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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겁쟁이 둘째 딸의 살아가는 이야기

지난주 주 중에재택근무 중인 둘째 딸에게서 문자를 받았다. 자기가 다니고 있는 병원이 코로나바이러스 전용 병원으로 지정되었으며 현재의 위험한 사태가 지나가도 브루클린에 있는 다른 병원으로부터 코로나바이러스 환자를 계속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문자는 이어졌다. 자기는 앞으로 응급실에서 일하면서 코로나바이러스로 해서 어떤 환자는 살아나고, 또 어떤 환자는 죽어가는지에 대한 유전적인 특징에 관한 연구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직접 환자를 치료하지는 않아도 딸아이가 확진 환자들 사이에서 일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자랑스러움과 함께 적지 않은 걱정거리 하나를 떠맡게 된 셈이다. 딸아이는 할머니와 함께 사는 동료를 대신해서,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동료를 대신해서, 비교적 가족에 대한 의무가 가벼운 자신이 그 일을 해야 한다고 지원했다고 한다. 비록 아이들에게 사회에 대한 의무감을 말하며 살아왔지만, 막상 딸아이가 그런 결정을 내리니 걱정거리 하나를 얹어 주는 딸아이에 대해 야속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대놓고 자랑은 하지 않아도 육십이 넘는 세월 동안 나름 남에게 뒤지지 않는 건실한 삶을 살았다고 제법 자부심을 가진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가볍고 얄팍한지를 마주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둘째는 어려서부터 정도 많고 배려심도 부족함이 없었다. 5학년인가 6학년 됐을 땐가, 둘째 딸은 장래 희망을 말하면서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의사가 되어서 아픈 사람들의 병을 낫게 해주고 싶어서”라는 게 이유였다. 특별히 정신과 의사가 되어 정신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신과 의사가 되고 싶어 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둘째의 희망은 은근히 바뀌었다. 의사가 되겠다는 희망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해부학에 무한한 공포를 상상하면서 피도 뽑아야 한다는 사실 등을 알게 된 후, 겁 많은 둘째에게 의사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꿩 대신 닭’이라고 정신과 의사 대신 택한 것이 심리 상담가였다. 뉴욕주 심리상담가 자격을 획득한 둘째는 ‘SVA(School of Visual Art)’에서 학생들 상담 및 심리치료를 하면서 개인 상담도 하다가 현재는 뉴욕주 소속 심리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둘째는 얼마나 바쁘게 사는지 모른다. 오리건주를 왕복하면서 상담 박사 과정을 마치고 현재는 박사 논문 준비까지 병행하며, 지역사회 봉사활동에도 열심이다. 대학원생들 온라인 강의가 비는 시간을 이용해 움직일 수 없는 노인들이나 환자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 배달하는 봉사도 하고, 병원에 부족한 마스크를 위해선 작은 재봉틀을 사서 자기 남편과 함께 마스크를 만들어 병원에 보낸다. 어디 그뿐인가. 코로나바이러스로 비참하게 죽어가고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도록 병원 병실 벽에 그림을 보내는 일도 하고 있다. SNS를 통해 그림을 모으고, 자기가 일하던 예술대학 관계자에게도 편지를 써서 병원에 그림 보내는 운동을 하는 중이다.

내일부터 병원으로 출근하는 딸아이를 위해 아내는 립스틱으로 하트를 그리고 마커로 글을 써서 격려 카드를 만들었다. 윌리엄스버그 다리를 걸어서 건너며 해가 뜨는 하늘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딸에게 보냈다. 딸에게서 답장이 왔다. “씩씩. don’t worry about me!(나는 씩씩하니 걱정 마세요!)”

아, 겁쟁이 지영이는 어느새 나보다도 키가 훨씬 큰 어른이 되어 있었다.


김요한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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