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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무슨 색깔인가

안성남 / 수필가
안성남 / 수필가 

[뉴욕 중앙일보] 발행 2019/04/30 미주판 12면 기사입력 2019/04/29 16:00

문을 나서면서 재빨리 어느 울타리 안으로 들어간다. 아니면 나도 모르게 들어가 있다. 때로는 내 의지와 상관 없이 혹은 내가 좋아서 파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울타리 안으로 들어선다. 그래서 나는 파란 사람입니다. 어쩌면 여기 울타리 밖에서 돌아다녀도 내 몸이 파랗게 보이는 까닭에 사람들은 나를 파란 사람들 속에 넣어버립니다. 그렇게 분류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나는 색깔이 없는지도 모릅니다. 파란 담장 아래 있어 그들에게 파랗게 보일 뿐입니다. 나를 파랗게 보는 그들에 의해 나는 어쩔 수 없이 파란 족속입니다. 불편하지는 않지만 만약 파란 사람은 세상에 악이라고 판결이 나면 나는 그만 악이라고 처벌 받게 됩니다. 파란 색이 선이 되면 나도 모르게 상이 내려지고 있습니다.

생물학이 예전에는 지구 상에 모든 생물을 그저 모아 놓고 연구 관찰하였고 부르는 이름도 지역에 따라 달랐기 때문에 여러가지로 불편했다. 그 후 학자들이 모든 생물을 구분하여 그 생김새나 구조적 특징 등이 비슷한 것끼리 한 무더기 모아 이름을 붙여주는 분류 원칙을 정하였다. 이름도 학계에서는 학명이라는 세계 공통 이름을 주고 사용하여 혼란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여러 개 갈라져 나간 가지를 가진 나무 모양의 분류 계통수가 만들어 졌다. 이 계통수에 의하면 사람은 우선 동물 쪽 가지에 선다. 그리고 다세포 동물이며 등뼈 동물이고 포유류이며 결국은 계통수 제일 꼭대기에 놓인다. 말을 사용하는 최상위 동물이라는 색깔로 구분되고 있다. 더하여 사회생활이라는 걸 만들어 사는 사람은 수많은 질문 속에서 더욱 다양한 색깔로 구분되고 있다. 당신은 누구인가. 직업은 무엇인가. 어느 나라에서 사는가. 어떤 사상을 가졌는가.

여행지에서 흔히 겪는 일. 어디에서 왔는가 라는 물음에 한국이라 답하면 잇달아 즉시 달려드는 질문 남쪽인가 북쪽인가. 나 개인은 없고 내가 어디에 속해 있는 친구인가 가 중요한가 보다. 그렇게 미리 내 색깔을 정해 놓은 다음에 무얼 좋아하는가 어디로 가는가 왜 여기 왔는가 물어가며 덧칠을 한다. 그렇게 내 색깔은 만들어지고 내 여정을 몰아간다. 너는 맥주를 좋아하는가 나도 좋아한다. 그렇게 너와 나의 같은 색깔을 확인하고 한 편 되기를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편 가르기 습성이다.

세상은 빨강 노랑 파랑의 분명한 색깔만 있는 것이 아니고 빨강과 노랑의 중간 색도 있어 경계에 서 있는 삶도 존재한다. 생물 분류에도 분류 계통수 어느 가지에 분명하게 들어가지 않는 것도 많다. 아마도 창조주께서 우리 분류표를 개의치 않으신 것 같다. 식물도 동물도 아닌 것이 있고 새도 짐승도 아닌 것이 있어 분류 학자들을 난감하게 한다. 사물 분류 작업 중에 비교적 분명하다고 볼 수 있는 책의 분류조차 소설인지 수필인지 학술 문헌인지 구분이 어려운 경우가 있어 사서들을 난처하게 만든다. 더구나 지금 세상은 사람들의 삶의 형태가 더욱 분화되어 소속을 알 수 없게 만들어 가고 있다.

내 주소 찾기가 한층 어려워진 시대를 살고 있다는 생각으로 내 색깔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당신의 색깔을 찾기가 한층 어려워진 시대를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대신 더욱 다채로워진 색깔의 향연을 즐길 수 있다는 좋은 면도 있다. 그래서 이제는 또 다른 편 가르기 관점에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너는 어느 색깔이 좋으며 어느 색깔의 편에 서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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