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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 지킴이(3편)-나래무용단 백미애 단장

한인사회와 주류사회의 각종 축제에서 깜찍한 어린이무용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나래무용단’이 올해로 벌써 19살을 맞았다.

지난 9월 노스욕 한가위축제가 열린 토론토 시청 앞 멜라스트맨 광장에서 주먹만한 얼굴에 블루 아이새도우와 빨간 립스틱을 바른 예쁜 꼬마 무용수들은 수많은 카메라맨들을 몰고 다니는 스타였다.

음악에 맞춰 고개를 까닥이고 발을 통통 차며 손가락을 눈썹 위에 살며시 갖다대며 관중들의 탄성을 자아내는 실력을 쌓기까지 ‘부모가 투자 많이 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질문을 안고 지난 4일 나래무용단 연습장을 찾았다. 1990년 한맘어린이무용단을 만든 후 19년간 한결같이 아이들과 함께 해온 백미애 단장이 얼굴엔 미소를 띠고 있지만 목소리는 엄격하게 무용을 지도하고 있었다.



연습장 한 귀퉁이의 테이블에 ‘꽃바구니’와 머리장식, 한복 등이 쌓여 있어 은근슬쩍 “수강료에다 한복, 기타 소도구를 구입하려면 돈이 꽤 들겠다”는 질문을 던졌다.

땀을 훔치며 의자에 앉던 백 단장은 “수강료는 없고, 무대의상도 공연 사례비로 구입한다”는 의외의 답을 내놓았다. 지역사회에 지천으로 깔려있는 발레학원도 돈을 내야 배우는데, 선생 모시기가 하늘의 별만큼 귀한 한국 전통무용이 무료라고? 백 단장과 나래무용단에 대한 관심이 갑자기 두 배로 커졌다.


(나래무용단의 호랑이 선생님)

평소에도 연습에 게으름을 피우지 않지만 일단 공연이 잡히면 짧게는 하루 4시간에서 길게는 거의 10시간씩 맹연습을 시키는 백 단장은 어린이들과 학부모들 사이에 ‘호랑이 선생님’으로 통한다.

“그냥 취미로 하는 거라면 몰라도 관중을 앞에 둔 무대라면 당연히 전문공연을 선보여야 한다”는 것이 백 단장의 지론이다.

아이들을 좋아하고 장난도 곧잘 치지만 연습할 때는 전문 조련사로 엄격해지는 백 단장은 6년 과정의 국악사양성소(현재는 중·고등학교로 나뉘어 있다)를 거쳐 서울대학교에서 한국음악(거문고)을 전공한 예능인이다.

국악 일반이론을 배우는 국악사양성소 첫 3년 과정에서 무용을 필수로 이수하고, 고등 3년 기간에 거문고와 궁중음악을 배웠고, 대학교에서도 거문고를 전공했다.

나래무용단의 선장인 그는 다른 한편으론 우리말과 문화를 가르치는 한글학교 선생님이기도 하다. 최근까지는 몬트리올은행에서 풀타임 직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렇게 바쁜 일상 속에서 작품 구상은 어떻게 할까.

“음악이 하루종일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24시간 생각에 몰두할 때도 많다. 궁중검무는 드라마 ‘황진이’를 본 제자들이 요청해 새로 구성한 작품이다”


(나래무용단의 독특한 운영 시스템)

백 단장이 어린이무용단을 창단하게 된 동기는 우연이었다. 1990년 심장병어린이후원회 이사장이었던 고 임태호 씨가 ‘인터내셔널 데이(International Day)’ 행사에서 한국적인 것을 소개하고 싶다고 해서 도와준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한맘한글학교에서 1학년 담임이었던 백 단장은 성당 어린이들을 중심으로 처음엔 이름 없이 활동하다 나중에 ‘한맘어린이무용단’으로 정식 이름을 붙였다.

“한국무용이 좋아서 모였고, 원래 취지가 그랬기 때문에 수강료는 아예 받을 생각도 없었다. 지금도 그 원칙엔 변함이 없다. 무용을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나 시간만 내면 된다”

초창기부터 무용단의 가장 큰 고민은 연습 장소였다. 주로 성당에서 연습을 했으나 가끔 행사가 겹쳐 장소를 쓰지 못할 때는 교회 주차장이나 개인집, 공원, 옛날 한인회 야외공간을 이용했다.

무대의상도 처음엔 부모님들이 자비로 천을 단체로 구입해 직접 디자인하고 만들었으나 무용단이 관광공사나 TNT 등에서 공연을 하면서부터는 사례비를 모아 의상과 부채·신발 등의 부대장비를 구입하고 있다.

“금전문제로 단체가 흔들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공연을 의뢰한 단체로부터 사례비를 받으면 공연기록을 위해 내가 수표 복사본을 보관하고, 수표는 재정담당 학부모가 관리한다”

무용단 명칭을 올해 ‘나래무용단’으로 바꾼 배경에 대해 그는 “성당 이름을 계속 쓰는 것도 미안하고, 특정 범주의 어린이로 참가를 제한하는 듯한 뉘앙스가 많아 이름을 바꾸게 됐다”고 설명했다.


(나래무용단 단원들)

그렇다면 나래무용단은 어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을까.

“울지 않고 따라할 수 있는 나이(3-4세)부터 고등 9학년 정도다. 원하는 사람 모두에게 오픈돼 있지만, 아이가 무용을 좋아하고 부모님이 연습과 공연에 시간을 충분히 할애할 수 있는지를 따진다”

공연단체의 특성상 연습시간이 많고, 준비사항도 워낙 많기 때문에 그만큼 부모의 헌신과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

현재 단원은 3-4살 4명에서부터 1-3학년 10명, 4-6학년 10명, 7-9학년 4명 등 28명이다. 이들은 가장 어린 꼬마들의 깜찍한 꼭두각시 춤부터 바구니 춤, 오나라, 소고, 칼춤, 부채춤, 화관무, 장고춤, 궁중검무, 아리랑, 강강수월래 등 다양한 춤을 소화한다.

올해로 3년째 무용을 배우고 있는 나하영(9) 양은 “처음 검무를 배울 때 손가락을 다쳐 조금 무서웠다. 지금은 검무가 제일 재미있고, 부채춤은 너무 예쁘다”고 말했다.

3살 때부터 8년째 활동하고 있는 최연준(11) 양은 “꼭두각시 춤으로 처음 공연해 박수를 받았을 때가 기억난다. 새로 들어온 꼬마 동생들의 꼭두각시도 너무 귀엽다”고 평했다.

2년 경력의 지유나(9) 양은 “연습시간이 길어서 가끔 힘들지만, 공연 때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다. 음악도 재미있고, 옷도 예쁘고, 선생님도 너무 좋다”고 말했다.

나래무용단은 온주의사당과 여러 고등학교, 세인트로렌스 마켓, 필리핀 커뮤니티 등에서 초청 공연하고, 한인사회의 각종 행사를 예쁘고 깜찍한 춤으로 장식하고 있다.

정기공연에 대해 백 단장은 “다른 단체처럼 정기공연도 가능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부모님들과 상의해 추진해볼 생각은 있다”고 여운을 남겼다.


(1인 3역의 학부모들)

딸 둘(7·9세)을 뒷바라지하고 있는 어머니 황윤정 씨는 “모든 엄마가 로드매니저에서 헬퍼, 분장사까지 1인3역을 하고 있다. 시간을 내는 것은 아주 기본이다. 아이들 옷을 입히고 화장시키고, 공연 뒤처리까지 도맡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어 “아이들이 무대공연을 너무 좋아한다. 메이컵박스와 머리장식, 의상 등 부모의 노력이 많이 들어가지만 그만큼 보람도 크다”고 덧붙였다.

김희경(7) 양의 어머니 박채영 씨는 “아이가 좋아하니까 그렇지 따라다니는 것이 쉽진 않다. 무대에 자주 서면서 성격이 밝아졌고 매사에 적극적이다”고 뿌듯해했다.

한나(8)의 어머니 미카엘라 씨는 “5살 때 시작했는데, 박수 받는 것을 좋아한다. 연습이 많아 힘들어하지만 한국무용을 자랑스러워 한다. 백 선생님의 헌신도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큰 손녀를 일찌감치 무용단에 입단시킨 한 할머니는 2살 된 작은 손녀도 언젠가는 꼭두각시로 데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할머니는 “뒷바라지가 쉬운 건 아니지만, 아이들이 캐나다에서 우리 음악을 듣고 우리 춤을 춘다는 것이 어디냐”며 연습장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무용지도에 보람 많다)

지금까지 백 단장을 거쳐간 제자는 수 백명에 달한다. 대다수는 무용을 좋아해서 선택하지만, 일부는 엄마 손에 이끌려 억지로 발을 들여놓기도 한다. 그러나 처음 동기가 무엇이었든 아이들은 무용을 통해 한국음악과 문화를 이해하고 좋아한다.

백 단장은 “자아가 강했던 3학년 아이가 나중에는 장단과 춤을 이해하고 학교 탈렌트 쇼에서 직접 장고를 만들어 장단을 소개한 적이 있다. 그 솜씨에 감탄한 아버지가 일부러 연습장까지 찾아와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캐나다에서 태어났거나 어릴 때 이민와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던 아이들이 무용을 통해 한국인의 정체성을 갖는 것이 그의 가장 큰 보람이다.

무용이 가족문화로 자리하는 경우도 많다. 딸 또는 누이동생, 손녀의 공연을 위해 가족이 모두 행사장을 찾고, 평범하게만 생각했던 아이가 관중들의 환호를 받는 것을 보고 함께 기뻐한다는 것.

나래무용단은 연말까지 공연스케줄이 쭉 잡혀 있다. 10일 노인회 워커톤 행사와 11월 재향군인회 행사, 캐나다한국학교협회 꿈나무 문화의 밤, 12월 양로원 위문공연 등 크고 작은 행사들이 어린 무용수들의 출연을 기다리고 있다.

백 단장은 “무대에서 공연하기까지 어린이들은 연습으로, 부모님들은 뒷바라지로 많이 애쓰고 있다. 언제 어디서든 동포들이 우리 무용을 예쁘게 봐주셨으면 한다”며 마음의 후원을 당부했다.

(오미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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