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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살 맛 난다

오늘도 죽겠단다. 아침엔 졸려서, 점심엔 한가해서, 저녁엔 피곤해서 그렇단다. 결혼식 피로연 자리에서도 말이다. 신랑이 신부를 지긋이 바라보니 수근 댄다. "좋아 죽어, 좋아 죽어!" 이해가 힘들어진다. 배고파 죽고, 배불러 죽고, 성질 나 죽고, 따분해 죽고, 세상이 온통 죽을 일들로 그득하다. 그냥 보고 싶으면 될 것을 자꾸 죽을 만큼이나 보고 싶다고들 한다.

또 누구는 미치겠단다. 답답해 미치고, 돈 안 벌려 미치고, 보기 싫어 미치고, 피아노로 도 레 미 친다.

이 세상 살아간다는 것이 참 힘든 일임에 틀림없다. 특정한 사람을 이야기 하자는 것이 아니다. 내 주위의 많은 분들이 버릇처럼 죽겠다, 미칠 것 같다고 말을 한다. 일이 잘 안 풀리면 환장한다는 말도 한다. 장이 뒤집어지면 죽는다. 그러니 자연히 죽을 것 같다는 말이 뒤따라 나오는 것 아닐까? 내 주위엔 소중한 언어는 아끼고 부정적인 말들을 마구 내버리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버려진 어두운 말들은 전염성이 강해서 누구나 쉽게 따라 하게 된다. 요즈음 모든 강렬한 표현에는 "개"란 말이 앞에 붙는다. 그냥 대박이 아니라 "개 대박"이 더 강한 긍정이란다. 곱지 않은 표현이다. 최근에 많이 순화 되었지만 우리가 흔히 듣는 욕설에는 육이오 전쟁 후 자주 쓰여진 된소리가 많이 등장한다. 힘들다고 마구 육두문자를 날리면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겠는가? 죽겠다, 미치겠다, 환장하겠다, 돌아버리겠다. 그런 말 너무 자주 들으니 나도 돌겠고, 죽을 것 같고, 환장하고 미쳐버릴 것 같다. 말이 곱지 않으니 세상이 각박하다고 느껴진다.

내 인생 뒤늦게 글을 배운다. 글을 배우다 보니 우리말에 애착이 간다. 고운 말, 예쁜 말이 참 많다. 한자와 외래어가 많이 쓰여지지만 우리 고유의 아름다운 표현들도 많이 있다. 어쩌다 순수한 우리말을 찾으면 보물 찾은 아이처럼 기쁘다. 북한에서처럼 되도록이면 모든 단어를 우리말로 나타내려고 애쓰는 것이 억지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가상한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진다. 우리글과 언어를 아끼고 다듬고 쓰다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미우나 고우나 가족처럼 내가 내치면 세상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이제 우리가 소중하게 간직했던 언어들을 풀어 놓아야 한다. 아이들에게도 존댓말을 해야 한다. 어릴 적부터 고운 말을 자주 써야 아이들도 그렇게 할 줄 안다. 이곳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한국어를 잘 구사하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부모님들이 참 잘 키웠다 하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나는 마주치는 젊은 한인 부모님들에게 늘 부탁한다. 아이들에게 소중한 한국어와 한글을 반드시 가르쳐 주십사 하고. 어린아이와 영어로 소통하기가 편해지면 큰일이라고 말씀을 드린다.

이중 언어를 잘하는 아이들이 모든 면에서 뛰어나다는 것은 굳이 말을 안 해도 증명된 사실이다. 부정적이고 곱지 않은 말 대신에 침묵을 지키자. 우리도 모르게 내뱉는 험한 말들을 아이들이 쉽게 배운다. 툭툭 불거져 나오는 아픈 언어들이 멀리 조국을 떠나 이방인이 되어 버린 우리에게 힘겹게 다가와서는 안 될 일이다. 꼬집 보다는 자밤, 백조 보다는 고니. 모국어가 자꾸 혼란스럽게 변화되고 아름다운 말들이 좋은 쓰임새를 잃게 될까 봐 걱정된다.

햇빛 가득한 봄의 뜰에 서서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중얼거린다. 인생 살 맛 난다. 지킬 우리말과 좋은 우리글이 있어서 말이다. 뒤늦게나마 찾아온 가슴 벅찬 축복이다. 정말 살 맛 난다.


고성순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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