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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가난한 이민자들의 노래

"나에게 이민을 허락하고, 가난을 딛고 음악가로 성공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미국에 이 노래를 바칩니다."

음악가 어빙 벌린이 그가 작곡한 노래 '갓 블레스 아메리카(God Bless America)'에 대해 한 말이다. '더 스타 스팽글드 배너(The Star Spangled Banner)'가 미국 공식 국가라면 이 노래는 제2의 국가라 할 만큼 미국인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1938년 제1차 세계대전 20주년 휴전기념일에 맞춰 발표됐다. 미국의 축복을 기원하는 가사로 국가 행사나 운동 경기 등에서 지금도 애창되고 있다.

2001년 9·11 직후에는 연방 상하원 의원들이 이 노래를 함께 부르며 미국민의 단결을 호소하기도 했다.

'갓 블레스 아메리카'를 작곡한 어빙 벌린은 러시아 출생의 유대계 이민자로 5살 때 미국에 왔다. 뉴욕 빈민가에서 어렵게 살았다. 초등학교만 나와 악보를 읽을 수 없었고 피아노도 제대로 못쳤다. 몇개의 코드로 작곡한 후 피아니스트에게 맡겨 곡을 만들기도 했다. 101세를 살면서 60년을 작곡에 매진해 1500여곡을 남겼다. 세계인의 애창곡 '화이트 크리스마스'도 그의 작품이다. 수많은 음악을 작곡했지만 벌린에게 '갓 블레스 아메리카'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는 생전에 "단순한 노래가 아니다. 오늘날 나를 있게 해준 미국에 대한 감사의 표시"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그에게 이 노래는 이민을 받아 준 '조국' 미국에 바치는 찬가였다.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14일 저소득층의 합법이민을 어렵게 하는 '공공복지 수혜안'을 발표했다. 이민자가 정부 복지프로그램 혜택을 받으면 영주권·시민권 취득을 제한한다는 내용이다. 자립할 능력이 없어 미국 재정에 부담되는 이민자는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뉴욕 '자유의 여신상' 기단부에 새겨진 엠마 라자루스의 시 '새로운 거상'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가난하고 지친 사람들, 자유를 갈망하는 무리여. 내게로 오라… 나는 황금의 문 옆에서 횃불을 들고 서 있겠다.'

시는 이민자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1886년 미국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프랑스가 선물한 자유의 여신상은 이민자를 염두에 두고 제작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여신상이 세워진 위치가 이민자들이 들어오는 관문이어서 '이민의 나라' 미국의 상징이 됐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 이민 규제가 강화되면서 문구의 의미는 퇴색해 가고 있다. 공적수혜자 규제 조치가 나온 다음날인 지난 13일 켄 쿠치넬리 이민서비스국(USCIS) 국장대행은 NPR공영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자유의 여신상에 새겨진) '가난하고 지친'이라는 문구를 '스스로 자립할 수 있어(stand on their own two feet)' 정부보조를 받지 않는 사람들로 바꿔야 한다"며 "이런 사람들만이 미국 이민의 자격이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더 이상 이민의 나라가 아니다. 자유와 풍요를 찾아 떠나온 사람들을 품어 그들의 꿈을 이루게 했던 약속의 땅은 멀어져 간다.

어빙 벌린은 '갓 블레스 아메리카'에서 "신이 축복하는 내가 사랑하는 이 땅, 산을 넘어 초원과 하얀 물결의 대양까지, 신이여 내 조국 아메리카를 축복하소서"라고 헌사했다. 하지만 가난하고 지친 이민자들에게 축복의 노래는 이젠 없다.


김완신 논설실장 kim.wanshi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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