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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파이팅을 하다

영어 ‘fighting’의 외래어 표기법은 ‘파이팅’입니다. ‘화이팅’은 틀린 표기입니다. 이런 외래어 표기법이 도대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사람도 많을 겁니다. 특히 영어를 잘하시는 분은 에프(F) 발음과 피(P) 발음을 저렇게 구분 못 하나답답해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말에 없는 피 발음과 에프 발음의 구별을 한글로 표기하려다가 생기는 문제입니다. 패션(fashion) 같은 단어도 우리를 괴롭히는 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행하는 옷차림이나 머리 모양 등을 패션이라고 하지만, 외래어는 아니지만 정열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도 표기하려면 패션(passion)이라고 해야 해서 종종 혼동되기도 합니다.

파이팅은 주로 스포츠 경기에서 쓰는 말입니다. 선수를 응원하기 위해서 관중이 파이팅을 외치기도 하고, 선수끼리 힘을 내자고 서로를 부추기면서 소리 높여 하는 구호이기도 합니다. 주로 운동경기에서 사용하는 말이니 파이팅, 즉 싸우자는 말이 구호가 되었겠지요. 그런데 저는 싸우자는 말을 운동경기가 아닌 상황에서도 사용하는 것을 보면서 좀 마음이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열심히 하자는 의미로, 힘을 내자는 응원의 말로 파이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싸우자는 말이지요.

우리말에서는 파이팅에 해당하는 특별한 말이 없었던 듯합니다. ‘얼씨구, 지화자’ 같은 추임새를 응원구호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좀 어색합니다. 지금은 ‘아자아자’를 구호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특별한 의미 없이 서로의 기운을 북돋우는 구호로 보입니다. 기원을 보자면 ‘가자, 가자’ 정도에서 온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영어에서도 파이팅 대신 ‘go’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한편 ‘청팀 이겨라, 백팀 이겨라!’가 신나는 구호였습니다. 2002년 월드컵을 지내면서 ‘대한민국!’이라는 말도 중요한 응원 구호가 되었습니다. 박수 소리와 함께 말입니다. 물론 ‘오, 필승 코리아!’도 중요한 구호입니다. 아직도 주요한 경기에서는 ‘대한민국’과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칩니다.

저는 파이팅이라는 구호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운동경기라면 이해가 되지만 평상시에도 우리는 인사처럼 파이팅이라는 말을 씁니다. ‘오늘도 파이팅!’이라든지, ‘자, 모두 파이팅 합시다.’ 같이 파이팅을 쓰기도 합니다. 이렇게 파이팅이라는 표현을 인사말처럼 쓰는 것은 싸움이 일상화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경쟁자와 경쟁 회사와 늘 전쟁하듯이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저에게는 싫은 마음이 커졌을 겁니다. 도대체 누구하고 그렇게 싸운다는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어쩌면 파이팅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은 싸운다는 의미를 그다지 생각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버릇처럼 쓴 거죠.



그런데 어느 날 저는 파이팅의 방향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누구하고, 무엇과 싸울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 겁니다. 동료나 경쟁자와 싸우는 것이라면 다툼의 느낌이 강할 수 있지만, 파이팅의 방향이 자신을 향한다면 전혀 느낌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파이팅의 방향을 안으로 바꾸어 보는 겁니다. 일상생활에서 이런 구호를 사용할 때는 나는 누구와 싸울 것인가, 무엇과 싸울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나의 상대가 다른 이가 아니라 힘들어하는 ‘나’라면, 그리고 내가 싸우는 대상이 의기소침해진 ‘내 마음’이라면 구호의 느낌은 한결 달라질 겁니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과 싸울 때도 있습니다. 그런 싸움일수록 지면 안 됩니다. 내가 지지 않으려는 마음이 무엇에 지지 않으려는 마음인지도 고민해야 합니다. 힘들수록 약해지는 마음, 무너지는 마음, 자꾸 포기하려는 마음과 맞서 싸워야 할 겁니다. 그리고 이겨야 할 겁니다. 이 마음은 남을 꺾고 이기려는 마음이 아닙니다. 세상은 좋은 곳이라는 믿음,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믿음이 흔들릴 때 내 마음과 싸워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나는 충분히 귀한 사람이고, 이 세상을 살만한 다 좋은 세상임을 다시금 깨달아야 하는 겁니다. 내가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흔들리고 있는 겁니다. 오늘도 저는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저는 오늘도 파이팅입니다. 우리 모두 파이팅 합시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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