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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고] "윤동주는 재외동포 시인"

'한국인이 사랑하는 시인 1위' 윤동주. 그는 '중국 조선족 애국 시인'인가, 아니면 '(대한민국의) 재외동포 시인'인가. 대한민국 교육부가 올해부터 초등학교 6학년 도덕 교과서에서 '재외동포 시인 윤동주'로 기술하기 시작해 논란이다.

재외동포의 법적 개념은 '외국에 거주하는 한민족 혈통을 가진 사람'이다. 재외동포에는 재외국민과 한국계 외국인이 포함되는데 시인 윤동주를 단순히 재외동포로 분류한 국정 교과서가 얼마나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28년이라는 짧은 생애 중에 윤동주는 북간도에서 약 20년, 평양과 서울을 합쳐 4년여, 그리고 일본에서 4년을 살았다. 하지만 윤동주의 뿌리는 명백히 한반도였다. 증조부(윤재옥)는 식솔을 이끌고 1886년 고향(함경도 청진부 포항정 76번지, 지금의 함경북도 종성)을 떠나 두만강을 건너 불과 50여km 떨어진 북간도로 이주했다.

'윤동주 100년 포럼'이 2017년 출간한 '미술관에서 만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는 "용정 광명중학과 연희전문(연세대의 전신) 학적부, 일본 교토 재판소 판결문은 윤동주가 조선인(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절대 문건"이란 표현이 등장한다.



그런데 85년 무렵 뒤늦게 윤동주의 위상과 중요성을 인식한 중국은 '윤동주=중국인' 공작을 착착 진행하고 있다. 급기야 2012년 8월 윤동주 생가 앞에 '중국 조선족 애국 시인 윤동주'라는 거대한 화강암 비석과 중국어로 번역한 시비를 못박기 하듯 세웠다.

세월이 가면 윤동주가 중국어로 시를 쓴 중국인 시인으로 착각하게 만들 정도다. 하지만 윤동주는 줄곧 한글로만 시를 발표했다.

홍정선 인하대 명예교수('문학과 지성사' 전 대표)는 "52년 9월 조선족 자치구(55년 12월 자치주로 격하)가 만들어지면서 '중국 거주 외국인'이었던 조선인은 '중국인 조선족'이 됐다. 하지만 윤동주는 조선족이란 용어조차 없던 시절에 살았다"고 반박했다.

그렇다면 교육부가 윤동주를 재외동포 시인으로 단정하는 표현을 교과서에 싣는 과정에서 충분한 고증을 거쳤을까. 재외동포재단 관계자는 "지난해 교육부에 '재외동포 시인 윤동주' 표현 삽입을 제안했고 교육부가 수용했다. 이 과정에서 재단이 독립기념관·대한민국역사박물관 측과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설명만으로는 충분히 수긍하기 어렵다. 재단 관계자는 "국문학계와 역사학계에서 윤동주의 국적을 둘러싸고 견해가 다른 것 같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중국이 일방적으로 윤동주를 중국 조선족 애국 시인으로 몰아가는 것을 막아야 하는데 우리는 국어 시간에 윤동주를 동포시인으로 가르치지 않는 것이 더 문제"라고 강조했다.

일제는 1909년 9월 4일 대한제국령이던 간도를 청나라에 넘겨주는 간도협약(밀약)을 체결했다.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는 "윤동주를 재외동포로 분류하는 것은 위험하다. 윤동주가 태어난 간도를 우리 땅이 아니라고 버리는 셈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자칫 중국 논리에 이용당하면 곤란하다는 얘기다.

시인 윤동주의 일생은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에 한민족이 겪은 아픈 역사의 단면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판이 다시 요동친다. '그들'이 또다시 한반도를 넘본다. 나라를 지키는 일이든 시인을 지켜내는 일이든 감정보다는 철저한 대비와 연구가 먼저다.


장세정 / 한국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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