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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TALK] 비에르네의 소원

김동민 / 뉴욕클래시컬플레이어스 음악감독
김동민 / 뉴욕클래시컬플레이어스 음악감독  

[뉴욕 중앙일보] 발행 2019/04/20 레저 9면 기사입력 2019/04/19 16:37

2008년 2월 대한민국 국보 1호에 화재가 발생하는 일이 있었다. 사설 경비업체에 의해 처음 발견된 후 인근 경찰과 소방관이 출동해 진화에 들어갔다. 첫 신고 후 4시간여 만에 2층 누각 전체로 화염은 번졌고, 한 시간 이후에는 기초를 제외한 목조 부분 전체가 무너져 내리며 건물이 전소되고 말았다. 방화범은 이전에도 창경궁에 불을 질러 징역형을 받은 전력이 있던 인물이었는데, 종묘 대신 인명 피해가 없고 복원이 용이할 남대문으로 정한 것이라는 어이없고 황당무계한 이야기로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1163년에 시작되어 182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완성된 이후, 수많은 전쟁과 사건 사고를 피해 850여 년을 지켜왔던 파리의 상징이자 프랑스 문화의 자존심 노르트담 대성당이 화염에 휩싸이는 충격적인 모습을 바라보아야만 했다. 사고 직후 많은 사람들은 성당 주변에서 아베마리아를 부르며 참사를 추모했고, 최근 피아니스트 유자 왕과 카네기홀을 찾았던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첼리스트 고티에 카퓌송은 성당 앞에서 프랑스 작곡가 포레의 '비가(悲歌)'를 연주해 슬픔에 동참했다. 유네스코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안타까움을 표했다. 특히 문화재 복원 기술의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이탈리아는 이번 피해 복구를 위한 기술 지원을 약속했다.

노트르담 대성당이 보유하고 있는 중요 유물 중 하나인, 성당 90미터 꼭대기에 설치되었던 청동 수탉은 첨탑이 무너져 내리면서 잿더미 안으로 파묻혀 버렸지만 화재 진압 과정에서 큰 손상 없이 발견되어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쓸어 내리게 했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중요하고 기념비적인 유물인 '가시면류관' 역시 무사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대성당의 오르가니스트 중 한 명인 요한 벡소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화재 알람이 처음 울렸던 당시 월요일 저녁 예배를 위해 시편을 연주하고 있었고, 그가 성당을 떠날 당시만 하더라도 실제 화재가 아니라 훈련 상황으로 생각했을 만큼 큰 이상 징후는 없었다고 전했다. 천만다행으로 성당이 보유한 두 개의 오르간 모두 외부 손상은 없으나, 정상적인 연주가 가능한 상태인지는 아직 확인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8천여 개의 파이프로 이루어진 노트르담 대성당의 '그레이트 오르간'은 현재 프랑스에서 가장 큰 오르간이자, 전 세계 오르가니스트들이 꿈의 악기이다. 1900년부터 37년 동안 수석 오르가니스트로 재직했던 루이 비에르네는 재임 중 미국을 돌며 리사이틀을 열어 그 수익금을 성당의 오르간 보수 공사에 사용했을 만큼 노트르담 대성당의 오르간에 대단한 자부심과 애착을 가졌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최고의 오르가니스트라는 영광 뒤로 그가 감내해야 했던 어려움과 좌절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선천적으로 심한 백내장으로 나중에는 눈이 거의 보이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고, 아내와의 이혼, 1차 대전으로 잃은 형제와 아들에 대한 상실, 그리고 다리가 심하게 골절되는 사고를 겪으며 페달 테크닉을 새로 익혀야 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줄담배에 신경 안정제를 늘 달고 살아야 했을 정도였다.

비에르네가 67세를 맞이했던 1937년 6월 2일, 노르트담 대성당에서 그의 리사이틀이 열렸다. 생애 1750번째 열리는 연주였다. 대성당을 채운 3천여 명의 청중들의 호평 속에 그는 성공적으로 콘서트를 마쳤다. 마지막으로 청중들이 제안한 짧은 테마를 가지고 즉흥으로 연주를 하는 순서가 남았다. 전달된 점자 악보를 읽으며 오르간의 세팅을 변경하고 있던 비에르네는 갑자기 벤치 아래고 고꾸라졌다. 그 순간 성당 전체로 '미'음이 울려 퍼졌다. 쓰러진 그의 발에 눌린 페달 때문이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심장마비였다. 노트르담의 '그레이트 오르간' 위에서의 죽음을 동경했던 거장의 마지막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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