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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상처로 용서를 배우고 있다” 한인 청년 유진 최씨의 고백

갑자기 당한 칼부림 “그날부터…”

세상 이치 내가 다 이해 못 해
사고 후 보이지 않던 것 보여

20대 한인 청년이 대낮 LA한인타운에서 낯선 사람에게 칼부림을 당했다.

지난해 5월22일 오후 2시, LA지역 8가와 유니온 애비뉴 인근 버스 정류장.당시 한인대학생선교회(KCCC)에서 간사로 활동하던 유진 최씨에게 낯선 흑인 남성이 다가왔다.

그는 대뜸 “한국 사람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답하는 순간, 갑자기 그 남성은 뒤에서 칼로 최씨의 목을 찔렀다. 그리곤 몇 차례 더….

너무나 순식간에 발생한 일이라서 저항도 할 수 없었다. 목에서는 피가 뿜어져 나왔다. 최씨는 그대로 길거리에 쓰러졌고, 출혈로 인해 몸은 이내 차가워졌다. 시야가 흐릿해지면서 저 멀리 회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성이 도망가는 모습만 보였다.



현재 유진 최(26)씨의 왼쪽 목에는 상처 자국이 선명하다. 옷깃으로도 잘 가려지지 않는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유진 씨는 보행보조기(크러치)에 몸을 의지하고 있었다.

어느 날 낯선 사람에게 갑자기 당한 칼부림 사건은 그의 삶을 하루아침에 바꿔놓았다. 20대 청년으로서 다소 막연하게 느껴졌던 죽음의 개념을 실제로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모든 것을 소멸하는 죽음 앞에선 시간도 잠시 멈추는 듯했다.죽음의 문턱 앞에 섰던 당시 사건을 조심스레 물어봤다.


-(사고 당시) 무슨 생각이 들었어요.
"순간 많은 생각이 스쳤어요. ‘우리 엄마는 어떡하지?’ ‘내 자동차는?’ ‘내 기타는?’ ‘내 은행 어카운트는?’ ‘저 사람은 사람을 칼로 찌른 게 처음이겠지?’…수많은 생각이 들다가 갑자기 모두 부질없구나, 나는 여기서 이렇게 죽는구나…했어요. 당연히 불안하고 두렵기도 했고…그냥 하나님께 내 생명을 의탁하겠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어요.”

(대낮에 길거리에서 발생한 사건이었기에 목격자가 많았다. 지혈을 하려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의식을 깨우기 위해 저마다 “정신 차려라” “괜찮으냐”고 묻는 상황에서 유진 씨는 딱히 다른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죽음 앞에서는 정작 무슨 말이 나올까.)

-그때 어떤 말을 했나요.
“우린 한치 앞도 모르는,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존재잖아요. 이제 곧 죽는다고 생각하니까 그 말이 정말 와닿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나를 지혈해주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아느냐’고 물어봤죠. 만약 모른다면 그분을 꼭 알았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그리고나서 몸이 굳어져 가는데 뭐랄까…늦게까지 피곤하게 일한 뒤 집에 가는 느낌? 난 조수석에 푹 앉아있고, 예수님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이제 집으로 가는구나…했죠.”

(유진 씨는 왼쪽 목과 등 뒷부분, 총 5번을 찔렸다. 그 중 폐와 척추 일부는 치명상을 입었다. 다행히 응급 수술로 목숨은 건졌지만 몸의 감각들을 상실했다. 현재 왼쪽 하반신은 온도를 느끼지 못한다. 오른쪽 하반신은 감각을 잃어 눈을 감게 되면 손으로 다리의 위치를 찾을 수 없다. 의료진은 생명을 건진 것만으로도 기적이라고 했다. 유진 씨를 칼로 찌른 남성은 곧 검거됐다. 용의자는 검거 당시 범행을 부인하다가, 지금은 정신 이상 등의 이유로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재판은 오는 9월 진행된다.)

-이후에 그 사람을 본 적 있나요.
“증언할 때 만났는데 아주 잠깐 눈이 마주쳤어요. 너무 무서웠죠. 수많은 감정이 교차했어요. 하루는 병원에서 그 사람의 눈이 또렷하게 보이는 꿈을 꿨는데 갑자기 ‘겉모습만 보지 말자’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랬더니 그 눈동자 깊은 곳에 무서워하며 떨고 있는 작은 아이가 보이더라고요. 그때 ‘아…이 사람도 참 아팠겠구나,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라고 생각했어요.”

-원망의 감정은 없었나요.
“왜 없었겠어요. 퇴원하고 집에 왔는데 제대로 걸을 수 없다 보니 바지에 걸려서 넘어진 적이 있어요. 갑자기 내가 너무 불쌍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걷지도 못하고, 이젠 쓸모없는 몸이 되었다는 생각에 화가 났죠. 내가 왜 그 사람 때문에 이런 삶을 살아야 하는지 원망도 했어요. 하지만, 그 사람도 하나님이 사랑하는 영혼일 텐데…라는 생각에 다시 기도했어요. 그렇게 마음을 추스른 거죠.”

(유진 씨는 기자에게 “가장 힘든 게 뭔지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오늘도 못 걷는구나…내일도 달라질 게 없고, 앞으로도 희망이라는 게 보이지 않을 때”라며 “세상에는 아마 그런 상황에 놓인 사람이 많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유진 씨는 대학(UC리버사이드) 시절 미 육군에서 ROTC(학군장교훈련단)를 하며 군의관을 꿈꿨다. 하지만, 그가 겪은 고통은 20대 청년이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현실이었다.)

-참 힘든 시간이었을 텐데.
“성경에서 ‘욥’의 이야기를 읽었어요. 모든 고난을 다 겪었던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욥에게 자연의 이치를 통해 계속 질문하는 장면이 있어요. 원망만 내뱉던 욥이 아무런 답변을 못하죠. 그때 느꼈어요. ‘인생에서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건 정말 아무것도 없구나’라는 것을요. 그냥 그분이 있기에 내 존재가 있는 거구나, 내가 왜 사는지 몰라도 그분이 호흡을 주셨으니 살아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했죠. 그때부터 시각이 변했던 것 같아요.”

-무엇이 변했나요.
“초기에는 온몸에 감각이 없으니까 대소변을 보는 게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집에서 나갈 수가 없었어요. 하루는 영화를 보고 소파에 앉아 무심코 창문 밖을 보는데 갑자기 구름이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나무도, 심지어 ‘휙’하는 바람소리까지요. 하나님은 저런 걸 어떻게 생각해냈을까…참 신비로웠어요. 그러면서 깨달았죠. 이렇게 귀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그동안 참 많이 놓치고 살았었구나…평소에 보이지 않던 게 보이기 시작한 거죠.”

(유진씨는 솔직하게 마음을 터 놓았다. 자신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기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언론에 소개되는 것이 부담이 된다 했다.)

-기사가 나가면 많이 알려질 거예요.
“아마도 세상이 저를 바라보는 특별한 시선이 생기겠죠. 저런 일을 겪었으니 신앙심이 깊을 거라는 기대라든지…저 역시 그렇게 형성되는 이미지를 지켜야겠다는 부담을 나도 모르게 가질 수 있을 거에요. 하지만, 전 실수도 많고 정말 연약하거든요. 어쩔 때는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또 금세 무너지는 저를 보곤 해요.”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나요.
“사고 후에 사람들이 말해요. 이번 일을 통해 하나님이 크게 쓰실 것 같다고요. 물론 저는 그 말이 고맙지만 꼭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큰일’ 못하고 그냥 죽을 수도 있어요. 얼마나 큰일을 했는가보다, 내가 크리스천으로서 하나님의 길을 충실하게 걸었다면 그걸로 충분해요. 그것도 귀한 삶이니까요.”

-‘성공’이 뭐라고 생각해요.
“이 세상에서 영원히 가질 수 있는 게 있나요? 하지만, 사람들은 돈, 명예, 권력 등 뭔가를 소유했을 때만 ‘성공’이라고 규정하잖아요. 그런데 그걸 성공이라 한다면, 언젠가 모두 놓게 될 우리는 ‘실패’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거예요. 그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 사는 삶이 중요하다고 봐요.”

(요즘 유진 씨는 재활 치료에 매진하고 있다. 또, 캘스테이트풀러턴에서 ‘순무브먼트(구 KCCC)’ 간사로 활동중이다. 기타를 좋아하기 때문에 찬양팀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이제 인고의 시간은 다 지나갔을까. 아직 아니다.)

-왜 이런 일을 겪었는지 궁금하지 않았나요.
“솔직히 왜 내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그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정말 하나님만 아시겠죠. 그런데 하나님이 앞으로 나를 어디로 인도하실지는 정말 궁금해요.”

-곧 재판이 다가오네요.
“그 사람이 유죄 판정을 받든, 무죄 판정을 받든 바뀌는 건 없어요. 나는 계속 제대로 걷지 못할 거고, 몸에 난 상처도 그대로일 거예요. 그러나 딱 하나 바뀔 수 있는 게 있어요. 그 사람도 예수를 믿으면 용서받고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이죠. 그걸 위해 기도하고 있어요.”

(용서는 힘있는 울림이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존재를 용서하기 때문이다. 그게 예수가 보인 사랑일까. 유진 씨는 지금 상처를 통해 그 ‘용서’를 배우고 있다.)




장열 기자 jang.yeol@koreadaily.com jang.yeol@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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