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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솥엔 잘 익은 메주콩 "아, 엄마의 맛"

메주 띄우는 마을 '아델라 농장'을 찾아서

메주
잘 불려 가마솥에 삶아야 제 맛
하얀 곰팡이 생긴 뒤 두 달 숙성
청국장
삶은 콩 채반에 담아 단기 숙성
며칠뒤 찐득한 진 생기면 먹어


애플밸리에 들어서자 제법 매서운 바람이 불었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손이 시릴 정도로 추운 날씨였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회색빛 나무들 사이로 뽀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올랐다. 이른 아침부터 피워낸 장작불 위로 커다란 가마솥이 연신 하얀 김을 뿜어 올렸다. 육중한 가마솥 뚜껑을 들어올리자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폭신하게 잘 익은 메주콩이 푸짐하게 뜸이 들고 있었다. 말캉말캉한 콩을 얼른 한 꼬집 집어들고 입에 넣었다. 아… 이 맛! 미각이 불러내는 추억은 머리로 기억하는 것보다 때론 더 날카롭다. 엄마의 메주 담그던 모습은 영 기억이 없는데, 고소한 메주콩은 여지없이 그 시간을 불러왔다. 이 맛… 엄마의 맛이야…

우리 조상은 대대로 겨울이 시작되면 김장을 담그고, 수확한 햇 콩으로 메주를 만들어 겨울이 끝날 때쯤이면 장을 담갔다. 추수한 쌀을 곳간에 쌓아두고 김치를 두둑이 담가 긴 겨울을 대비하고, 햇살이 따뜻해질 때쯤 한해살이 준비를 위해 장을 담그는 것이 가장 중요한 생존적 의례였다. 드물게도 콩은 한반도 북부가 원산지로 부여시대 때부터 장을 담갔고, 중국과 일본까지 전수되었다는 기록들이 다수 발견되고 있다. 특히 삶은 콩으로 메주로 띄우는 발효 방식은 세계에 내놓아도 뒤처지지 않는 음식 문화다.

좋은 장을 담그려면 먼저 콩이 가장 좋아야 하고, 그 콩으로 쑨 메주를 어떻게 잘 띄었느냐에 따라 장맛이 달라진다. 요즘 세상에 전통 방식으로 장을 만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만큼 손도 많이 가고 더디다. 하지만 발효 식품은 시간과 정성을 들일 만큼 들여야 비로소 빛을 본다. 아델라 농장의 김아델라씨는 "발효는 기다림의 연속이다. 정성스럽게 가꾼 유기농 콩으로 가마솥에 불을 지펴 만드는 재래식 방법은 더더욱 번거롭고 수고롭지만 애를 쓰는 만큼 달라지는 장맛을 볼 때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메주 만들기

메주는 재래식 그대로 가마솥에 삶아야 제 맛이 난다고 한다. 김씨는 콩을 6시간 정도 불린 다음 가마솥에 넣고 6시간 정도를 은근하게 삶아준다. 포실포실하게 콩이 다 익으면 절구에 넣고 빻는다. 거칠게 빻은 메주콩을 틀에 담아 모양을 찍어낸 다음 손으로 꼼꼼하게 다듬어 햇빛과 바람이 잘 드는 발효실에 두면 10일 정도가 지나 하얀 곰팡이가 생긴다. 메주는 푸르거나 검은 곰팡이가 생기면 절대 안 된다고 한다. 이대로 두 달 정도 숙성한다. 잘 띄운 메주는 겉모습이 노르스름하고 잘라낸 단면은 진이 많고 불그스름하다. 보통 짚 위에 얹어 발효시키면 짚의 미생물이 숙성을 촉진시켜 좋은 메주가 된다. 짚도 농약을 쓰지 않는 것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재래식 메주는 야생의 잡균이 많이 번식해 특유의 향을 내고 집집이 장맛이 다른 이유가 되기도 한다. 적정한 온도와 착생 된 미생물이 콩의 성분을 분해할 수 있는 단백질분해효소와 전분분해효소를 만들어 내고 간장을 담그면 고유한 맛과 향기를 내는 미생물이 더 번식한다. 구한말에 우리나라를 방문한 서양인들은 메주에 엉겨붙은 하얀 곰팡이를 보고 한국의 식문화가 불결하다고 비판적이 있었지만, 오늘날 세계의 음식학자들은 우리의 발효식품을 가장 선진적인 식문화라고 말한다. 서양의 발효식품은 주로 동물성이지만, 한국의 발효식품은 거의 식물성이라 더 가치가 높다.

청국장 만들기

콩으로 만든 장은 크게 보면 메주를 만들어 간장과 된장을 분리해 먹는 장기 숙성 장과 단기간에 담가 먹는 청국장으로 나눌 수 있다. 청국장은 메주를 발효시키는 겨울 동안 콩을 삶아 짚과 함께 넣은 후 따뜻한 온돌방에 천을 씌워 수일 동안 숙성시킨 다음 찌개를 끓여 먹었다. 아델라농장에서는 삶은 콩을 넓은 채반에 담아 따뜻한 아랫목 같은 발효실에서 숙성시킨다. 며칠 후 찐득한 진이 생기면 바로 먹을 수 있다.

김씨는 여러 가지 채소와 두부를 큼직하게 썰고 청국장을 듬뿍 넣어 진하게 끓여 구수한 시래기밥과 함께 내었다. 야들야들한 햇시래기밥에 들기름과 청국장을 넣어 비벼 먹는 맛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아삭한 마늘장아찌와 겨우내 척박한 밭을 뚫고 나오는 야생 민들레무침을 곁들여 먹으니 한겨울의 귀한 성찬이 되었다.

먹을 것이 변변치 않았던 옛 겨울, 서민들의 특식이 되었던 청국장 찌개를 예찬한 어느 옛 글이 떠오른다. "청국장 몇 술 넣고 무나 우거지를 건지 삼아 넣고 북어 토막, 두부, 파, 고기를 넣고 푹 끓이면 맛있다. 청국장이 없으면 메주라도 말갛게 씻고 쿵쿵 두드려 넣으면 우거지가 부드러워 맛있다. 이 찌개를 어떤 때는 고기 안주보다 맛있게 먹는다." 세월이 지난 지금은 오히려 영양 과잉의 식탁에 올려야 할 귀한 음식이다.

아델라농장 메주 구입처=가주생협 (714)773-4984

글.사진=이은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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