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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맛과 멋] 매일의 기적

이영주 / 수필가
이영주 / 수필가  

[뉴욕 중앙일보] 발행 2019/04/20 미주판 15면 기사입력 2019/04/19 16:52

내일이 부활절이다. 오늘 밤에는 모든 교회와 성당들이 장엄한 부활전야 예배나 미사를 올릴 것이다. 이렇게 부활절을 맞이하기까지 해마다 사순절이면 그 사십일 동안 나는 연례행사처럼 '진실의 입' 게임을 하게 된다. 진실의 입은 오드리 헵번의 할리우드 데뷔작이자 출세작인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온다. 유럽 한 왕국의 앤 공주(오드리 헵번)가 답답한 왕실을 벗어나 로마에서 천금 같은 휴일을 보내다가 그 와중에 만난 신문기자 조(그레고리 펙)와의 애틋한 사랑이 주된 줄거리인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이 바로 '진실의 입' 장면이었던 것이다.

남자 주인공 그레고리 펙은 오드리 헵번에게 로마 시내를 안내하다가 산타마리아 성당 입구에 있는 '진실의 입' 앞으로 데리고 간다. '진실의 입'은 '해신(海神) 트리톤'의 얼굴로 만들어진 것으로, 거짓말을 하면 입을 다물어 손을 잘라 버린다는 전설이 있다고 설명해준다. 오드리 헵번은 가슴을 떨면서 손을 넣었다가 얼른 뺀다. 나도 로마에 갔을 때 헵번이 했던 것을 거의 다 해봤다. 헵번처럼 '스페인 계단'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기도 했고, 유명한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져 로마에 다시 올 것을 기도하고, '진실의 입'에도 가서 손을 넣어 봤다. 손이 잘린다는 전설은 거짓말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막상 손을 집어 넣고는 "정말 내 손이 잘리면 어떡하나?" 겁이 났다. 한편 그동안 살면서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했을까, 스스로 반성도 되었다. 이렇게 가슴 찔리게 하는 '진실의 입'이 원래는 2500년 전, 로마 시대의 하수구 뚜껑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론 트리톤 얼굴 뒤에 칼을 가지고 숨어 있다가 손이 들어오면 자른 데서 전설이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사순절 동안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마다 습관적으로 '진실의 입'에 손을 넣으면, 어떤 날은 삶 속에서 부딪치게 되는 슬픔과 두려움, 회의, 절망, 수치심으로 가득 차 있고, 어떤 날은 희망과 기쁨으로 설레는 날도 있다. 그날 그날의 마음에 따라 일기예보처럼 흐렸다 개였다 하는 이 같은 '진실의 입' 게임을 하다 보면 스스로 정화되어서 부활절이 지나고 나면 나도 새 사람으로 부활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리고 출처가 불분명한 오래 전 메모를 다시 꺼내 희망 부활을 재확인한다.

교만하고 다른 이를 판단하는 나는 죽고, 겸손한 당신으로 부활합니다. 주님의 일과 내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에 게으른 나는 죽고, 부지런하고 민첩한 당신으로 부활합니다. 다른 이와 비교하여 시기하고 질투하는 나는 죽고, 오직 하느님 앞에 당당할 수 있는 당신으로 부활합니다. 부정적이고 사소한 일에 의기소침해지는 나는 죽고, 긍정적이며 대범한 당신으로 부활합니다. 말이나 글로 상처를 주는 나는 죽고, 희망과 사랑만을 전하는 당신으로 부활합니다. 고통과 절망감에 좌절하는 나는 죽고, 창조주이신 하느님 한 분께 온전히 속한 당신으로 부활합니다. 욕망을 버리지 못하는 나는 죽고, 절대 평화에 머무르는 당신으로 부활합니다. 의심하는 나는 죽고, 매 순간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당신으로 부활합니다.

이런 부활을 하고 싶어서 아마 진실의 입 게임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매일의 이런 부활이 내겐 매일의 기적이니 말이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도 말했다. "사람들은 진리가 멀리 어딘가에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 모든 시간과 장소와 사건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하느님 자신도 현재의 순간에 지고(至高)의 위치에 있으며, 과거와 미래를 포함하여 그 어느 시대도 지금보다 더 거룩하지는 않은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진실을 계속적으로 흡입하고 그 안에 적셔짐으로써만 비로소 숭고하고 고결한 것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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