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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In] '평범한' 사진작가의 못 다한 이야기

평범하기가 어렵다.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남들처럼 교육을 받고 일반적인 직장에 다니면서 비슷한 짝을 만나 건강한 아이를 낳아 키우며 별 탈 없이 평생 함께 사는, 그런 삶 말이다.

어디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들여다보면 말 못할 사연들을 다 품고 산다. 그래서 '대체로' 평범할 순 있어도 '완전히' 평범하긴 어렵다.

30여 년간 LA한인사회의 희로애락을 카메라에 담아온 1세대 사진작가인 박제돈(62)씨는 그 평범함이 가장 아름답다고 했다.



최근까지 왕성한 활동을 하던 그는 3주 전 '한 달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암과 싸우면서 생애 첫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 어쩌면 마지막 작품전이 될지 모른다. 40년 경력의 사진작가가 남기고픈 메시지를 기사화했다.

보도 후 여러 독자들이 전화와 이메일로 연락해왔다. 약품회사 대표는 암 특효약을 주고 싶다고 했고, 한의사는 치료를 돕겠다 했다.

한 독자는 "기사가 너무 짧다"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베테랑 사진작가를 인터뷰하면서 정작 그의 사진에 대한 언급이 부족했다는 지적이었다. 2시간여 인터뷰에서 지면에 싣지 못한 대화들을 소개한다.

-아프신데 표정이 밝으십니다.

"며칠 전에 3년 암투병중인 후배가 찾아왔어. 그 몸으로 멕시코까지 가서 주먹만한 조개 2마리를 잡아왔어. 나 먹으라고. 엉엉 울면서 말하더라고. '형, 암은 사람을 죽이지 못해, 항암치료 때문에 못 먹어서 죽는 거야'라고 하데. 정신이 번쩍 들었어. 또, 전시회 준비하니까 의욕이 생기고. 몸도 기분도 좋아."

-사진이 무엇입니까.

"진실한 거지. 사진의 목적은 현재를 남기려는 의지야. 결혼 기념사진에서 경직된 자세들도 진실하지만, 결혼식장으로 향하는 신랑신부의 복잡한 표정이 더 진실에 가깝지."

-어떤 사진을 찍으셨나요.

"내 사진은 신현식(중앙일보 전 사진부장)이 말대로 평범해. 아직도 그 친구는 '달력 사진'이라고 핀잔을 줘. 그런데 난 그렇게밖에 못 찍어. 유명 관광지보다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석양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해."

그가 펼쳐보인 사진들은 평범하다. "잿빛 하늘 아래 들판에 봄꽃이 피었는데 그 위로 함박눈이 내린 거야"하는 식이다.

사진을 말할 때, 옆에서 손을 꼭 잡고 있던 그의 아내가 처음으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선생님(그는 아내의 사진 스승이었다) 사진은 정말 따뜻해요. 재능이 많으셔서 그래요."

그리고 남편 자랑이 이어졌다. 목소리가 좋은 수준급 테너에, 골프며 못하는 운동이 없고, 낚시만 했다하면 40마리씩 잡고, 우리집 김치도 다 혼자 담가 주고…. 결국 "아직 이 사람은 더 할 일이 많다"면서 울먹였다.

아내를 도닥이며 그는 독자들에게 "지금이 가장 행복한 순간인지 사람들은 모르고 산다"고 했다. 기자가 보기에도 남편 자랑을 하는 아내와, 그런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지금 표정'이 2시간 여의 인터뷰에서 가장 반짝였다.

평범하다는 말은 보편적이라는 뜻과 자주 어울린다. 희랍어로 '보편(katholikos)'은 '가톨릭(Catholic)'의 어원이다. 모든 곳에 존재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신은 평범한 일상에 존재한다는 의미다.

그는 개인전에서 "평범한 사진을 통해 따뜻한 내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전시회는 7일부터 10일까지 LA한인타운 6가와 웨스턴 코너 샤핑몰 '에바다 아트 갤러리(555 S. Western Ave. #204)'에서 열린다. 그와 직접적인 인연이 없다 해도 한번쯤 꼭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가 말하고자 했던 평범한 진리가 따뜻한 빛으로 인화되어 있다. 그리고 평범을 감추려고 굳이 채색해온 분들이 있다면 당당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

평범하기는 어렵다.


정구현/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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