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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 1년에 250명만 키워…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회사 키우고 싶지 않아요

에르메스 6대손 악셀 뒤마 회장

품질 기대에 못 미치면 생산 안 해
가방 잠금쇠 등 디테일에 신경써
디지털로 미래 고객에게 손 내밀어야
신문사도 비슷한 고민하지 않나
매장 매니저도 마음대로 제품 배치
활발한 논의 과정에서 창의성 나와
그리스 신화 영웅 율리시스 좋아해
힘들 때도 충실하고 흔들리지 말아야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의 최고경영자(CEO)인 악셀 뒤마(46) 회장은 에르메스의 고급 핸드백만큼 거리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지불 능력이 있어도 사기 어려운 에르메스 버킨백이나 켈리백의 높은 콧대를 생각하거나 위엄 있는 매장 분위기를 떠올리며 뒤마 회장도 근접하기 어려운 아우라를 지녔을 것으로 예단했다. 게다가 그는 창업자인 티에리 에르메스(1801~78) 가문의 6대손이다.

 지난해 12월 17일 서울 신사동 에르메스 도산파크 3층 VIP룸에서 뒤마 회장을 만났다. 그는 프랑스 억양이 느껴지는 유창한 영어로 모든 질문에 정성껏 답한 뒤 자문자답으로 콘텐트를 더욱 풍성하게 채워줬다. 이날 저녁 패션쇼장에서 다시 만났을 때는 “기사 잘 써지느냐”며 친근감을 표했다. 한 시간 넘게 행사장 입구에 서서 700여 명의 손님을 맞기도 했다. 배려하는 태도가 몸에 밴 듯했다.

 뒤마 회장은 3년 전 CEO에 내정됐고 준비를 거쳐 2014년 취임했다. 에르메스는 그의 5대조 할아버지인 티에리 에르메스가 창업한 이후 세대에서 세대로 179년 동안 이어졌다. 세대 안에서 능력이 출중한 인물을 CEO로 선발하는데 6세대 중에서는 그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2박3일간의 첫 한국 방문에서 그는 중앙일보와 단독으로 인터뷰했다.



 - 6세대 경영자로서 당면한 과제는.

 “선대처럼 나도 다음 세대가 자랑스럽게 여길 만한 업적을 이루고 싶다. 단기적으로는 풀어야 할 네 가지 과제가 있다. 미래에도 최고의 소재를 확보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첫째다. 최상급 원재료가 점점 귀해져 이를 발굴하고 관리하는 데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가죽·실크 같은 원재료 질이 완성품의 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가죽(가방)·실크·남성복·여성복 등 제품군 간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셋째는 지역간 균형, 넷째는 디지털 전략이다.”

 - 디지털과 명품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시각도 있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 고객의 현대적인 라이프스타일을 포용하고 욕구에 맞추는 것이야말로 에르메스의 강점이다. 1970년대 이사회 기록을 보니 세계 시장 진출을 둘러싼 논쟁이 생생하게 적혀 있었다. 일부 임원은 세계가 파리로 몰려오는데 위험과 비용을 감수하면서 굳이 해외에 진출할 필요가 있느냐며 반대했다. 그때 해외로 진출하지 않은 기업은 살아남지 못했다. 디지털도 선택의 여지가 없다.”

 - 디지털화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데.

 “70년대 해외에 진출할 때 쉬운 길을 택한 기업도 있었다. 라이선싱을 통해 남의 손에 사업을 맡겼다. 에르메스는 고된 길을 갔다. 직접 진출해 모든 의사결정을 몸소 했다. 디지털은 앞으로 기업 전략의 핵심이 될 것이기 때문에 직접 맡는 게 바람직하다.”

 - 구체적인 전략은.

 “매장과 디지털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인터넷에서 원하는 것을 검색한 뒤 매장에 와 구입할 수도 있고 매장에서 제품을 구경한 뒤 밤에 인터넷으로 살 수도 있다. 여러 채널이 어우러진 플랫폼이라는 의미에서 옴니 채널(omni- channel) 전략이라고 명명했다. 디지털은 온라인 구매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정보와 소통의 공간이라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

 - 기존 고객과 미래 고객을 구분하나.

 “디지털로 기존 고객에게 다가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래 고객에게도 손을 내밀어야 한다. 신문사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는 것 같은데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연령대 높은 독자의 90%가 종이신문을 읽고, 젊은 독자의 90%가 디지털신문을 읽고 있다면 30년 후 모습은 뻔하지 않나. 그 30년을 어떻게 관리할지 고민하면 된다.”

 - 179년 역사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처음 100년 동안 에르메스의 고객은 말이었다. 안장과 마구가 주요 제품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증조부인 에밀 에르메스는 프랑스 군대에서 쓸 가죽을 구하기 위해 미국에 갔다가 자동차가 말을 대체하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에르메스의 고객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었다. 당시 두 형제가 함께 회사를 운영했는데 ‘말이 없으면 에르메스도 없다’고 믿은 형은 지분을 팔았고, 에밀은 안장을 꿰매던 장인 정신으로 가방을 만들었다.”

 - 지난해 매출액은 전해보다 8% 증가할 전망이다. 과거 두 자릿수 성장률에는 못 미치는데.

 “매출액 10억 유로인 기업이 10% 성장하는 것과 매출액 40억 유로인 기업의 8% 성장은 다르다. 품질 관리가 우리에겐 가장 중요한 가치다. 기대하는 품질에 부합하지 않으면 차라리 생산하지 않는다는 게 원칙이다. 이런 부분이 성장에 영향을 끼친다. 한 예로 에르메스가 한 해 양성할 수 있는 장인은 250명에 불과하다. 그 이상으로 늘리면 교육의 질을 보장할 수 없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회사를 키우고 싶지는 않다.”

 - 올해 전망은.

 “유럽 위기, 중국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세계적으로 어려운 경제 상황이 계속된다. 경제적·지정학적으로 불안정한 환경에서 8%대 성장은 업계 평균을 웃도는 훌륭한 수준이다.”

- 양극화가 심화되면 럭셔리 소비도 영향을 받을 텐데.

 “에르메스는 럭셔리 회사가 아니다. 최고 품질의 상품을 만드는 장인 기업이다. 에르메스 제품은 로고가 없기 때문에 아는 사람만 알아본다. 남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 만족을 위한 제품이다. 본인만 촉감을 느낄 수 있도록 주머니 안쪽에만 가죽을 댄 외투도 있다.”

 - 장인정신과 소재에 탐닉하는 철학은 뭔가.

 “에르메스에는 마케팅 부서가 없다. 최고의 소재를 구해 장인들이 수십 시간에 걸쳐 완성하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든다. 비용에 따라 가격을 책정한다. 이렇게 하는 게 윤리적이라고 생각한다. 더 중요한 것은 창작의 자유다. 디자이너는 물론이고 매장 매니저도 제품 구성을 달리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린다. 그러기 위해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는데 이 과정에서 창의성이 발현된다.”

 - 품질이란 뭘까.

 “매장에서 보이는 아름다움이 아닌, 시간이 흐르면서 더 아름다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품질도 윤리의 문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사소한 디테일에 신경을 쓰는 것이다. 2007년 금융위기 여파로 금값이 치솟았을 때 가방 잠금쇠의 금 함량을 낮추는 문제를 논의했다. 함량을 낮춰도 당장은 알아챌 수 없지만 현재 수준을 유지해야만 8년 뒤 고색창연한 녹청을 띠게 된다고 장인들이 건의했다. 비용 절감 아이디어는 즉각 폐기됐다.”

 그는 그리스 신화 이야기로 마무리했다.

 “그리스 신화에는 위대한 전사였던 아킬레우스 같은 영웅도 있고, 현명한 영웅 율리시스(오디세우스)도 있다. 율리시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시련과 행복을 골고루 겪기 때문이다. 힘들 때나 기쁠 때나 스스로에게 충실하고 믿음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S Box] “인간미 중시하는 아시아적 가치 나와 잘 맞아”

“어린 시절 밥상머리 대화는 온통 에르메스 얘기뿐이었다. 삼촌(장루이 뒤마 전 회장)이 최고경영자(CEO), 어머니가 생산부문장을 지냈는데 내게는 ‘그들만의 세상’이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다른 삶을 꿈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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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셀 뒤마 에르메스 회장은 에르메스에서 일하는 것도, CEO를 맡는 것도 전혀 상상하지 않았다고 한다. 에르메스에 합류하기 전까지 금융인으로 살았다. 프랑스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에서 학·석사를 취득한 뒤 투자은행 BNP파리바에서 8년간 일했다. 어릴 적 환상을 갖게 된 중국을 직접 경험해 보고 싶어 베이징에서 근무할 수 있는 곳으로 첫 직장을 골랐다. 2년간 베이징에서 살았다. 그는 “존경과 인간미를 중시하는 아시아적 가치가 내 개인적 가치관과 잘 맞아 아시아에 오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말했다.

뉴욕에서 일할 때 삼촌이 찾아와 에르메스에 합류할 것을 권했다. 재무파트에서 시작해 소규모 제품군인 주얼리를 맡아 사업을 키웠고, 가장 큰 가죽(가방) 제품군을 맡은 뒤 CEO 후보로 내정됐다. CEO 선발 과정에 대해 “아마도 비공식적인 투표와 공식적인 만장일치가 있었을 것”이라며 웃었다.

에르메스는 최근 여성복의 성장 잠재력을 확인하고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디자이너 나데주 바니시뷸스키를 새로 영입했고, 서울·도쿄 등 파리 외 도시에서 패션쇼를 열고 있다. 지난해 12월 17일 고려대 화정체육관에서 열린 에르메스 여성복 패션쇼에는 한국·중국 등 아시아의 주요 고객과 언론을 초대했다.

글=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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