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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함이 통하는 시카고입니다”

[시카고 사람들] 이북도민연합회 문병환 회장

문병환씨(사진•59)가 한국에서 결혼한 지 두 달만에 위스콘신으로 온 것은 1993년 12월 12일, 이른 바 ‘12.12’가 터진 날이었다.

밀워키 남부에서 유아용 옷가게를 하며 4년을 보냈다.

이후 시카고로 터전을 옮겼는데 우연찮게도 태능에 있던 삼육고교 동기동창 5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민의 삶에 힘이 됐다. 그는 “고 이승만 대통령의 주치의가 고교와 같은 재단인 서울위생병원장이었던 탓인지 친구들 중에는 간호사, 치과 계통의 전문인들이 꽤 많았다”고 들려주었다.

옷가게를 하다가 주택 리모델링으로 직업을 바꿔 18년 이상을 꾸준히 하고 있다. 교회 교육관이나 연장자 서비스 시설, 상가 및 주택 리모델링 일로 많이 바빴는데 10년 전 모기지 사태 발생 후 비즈니스가 쉽지는 않다고.



동대문중학교 시절 야구(포수, 1루수)를 했다는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축구를 한다. 처음 스파르타 조기축구회에 들어가 회장을, OB 팀에서는 총무와 감독을 지냈다. 최근 비호 팀으로 옮겼다. “17년을 하다 보니 축구 실력이 많이 늘더라구요. 수비만 하다 지금은 미들필더로 뛰는데 시야가 넓어졌어요.” 그는 운동을 하다 보니 이민 생활 전반에 자신감이 배가 되더라고 말했다.

지인들은 그를 “봉사부장”이란 별명으로 부른다. 성실하게 일을 마무리 한다. 야유회나 행사가 있을 때면 항상 마지막까지 남아 뒷정리에 참여한다. 다니는 교회의 멕시코 선교나 몬테나주 인디언 보호 지역 선교에도 빠지지 않는다. 치과의나 안과의도 가지만 그들이 필요로 하는 건물을 지어주고 침례탕을 보수해주는 문 회장의 손길도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제가 손재주가 좀 있나 봐요. 타일 붙이는 것도 한번 보면 그대로 할 수 있을 정도거든요.” 그는 “아버지가 그림을 잘 그리셨고 남동생도 홍익대 미대를 나와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영상 기술 전문분야에서 대종상을 수상했다”고 귀띔했다.

4년 전부터 황해도민회에 참여, 도민회장을 거쳐 지금은 이북도민연합회까지 맡게 됐다. 황해도 연백 출신인 그의 부친은 3년 전 황해도민으로 고국을 방문했을 때 고향 생각을 하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고 한다.

“연합회 회장을 맡는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아버지의 고향을 생각해서 이북도민 어른들을 잘 대접하고자 마음 먹었다”는 그는 올 여름 연합 야유회, 연말에는 송년회를 계획하고 있다.


James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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