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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지지 보답 못해 죄송…밖에서도 동포정책 지원할 것"

아쉽게 패한 재외동포 대변 더민주 김성곤 의원 인터뷰

한인 투표 지역구 득표율 2위
전략 공천 강남 준비시간 부족
정치인 되기 전부터 평화운동
청소년에 한반도 평화 교육할 것
정부도 동포청 설립 반대 안해
기존 조직 활용하면 성사 가능


'54:45'

이번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성곤(63) 의원이 받은 득표율 결과다. 9%, 7856표 차로 졌다. 비록 패했지만 '선전'이라고들 분석한다.

이번 총선에서 그는 5선에 도전했지만, 사실상 초선이나 마찬가지였다. 본인의 지역구 여수가 아닌 여당의 대표 텃밭인 강남갑에 전략공천됐다. 선거준비기간이 3주도 채 안됐지만, 이 지역구에서 28년 만에 1위와 2위 격차를 10%내로 좁혔다.



그를 인터뷰한 이유는 한국에 알려지지 않은 '재외 한인들의 지지' 때문이다. 이번 총선 재외선거에서 한인들은 상대 후보가 아닌 그를 선택했다. 한인 투표자가 가장 많았던 '톱 10 지역구' 중 득표율 2위(59.9%)였다. 16년간 국회에서 재외동포 정책의 선봉장 역할을 했던 그의 노력을 한인들은 표로 보답했다. 그래서 그는 "시간만 좀 더 있었다면 이길 수 있었다"면서 "지지해준 재외동포들에게 고맙고, 죄송하다"며 못내 아쉬워했다.

1시간 넘게 이어진 전화 인터뷰에서 그는 20대 총선 결과부터 재외동포 정책, 재외선거, '로버트 김 사건'으로 잘 알려진 형의 근황까지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갔다.-선거 끝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어떻게 지냈나.

"몸과 마음 추스르면서 보냈다. 아쉬운 점도 있었고 … . 피로는 풀렸다."

-당선 어렵다는 걸 언제 알았나.

"어려운 싸움이었다. 현재 내 지역구(전남 여수)에 다른 후보를 전략 공천하고, 나는 험지인 강남에 전략 공천 받았다. 강남은 (여당 우세지라서 후보를 못내) 마지막 남은 곳이었다. 그래서 선거 준비를 채 3주도 못했다. 최선을 다했지만, 저녁 6시에 출구조사 나올 때 어렵겠다 싶었다."

-결과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당직자들부터 격려했다. 많은 분들이 득표율 45%면 4년 후에는 더 잘할 수 있다고 해주셔서 감사했다."

-가족들 실망이 컸을 텐데.

"막내(55세에 늦둥이 아들을 얻었다. 지금 열 살이다)가 '아빠 실망하지 말라'고 오히려 위로해줬다. 그러더니 '우리 앞으로 뭐 먹고 살지?' 하더라(웃음). 먹고 사는 건 하나님이 다 해주신다고 했다."

-왜 자기 지역구에 출마 안했나.

"다선 의원은 욕심과 현실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물론 당내에서 중진 은퇴 압박도 있었지만, 지역민들이 새로운 변화를 원한다고 생각했다. 후배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박수받을 때 떠나는 게 낫겠다 싶었다."

-하지만 결국 본인 지역구에서 다른 당(국민의당) 후보가 당선됐다. 차라리 본인이 출마했으면 이겼을텐데.

"불출마 선언 당시는 새정치민주연합이 나뉘지 않았던 때다. (더민주와 국민의당으로)분당할 줄 알았다면 내 지역구에서 출마했다."

-비례대표를 신청했다가 논란이 됐고, 결국 공천에서 탈락했다.

"재외동포 전문분야에 더 주력하려고 신청했는데, 결론적으로 내 불찰이다. 내가 나갈 게 아니라 새 인물을 밀어줬어야 했다."

-이번 선거를 평가한다면.

"투표한 국민들조차 놀랐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은 철저한 견제와 균형을 선택했다. 새누리에게선 제 1당을 빼앗고, 더민주의 텃밭 호남을 국민의당에게 줬다. 정치인들에게 거만하지 말라는 민심이다."

-더민주가 이겼다고 보나.

"우리당은 제 1당이 됐지만, 결코 승리한 것이 아니라 국민들에게서 경고장을 받은 것이다."

-이번 총선 결과가 차기 대통령 선거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보나.

"야당이 의회 권력을 차지하게 됐지만, 독이 될지 약이 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정치는 이겼다고 자만하는 순간, 반드시 낭패를 본다. 오히려 새누리당은 국민들에게서 확실한 경고를 받았기 때문에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더민주는 더욱 조심스럽게 겸손한 정치를 해야 한다."

-4선이다. 기억에 남는 선거는.

"이번 선거가 가장 어려웠다. 2선에 도전했던 17대(2004년)도 기억에 남는다. 그때 열린우리당 후보로 여수에서 첫 출마했는데, 민주당 후보보다 지지율이 열세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등 결정적인 사건을 계기로 막판에 역전했다."

-형님(로버트 김) 사건도 있었다.

"그렇다. '애국자'의 동생을 돕자는 민심도 작용했다. 그때 더블스코어로 이겼다." (로버트 김은 1996년 미 해군정보국 컴퓨터 분석관으로 일하던 중 1996년 주미 한국대사관에 군사 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구속됐다. 9년 수감생활을 끝내고 17대 총선 즈음 석방돼 언론 보도가 잦았다)

-형님 근황은.

"올해가 사건 발생 꼭 20년된다. 지금 버지니아에 사신다. 최근 형님과 형수님 건강이 좋지 않아 한국 귀국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반드시 통과시켜야 할 재외동포 법안이 있다면.

"동포청 설립안과 재외국민 보호법이다. 벌써 20년전인 15대때부터 추진했던 법들인데 지금까지 매듭짓지 못했다."

-왜 안되나.

"동포청 설립의 가장 큰 걸림돌은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 우려다. 재외동포중 조선족이 가장 많다. 그런데 중국은 조선족을 자국민으로 간주한다. 동포청 설립 후 조선족에 대한 우리정부의 지원이나 분석을 중국은 '내정 간섭'으로 여길 수 있다고 외교부가 우려한다. 또 하나는 정부 기관을 늘리는 것이 현행 '작은 정부' 추구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다. 정부는 동포청 설립 자체를 반대하진 않지만 조직을 확대하는데 대한 거부감이 크다."

-그렇다면 대안은.

"공무원 숫자를 늘리지 않고 기존의 국.실 등 부처를 떼어와 조합하는 방법이다. 기존 조직을 활용해 새 조직을 만드는 것이 현재로선 가장 좋은 대안이다."

-재외선거에서는 더민주가 크게 이겼다.

"투표한 한인들의 연령이 젊기 때문이다. 국내 유권자는 50~60대가 많지만 해외는 20~40대가 압도적이다. 재외동포에 대한 우리당의 정책들도 큰 몫을 했다고 본다."

-재외선거 때마다 낮은 투표율 때문에 존폐 논란이 일고 있다. "(재외국민 탓을 할게 아니라)미비한 제도를 탓해야 한다.국내 선거일은 공휴일이다. 또, 200~300미터만 걸어가면 투표소가 있다. 어떻게 해외 선거와 비교할 수 있나. 투표율을 올리려면 결국은 인터넷 투표밖에는 방법이 없다."

-인터넷 투표는 우려가 크다.

"컴퓨터 해킹이나 부정선거가 발생해도 해외라서 국내 사법권이 미치지 못한다는 우려다. 그래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나 정치권 모두 인터넷 투표를 불신하고 있다. 그런데, 해보지 않고 어떻게 아나. 우리당에서는 이미 전당대회시 해외에서 이메일로 투표하고 있다. 부작용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정치인이 되기 전 목사가 되려고 했다. '교회 밖의 구원이 어떻게 가능한가' 고민했다던데.

"종교학을 공부하면서 얻게된 철학적 질문이다. 교회에 나가지 않으면 구원 받지 못한다는 목사님들의 가르침과 하나님의 '무소부재(언제 어디든 있다)'가 항상 부딪혔기 때문이다. 결국 '진리는 하나'다. 언제 어디서든 구원을 찾는 사람에겐 그 문이 열려 있다."

-앞으로 계획은.

"정치인이 되기전부터 평화운동을 해왔다. 정치는 그 수단이지 목표가 아니다. 현재 서울평화교육센터 이사장이다. 한반도 평화, 종교간의 상생에 대한 청소년 교육에 주력할 계획이다. 그렇다고 정치를 떠나지는 않는다."

-차기 총선에 출마한다는 뜻인가.

"사람일은 모르니까 … 원외에 있어도 당내에서 재외동포 정책 지원 등 내 역할은 해야 하지 않겠나."

-국회의원은 뭐하는 사람인가.

"어렵지 않다. 국민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옳은 일을 법으로 만들어 국민들을 잘 살게 해주는 사람들이다."

-미국에 언제오나.

"중앙일보에서 초청해주시면 언제든 가겠다.(웃음)"

☞김성곤 의원은

1952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본적은 전남 여수시 봉산동이다. 부친은 8.9대 국회의원을 지낸 고 김상영 의원이다. 고려대 재학시절 유신 반대 시위를 하다 긴급조치 위반으로 제적당했다. 아버지는 '항명 자식'을 뒀다는 이유로 정치를 접어야 했다. 목사가 되려는 생각에 철학을 공부하다가 미국으로 유학갔다. 템플 대학을 졸업하고 12년만에 귀국해 종교평화운동에 헌신했다. 1995년 15대 총선에서 김상현 전 의원의 권유로 출마해 첫 당선됐다. 유학생활과 친형 로버트 김의 9년여 수감생활 등을 계기로 재외동포와 관련된 입법 활동에 힘썼다. 계파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온건중도다. 4선 임기중 100개 이상의 법안을 냈다. 지난해 한국언론사협회 우수국회의원 대상을 받았다.


정구현 기자 chung.koohyu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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