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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선 '아빠와 딸' 보다 든든한 동료"

'가업 잇는다'-올림픽 동물병원 권태삼 원장 부녀

늦깎이로 도전한 둘째 딸

LA한인타운에 있는 '올림픽 동물병원'의 권태삼(64) 원장에겐 든든한 '동료'가 있다. 나이 차가 좀 있지만 신학문으로 무장한 탓에 배우는 것도 많다. 진단이 까다로운 동물의 상태를 두고 머리를 맞대다 보면 정확한 치료법을 쉽게 찾기도 한다. 권 원장에게 힘이 되는 동료는 둘째 딸, 루시아(34.한국이름 혜현)다.

권 원장은 "혼자일 때 보다 진단이 빠르고 정확하다. 아버지의 오랜 경험을 충분히 존중하면서 동물 치료의 가장 좋은 방법을 찾고자 하는 모습이 믿음직하다"고 말한다.

권 원장은 2년여 전 10살짜리 골든리트리버 진단에 얽힌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한인 고객이 데려왔는데, LA 인근 여러 병원에 가봤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다. 밥을 안 먹고 고열에 시달리며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 일단 링거를 맞춰 살려놓고 소변 및 혈액검사를 했는데도 별 이상이 없었다. X-선, MRI 촬영을 하면서 원인을 찾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딸과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신경 부분 MRI를 다시 했고 결국 '쿠싱'이라는 개들에게서 많이 발병하는 일종의 뇌종양을 찾아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주인은 개가 2년 정도만이라도 더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는데, 원인을 찾아 방사선 치료를 잘 한 덕에 2년 이상 살고 있다"고 뿌듯해 했다.

열정이 있어야 가능한 일

권 원장은 1992년 산타클라리타에서 병원을 시작했고 3년 전 LA한인타운으로 이전했다. 루시아와 동물병원 일을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UCLA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루시아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인이 됐다.

딸만 셋인 권 원장은 은근히 한 명쯤은 같은 공부를 해서 함께 일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하지만, 수의학이라는 게 일반 의과대학 과정과 비슷해 공부하기가 쉽지 않고, 흥미도 있어야 해서 강요하지는 않았다.

결국, 세 딸 모두가 다른 전공을 택했다. 큰딸, 지현(36)은 역사를 공부해 교사가 됐다. 막내, 승현(30)은 영화 쪽에 관심이 있어 지금은 할리우드의 한 영화사에 근무 중이다.

"정말, 뜻밖이었죠. 어느 날 둘째가 수의사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직장생활을 잘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뒤늦게 수의학 공부라니요."

서울대 수의학과를 졸업한 권 원장은 미국에서는 한국 수의사 면허를 인정하지 않아 독학으로 외국인 수의사과정(ECFVG)을 공부했다.

머리 맞대면 진단 더 정확

1983년 샌호세로 이민을 왔고 당시 컴퓨터회사에 다녔던 터라 짬을 내 공부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둘째 딸의 뒤늦은 도전이 안쓰러운 이유이기도 했다.하지만, 둘째 딸의 의지가 워낙 강해 결국 승낙을 했고 하얀 가운을 입은 딸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지원했다고 한다. 루시아는 카리브해 세인트키츠&네비스에 있는 수의학 전문 로스대학(RUSVM)에서 4년을 공부해 무난히 수의사 면허를 받았다.

RUSVM에서 공부할 때 버려진 개와 고양이 한 마리씩을 돌봤는데, 지금까지 키우고 있을 만큼 동물에 대한 사랑도 깊다.

루시아가 병원에 합류한 것은 2년 반쯤 됐다. 그후 권 원장의 생활도 많이 달라졌다. 타인종 직원 2명과 근무할 때는 일 이외의 이야기가 별로 없었지만, 루시아가 합류하면서는 집이나 일터에서도 동물 이야기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권 원장은 "금요일 오전에는 딸이 혼자 근무를 해 조금 느긋하게 출근하는 여유도 갖게 됐다"며 웃었다.

"아버지와 함께 일하니 마음이 든든하다. 책을 통해 많은 내용을 배웠지만 아버지의 경험을 따라잡으려면 아직 멀었다"는 루시아는 "진로를 바꿔 수의사의 길을 걸으면서 베테랑 수의사인 아버지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겐 큰 행운"이라고 말했다.

경험·열정 '아름다운 동행'

인터뷰를 위해 최근 두 번째로 병원을 찾았을 때는 마침 흰색 털의 작고 귀여운 말티즈가 수술대에 올라 있었다. 배 안쪽에 있는 작은 돌기(종양)를 제거하는 수술이었다. 수술은 루시아가 맡았다. 시간이 조금 걸릴 수 있어 주사보다는 가스마취를 택했다.

권 원장은 "전신마취를 해야 하는 데, 약물로는 오래가지 않는다. 수술 중 동물이 깨면 위험할 수 있다. 40분~1시간 이상 걸리는 경우라면 가스마취가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말티즈의 입을 열고 호스를 연결하는 루시아의 손길이 빠르고 정확했다. 반창고로 고정한 호스가 탄탄하게 밀착됐는지를 확인하고는 흡입성 마취제인 이소플루레인을 주입했다.

말티즈가 곧바로 마취상태로 빠져들었다. 초록색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손을 몇 번이나 깨끗이 씻어 소독한 루시아가 메스를 건네 받았다.

수술은 40분 정도 이어졌고, 수술실을 나서는 루시아의 표정은 밝았다. 권 원장은 "딸이 많이 해 본 수술이라 잘한 것 같다. 정말 대견하다"며 환하게 웃었다. 가업 승계보다는 '아름다운 동행'이란 말이 더욱 또렷해지는 순간이었다.


"병원 확장보다 정성어린 치료가 먼저죠"

수의사 부녀의 희망

LA한인타운 올림픽과 크렌쇼 불러바드 북쪽 코너에 있는 올림픽동물병원은 자그마하다.

그래도 리셉션 데스크, X-선 촬영기를 갖춘 진찰실, 마취 및 수술도구가 있는 응급 및 일반 수술실, 동물보호 케이지 등이 깔끔하게 잘 정돈돼 있다.

권 원장은 루시아가 합류한 후 병원 확장도 고려했었다. 하지만 좋은 서비스가 우선이라는 생각이다. 동물을 사랑해서 키우지만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경제적 사정 때문에 안락사를 선택하는 고객을 볼 때는 안타깝다고 말했다.

권 원장은 "큰 수술이라면 비용이 만만치 않다. 동물보험이 있다면 다르지만 가입한 한인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며 "무리한 확장보다는 내가 건강을 유지하며 찾아오는 고객들을 더 오랫동안 돕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더 크다"고 밝혔다.

물론, 권 원장도 병원 규모를 키워서 딸에게 넘겨줄 수 있다면 만족이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딸이 좀 더 좋은 환경에서 훌륭한 수의사의 길을 걷기를 바라는 부모의 심정이다.

그러나 루시아도 "사람들은 이제 애완동물을 가족으로 생각한다. 수의사로서 그들에게는 가족인 동물치료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지금처럼 아버지와 함께 노력하다 보면 단골손님도 늘고 좋은 기회도 있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김문호 기자 kim.moonho@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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