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생업 수단으로 시작했지만 이젠 천직"

가업 잇는다 -'민 헤어숍' 미용사 모녀

20년 넘게 함께 일한 '동지'
손재주 좋은 둘째 딸 '큰 힘'
어머니는 선교에도 전념
딸 헤어숍에서 일하는 재미


지난 2014년. 꼭 20년을 한 자리에서 같은 일에 종사한 모녀는 큰 고민에 휩싸였다. 30년을 미용사로 일한 어머니는 더 이상 미장원을 꾸리기 벅찬 상태였다.

하루 종일 서서 하는 일이라 관절이 약화하고, 오른 중지 끝 마디 인대마저 손상돼 깁스를 해야 할 판이었다. 마침, 사업체 인수를 원하는 사람이 있었다. 한창 공부해야 할 두 자녀를 둔 딸도 살림까지 하면서 몰두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LA한인타운 로데오 갤러리아몰에 있는 헤어월드는 전속 미용사도 6~7명이나 되는 규모 있는 사업체였다. 고심 끝에 모녀는 사업체를 넘기기로 했다.

"지금 얘기지만 당시엔 인수하는 측에서 모든 것을 그대로 넘겨받기를 원했지요. 상호도 그대로 쓰기로 했기 때문에 주인이 바뀐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어요. 아쉽고 미안했지만 단골손님들에게조차 일일이 인사를 하지 못했지요. 늦었지만 이제라도 그 분들께 너무 죄송하고 그리고 또, 감사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일흔 나이를 앞둔 어머니 정향숙 원장은 그렇게 은퇴를 했다. 모녀의 가업 잇기도 그렇게 끝나는 듯했다. 하지만, 평생 미용사로 일해 온 정 원장은 왼무릎 수술을 받고, 손가락 인대 치료를 하면서 어느 정도 건강을 추스를 수 있게 되자 다시 가위를 잡고 싶어했다.

"얼마나 좋은 일이에요. 손님 머리를 깨끗하게 정리해서 모양을 내주고, 그에 만족해 하는 모습을 보는 기쁨은 어떤 다른 것과도 바꿀 수 없어요."

하지만, 뒤늦게 다시 미용실을 차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 대신 정 원장은 선교활동에 더 열심히 참가하기 시작했다. 기독교 신자인 정 원장은 헤어월드 원장시절부터 매년 중남미 선교활동에 참여해 왔다. 정 원장이 하는 일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미용 재능을 기부하는 것이었다.

"지난 5월에는 코스타리카에 다녀왔어요. 보통 열흘 정도 선교를 가면 500-600명 정도의 머리를 감기고 헤어컷을 하죠. 하루가 저물면 손가락이 뻐근해 제대로 오므릴 수도 없어요. 그래도 그렇게 10일 정도 머물며 봉사를 하고 나면 마음이 너무 편해져요. 남을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행복한 거죠."

정 원장은 아직 손가락이 채 아물지 않은 상태지만 지난 주말에도 LA 남부 낙후지역인 캄튼으로 선교활동을 다녀오기도 했다.

둘째 딸인 민 김(45. 결혼 전 성 그대로 소개 원함)씨도 20년 가위 솜씨를 그대로 묵히기에는 아쉬움이 있었다. 물론, 사업체 정리 후 김씨는 자녀를 돌보는 데 올인하면서 첫 째인 딸, 앨리스가 UCLA 4년 전액 장학생에 선발되는 기쁨을 맛봤다. 이제 막내 아들도 고등학생이고 스스로 잘 챙기는 편이라 다시 미용실 사업에 대한 미련을 갖기 시작했다.

김씨는 한인타운 3가와 호바트 코너에 지난 5월 '민 헤어숍'을 오픈했다. 800스퀘어피트 규모의 아담하지만 부티크 스타일로 꾸몄다. 헤어숍 운영은 철저히 예약방식을 고수한다. 업체 평가사이트, 옐프 리뷰를 보고 찾아 오는 타인종 손님들도 많은 편이다. 예약은 최소 30분 단위 이상으로만 받는다.

"손님 한 명 한 명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인터넷을 보고 멀리서 찾아오거나 단골손님이었던 분들도 있는데, 5~10분 만에 뚝딱 해치우면 너무 섭섭하잖아요. 머리도 감기고, 가위질을 하면서 사는 이야기도 하고, 저는 그런 재미가 좋아요. 손님들도 좋아 하고요. 아마 그런 것 때문에 한 번 찾아 오면 계속해서 오는 것 같더라고요."

아무리 예약 위주로 운영을 해도, 무작정 찾아 오는 손님이 없지는 않다. 난감하지만 그냥 돌려 보낼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럴 때는 '30년 가위 장인'이 나선다. 어머니 정 원장에게 SOS를 치는 것이다.

김씨는 "어머니는 지금도 가위만 잡으면 행복해 하신다. 너무 급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어머니에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며 "고객 머리를 단장하는 솜씨는 예전과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고 자랑한다. 요즘 정 원장은 옛 단골손님 요청만은 거절하지 못하고 일주일에 서너차례는 헤어숍 전속 미용사로 변신한다.

정 원장에 미용사는 천직이다. 한국에서도 명동의 한 업체에서 헤드미용사로 10년 이상을 일했다.1991년 LA로 이민온 후로도 줄 곧 가위를 놓지 않았다. "처음 2년은 남의 밑에서 일을 했지요. 그러다가 로데오몰에 개인 미용실을 냈는데, 솜씨가 좋아서 그런지 단골들이 많이 생겼어요. 너무 바쁘다 보니, 손재주가 좋은 둘째딸에게 배워볼 것을 권했지요."

1남2녀의 자녀들 중에서 둘째가 미용사로 어머니와 같은 길을 걷게 된 계기였다. 김씨도 처음에는 안 한다고 했다. 어디 나다니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실내에서 손님 머리카락만 자르는게 재미 없어 보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혼해 둘째를 갖고 가정 경제에도 보탬이 될 필요 때문에 미용사에 도전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미용사는 자격증을 따는 것부터 쉽지가 않아요. 미용학교에 등록해 무려 1600시간을 이론과 실기 공부한다게 보통이 아니죠. 그렇게 라이선스를 딴다고 해도 다시 손님을 제대로 받기까지 3년 정도의 수습이 필요하거든요."

다행히 김씨는 어머니가 운영하는 미용실에서 쉽게 적응할 수 있었고, 지금도 짬만 나면 수다를 떨 수 있는 '미용실의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 김씨는 "생일을 맞거나 결혼하는 사람들에게는 돈을 안 받았어요. 그랬더니 어머니가 '땅 파서 장사 하냐'며 참 많이도 혼냈죠"라며 웃는다. 전에는 어머니가 사장님이었다면, 민 헤어숍에서는 이제 김씨가 사장으로 베테랑 정 원장과 새로운 얘깃거리를 만들고 있다.

"마추지는 사람들 머리만 보여요"

모녀의 '직업병'

한 가지 일에 오래 종사하다 보면 누구나 직업병이라는 걸 달고 살게 마련이다. 컴퓨터를 다루는 사람은 어깨와 손, 발레리나는 발(가락), 야구선수(투수)는 어깨와 이빨이 성치 않다.

정향숙 원장도 30년 넘게 가위질을 하다 보니 손가락 인대가 끊어지고 뻣뻣해 지는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신체적인 병만 있는 게 아니다. 정 원장이나 둘째 딸 김씨는 같은 '병'이 있다.

외출을 하면, 그들의 눈에는 온통 사람들 머리만 보인다고 한다. 정 원장은 "손질이 잘 된 멋진 모습이 있는가 하면, 정말 성의없이 깎인 머리(카락)도 있어요. 내 손님이면 금방이라도 다시 만져 주고 싶은데, 달리 방법은 없고. 그럴 때면 혼자 상상으로 가리마를 왼쪽, 오른쪽으로 타보고, 머리카락을 잘라도 보고 붙여도 보면서 최상의 조합을 찾죠"라고 말한다. 미용사라는 직업이 의외로 최신 뉴스에도 민감해야 한다. 물론, 뉴스가 주로 최신 유행과 패션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어쨌든 모녀는 함께 TV나 인터넷을 보면서 '최근 헤어 스타일 따라잡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고 한다.

정 원장은 "미용사는 한 달만 쉬어도 유행에 뒤처진다. 지금은 젊은 사람들도 살짝 퍼머를 하는 게 유행이다. 그런 것을 알아야 손님에게 좋은 서비스를 할 수 있고.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이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김문호 기자 kim.moonho@koreadaily.com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