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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투표율 아쉬워…인터넷·우편투표 절실"

김현명 총영사 이임 인터뷰

칭찬·감사 운동ㆍ내부화합 강조
정치력 신장ㆍ차세대 지원 성과
동포재단 해결 제대로 안돼 아쉬워
재외선거 우편ㆍ인터넷 투표로 해야

한미박물관은 민초의 참여가 우선
‘진솔한 총영사’로 기억되고 싶어


고민을 내려놓은 듯했다. 표정만큼 말도 밝았다. 김현명 총영사가 1시간30분간의 이임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쓴 단어는 ‘칭찬’ ‘감사’ ‘행복’이다. 실제 감사한 일이 많았다기보다는 ‘감사하자’ 다짐한 듯 했다.

LA는 시작부터 녹록지 않은 곳이었다. 2014년 4월17일 부임한 그는 한미동포재단 내분, 대한인국민회 유물문제 등 골치 아픈 단체 현안부터 마주해야 했다. 숨돌릴 새도 없이 LA항만에서 사상 최악의 물류대란이 터졌다. 부임 직후 '108배 기도'를 해야했던 이유다. 3번째 재외선거까지 치르고 떠나는 그는 홀가분해보였다. 인터뷰는 지난 7일 했지만 보도 시점은 미뤘다. 총영사 인사에 대한 외교부의 엠바고(보도자제 요청)가 12일 오후에 풀렸기 때문이다.

-조기 귀임이라고들 한다.(통상 총영사 임기는 2~3년이다)



"그렇지 않다. (웃으며) 물론 3년 근무를 기대했던 분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돌아가서 할 일이 있다."

-부임 2년을 꼭 채웠다.

"정확히는 733일이다.(그는 귀국일을 20일로 예상했다) 근무일수를 헤아린 것은 이라크(직전 부임지)에서부터다. 하루하루 보람있게 보내자는 다짐이다."

-이라크 근무가 어려웠나.

"지역적 특성 때문이다. 행정 절차가 느리고, 테러 우려 때문에 외출조차 힘들었다. 힘들다고 불평만 할 수 없었다. 내가 자원한 자리였다. '뇌의 소프트웨어를 갈아끼우자'고 결심했다. 발상을 전환하니 감사한 일만 생겼다.(그의 이라크 재임시절에 한국은 FA-50 국산 경공격기 24대 수출 계약을 성사시켰다. 11억3000만 달러로 사상 최고액이다.)"

-부임 첫날을 기억하나.

"LA총영사로 내정되고 나서 다들 '터프한 곳'이라고 하더라. 갈등 많고, 투서 많고, 사고도 많다고 해서 걱정됐다. 며칠 고민 끝에 LA에서 '칭찬.감사운동'을 하자고 결심했다. 한인사회에 긍정의 힘을 전하고 싶었다."

-LA에서 2년을 돌아보면.

"(이라크에서처럼) LA에서도 108배 기도를 했다. 항상 감사하자는 다짐을 지키려 최선을 다했다."

-쉽지 않은 일이다.

"스스로에 대한 감사부터 시작하면 된다. 지금 내가 가진 것들을 감사하면 당연히 타인에게도 감사할 수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난 참 운이 좋은 사람이다. 한인 정치인들의 당선이 쏟아졌다. 데이비드 류 LA시의원, 미셸 스틸 박 오렌지카운티수퍼바이저, 최석호 어바인 시장 등 역사적인 탄생을 목격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

-업무 성과를 자평한다면.

"내부적으로는 '뒷담화 금지령'이다. 조직의 건강 척도는 업무실적같은 숫자가 아니라 동료애다. 월요일 출근이 기다려지는 조직은 발전할 수밖에 없다."

-외부적으로는.

"정치력 신장 지원, 차세대 육성이다. 특히 차세대는 보좌관, 검사, 변호사, 상공인, 대학생, 넷캘 등등 모든 그룹을 관저로 초청해 만나고 물밑에서 지원했다."

-아쉬운 점은.

"LA가 외교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에릭 가세티 시장 등 주류 정치인들과 자주 만나긴 했지만, 주류사회와 일을 좀 더 많이 했어야 했다."

-재외선거가 끝났다. 만족하나.

"한인들이 가장 많은 곳이어서 선거 참여 홍보에 공을 들였지만, 투표율은 높지 않았다.(전세계 투표율 41.4%, LA는 35.7%) 이왕 할거면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인터넷.우편 투표를 도입해야 투표율을 올릴 수 있다."

-한미동포재단 내분이 골칫거리였을텐데. (그는 부임 3개월 만에 한인회장과 동반기자회견을 열어 재단 이사진 전원 사퇴를 촉구했다)

"(한쪽을 편들기보다)구성원 모두에게 명예로운 퇴로를 열어주고 싶었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이후 재단의 정상화를 압박할 다른 방법을 고민하다 얼마전 총영사관 명의로 재단측에 회계자료 공개를 요구했다."

-한미박물관 개발 프로젝트가 진행중이다.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눈물겨운 이민사와 독립운동사는 반드시 보존되어야 한다. 그런 작업은 시작단계에서부터 많은 사람들의 박수를 받아야 한다. 일부 돈있는 사람들만의 의욕이나 생각만으로 추진할 것이 아니라, 민초의 참여가 우선되어야 한다. 그래서 일반 한인들이 이구동성으로 서로 기부하겠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단체장들에게 섭섭한 점이 있나.

"공(公)에 사(私)가 없었으면 좋겠다. 리더라는 역할이 중요한 이유는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야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총영사로 기억되길 바라나.

"진솔한 사람이다. 숨김없이(heart to heart) 편하고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해주시길 바란다."

☞김현명 총영사는

1956년 전남 광산군 출생. 광주 동신고를 거쳐 서울대학교(75학번)를 나왔다. 1979년 외무고시 13기로 입부해 아시아, 유럽, 미주 등 전세계에서 이력을 쌓은 38년차 외교관이다. 총영사관 근무는 LA가 세 번째다. 뉴욕 부총영사(2002~2005), 후쿠오카 총영사(2007~2010)를 역임했다. LA 직전에는 이라크 대사직(2012~2014)을 자원해 FA-50 한국산 경공격기 24대 수출 계약에 기여했다. 수출 금액은 방산수출 사상 최대 규모인 11억3000만 달러였다.


정구현 기자 chung.koohyu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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