지난 6월 건진법 시행령 재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덕분에 건설업계 반발은 상당히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엔지니어링 업계는 여전히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도로와 철도, 댐, 항만 등의 설계·감리를 담당하는 엔지니어링 업체는 2019년 기준으로 3500여개에 종사자는 4만 9000여명가량 된다.

익명을 요구한 엔지니어링 업계 간부는 "안전사고를 줄이자는 정부 취지에는 적극 찬성한다"면서도 "건설과 설계·감리 용역은 PQ 단계부터 벌점이 주는 영향이 다르다. 시공의 경우 PQ는 통과 여부만 따지지만, 설계·감리 용역에선 PQ 점수가 입찰에 그대로 반영돼 벌점의 파급력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현실 맞게 개정안 다시 정비해야"
그는 "설계·감리용역은 0.1~0.2점 차이로 최종 낙찰자가 결정되는 경우도 많다"며 "이런 상황에서 벌점을 합산하게 되면, 특히 용역현장이 많아 상대적으로 벌점을 받을 확률이 높은 상위권 엔지니어링 업체들은 PQ에서 0.5점 또는 1점의 감점을 받게 돼 사실상 용역을 따내기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엔지니어링 업계에서는 도화엔지니어링, 한국종합기술, 유신, 건화, 동명기술공단, 삼안 등이 상위권을 이루고 있다. 이들 업체는 국토부에 ▶무사망사고시 벌점감경을 감리업체에도 적용해줄 것 ▶PQ 때 벌점에 따른 감점 점수를 현실에 맞게 조정해줄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2017년 발생한 평택 국제대교 상판 붕괴사고 현장.[연합뉴스]






상위권 업체의 한 간부는 "상위권 업체는 상대적으로 기술력과 경쟁력이 뛰어나고 현장 경험이 많다"며 "그러나 정부 안대로 시행령이 개정되면 각종 공공입찰에서 불이익을 받게 돼 실적이 떨어지게 되고, 이로 인해 해외 진출에도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 간부는 또 "건설현장의 안전사고는 대부분 건설사 책임인 경우가 많은데 엔지니어링업체까지 모두 공동책임을 지는 상황은 과도한 것 같다"며 "정부는 우선 시행해보고 문제가 있으면 고치자는 입장이지만, 일단 법령이 바뀌면 전국의 지자체와 공공기관이 모두 이를 적용하기 때문에 어떤 예상치 못한 불이익을 받게 될지 상당히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국토부 "안전사고 감소 위한 필요 조치"
이에 대해 한명희 국토부 건설안전과장은 "건진법 시행령 개정은 건설현장의 안전사고를 줄이기 위한 것으로 이를 위해서는 그동안 유명무실했던 벌점제도를 개편하지 않을 수 없다"며 "벌점 부과에 대한 논란을 줄이기 위해 부과 대상과 기준, 심의절차, 부과 기간 등을 모두 정비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엔지니어링 업계의 의견을 고려해 각종 벌점경감 장치를 마련했기 때문에 오히려 시공사보다 더 유리한 상황"이라며 "여기에 추가로 벌점을 깎아 달라고 하는 건 과도한 요구"라고 반박했다. 건설업체는 벌점이 쌓일 경우 아파트 선분양 등에서도 불이익을 받게 돼 절대 유리하지만은 않다는 설명이다.

한 과장은 또 "일단 내년에 벌점 부과 현황을 점검하고, 이를 바탕으로 감점 내역 등을 확인해 생각보다 업계에 미치는 불이익이 과도하다고 판단되면 관련 규정의 재개정도 검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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