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문학 산책] 그래島

그래島에 가고 싶다. 지금도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섬. 점보다 작아도 내가 꿈꾸는 모든 것들이 살고 있을 것 같은 땅 그래도를 생각한다.

나는 종종 김승희 시인의 '그래도 라는 섬이 있다' 라는 시를 떠올린다. 힘든 일이 생기거나 일이 꼬일 때면 기억의 호주머니 속에 접어둔 그 시를 꺼내어 혼자 읊조리곤 한다.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가장 낮은 곳에/ 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도 사랑의 불을 꺼뜨리지 않는 사람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그래島는 세상에 없는 섬이다. 아니, 무형 속에 존재하는 섬이라는 말이 맞겠다. 그래도는 절망의 밑바닥에서 가장 마지막 만나는 섬이리라. 그래도는 살다가 억장이 무너지는 순간 가뭄이 최고조일 때 떠나는 섬이다. 시인은 시를 이렇게 이어간다. 그래도는 누구나 다 그런 섬에 살면서도 세상의 어느 지도에도 알려지지 않은 섬이라고. 그래서 더 신비한 섬, 그래서 더 가꾸고 싶은 섬, 그래도 라는 섬에서 그래도 손만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 강을 다 건너 빛의 뗏목에 올라서리라고.

생각해 보라. 세상 어느 생인들 광풍이 없고 가뭄이 없을까? 그때마다 방패가 되어 준 것은 그래도, 그래島가 있어서다. 그래도가 없었다면 나 역시 여기 서 있지 못했으리라.



그래島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모두 그래島에 갈 수 있다. 세상 어느 지도에도 알려지지 않은 없는 섬이지만 함께 떠날 수 있다. 삶의 속살을 가르고 상처에서 비릿한 피냄새를 맡은 자만이 그래도를 발견한다. 낮게 타오르는 촛불처럼 가장 낮은 자세로 그래도에 도착한다. 누구나 내면의 최남단 최북단에는 한 뼘쯤의 그래도를 가지고 있다. 그래도는 사시사철 먹을 것이 풍족하고 따스하다. 그래島에서 쓰는 언어는 그래도다. 그래도 당신이 있어 고맙다고, 그래도 이만 한 것이 다행이라고 그래도에서는 그래도로 삶을 추스린다. 그나마 우리가 비빌 수 있는 섬이 그래도다. 외롭거나 배고플 때면 섬을 찾는 사람들은 위로와 잘 익은 열매를 한껏 가슴에 품고 세상으로 돌아간다. 그래도의 언어를 배워 광풍이 불어도 그래그래 하면서 집을 짓는다. 시구처럼 아무리 지치고 힘겨운 환경 절망과 눈물이 가득한 자리라 할지라도 서로의 온기로 힘을 내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 그래島다. 그래도에 가고 싶다.

바닥까지 내려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이웃들과 함께 지도가 아닌 마음의 비단길을 따라 그래도에 가고 싶다. 그보다 큰 용기와 위로가 있을까? 그래도는 지난날의 헛된 꿈을 버리고 우리를 겸손하게 다독인다. 그래도에 가면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보인다. 나를 사랑해주던 사람, 나에게 따스한 말 한마디 건네주었던 친구,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나의 어께를 감싸주던 가족이 보인다.

그래도에 가고 싶다. 지친 서로의 등을 부둥켜안고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라고 그래도 그만하기 천만다행이라고, 복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그때는 원망했지만 그래도 용서하겠노라고 서러운 것 속에 타오르는 찬란한 꿈을 위하여 그래島를 말하고 싶다. 시인은 말했다. 그래도 손만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 강을 다 건너 빛의 뗏목에 올라설 것이라고. 그래도 사랑의 불을 꺼트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에 가장 절실하고 가장 절망할 때 그래도, 말 한마디로 그래도, 마음 가짐 하나로 그래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이 되고 싶다.


김은자 / 시인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