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말] 부란 또는 불안

세상이 ‘불안투성이’입니다. 불안(不安)은 믿지 못하는 마음에서 시작합니다. 쌓아놓은 돌이 쓰러질 것 같으면 불안한 겁니다. 안심(安心)이 되지 않는 것이 불안입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이 특별할 게 없다면 불안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인지 막상 어떤 일이 닥치고 나면 불안도 사라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미 일어난 일이기에 ‘믿고 안 믿고’ 하는 걱정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안은 믿지 못하는 사실,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사실 속에서 흔들리고 있는 내 모습입니다.

제목에 일부러 불안이라는 글자를 ‘부란’이라고 써 보았습니다. 발음이 같기에 그냥 한번 써 본 겁니다. 부란이라고 쓰고 나니 불안의 심리가 더 다가옵니다. 마구 흔들립니다. 불안은 같은 일이 반복될 때는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물론 힘들었던 기억은 미리 나를 불안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일상의 일은 나를 그다지 불안하게 하지는 않습니다. 밥을 먹으면서, 세수를 하면서, 걸어가면서 불안해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일이 앞에 나타나면 불안해집니다. 잘할 수 있을까 겁이 납니다. 물론 불안은 새로움에 대한 흥분의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불안하면 심장이 뛰기 시작합니다. 핏줄 속에 피톨이 뛰어다니고 정신이 없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심장 소리가 들립니다. 이는 불안한 소리인 동시에 몸을 데우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몸이 준비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도 기분은 좋지 않습니다. 준비라고 생각하지 않고 불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점점 더 힘이 드는 겁니다. 머리는 알고 있지만, 가슴은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때로는 심장이 아프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때 의사 선생께 증상에 대해 물어보면 일반적인 증상으로 별로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마음속에 불안한 상황이 지나가면 증상도 스르르 사라집니다. 잠시 딴생각만 해도 심장 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불안이 지나치면 병이 됩니다. ‘노이로제’가 불안증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합니다. ‘노이로제 걸리겠다’는 말을 어릴 때 자주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릴 때 노이로제의 예로 들었던 것은 버스의 손잡이가 더러워서 병에 걸릴까 봐 손수건으로 감싼 후 잡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였습니다. 그 사람은 남이 잡은 물건을 잡으면 꼭 손을 씻는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이상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때 저희는 손도 잘 안 씻고, 머리도 잘 안 감고, 목욕도 거의 하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화장실을 갔다 오면 손을 씻어야 한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으니 말입니다.

제가 알고 있던 노이로제의 예를 떠올려 보면 지금 세상의 사람들은 모두 노이로제 환자입니다. 청결한 사람이나 생활 방역을 잘 지키는 사람이 오히려 환자인 셈입니다. 도대체 믿을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사람을 만나도 두렵고, 이야기하기도 무섭습니다. 밥을 같이 먹기도, 차를 한 잔 함께 마시기도 마음이 내키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압니다. 잘 지켜야 모든 이를 이롭게 하는 것도 잘 압니다. 잘 지켜야 할 겁니다. 모두 노력해야 합니다. 다만, 불안한 우리의 모습이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불안은 예측되지 않고, 믿지 못할 때 커집니다. 위생적인 생활을 하면서 서로를 믿고, 서로에게 따듯한 한마디 건네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 그래서 사람이 더 좋아지는 우리였으면 합니다. 글을 맺으며 부란을 지우고 다시 불안이라고 씁니다. 불안을 지우고 다시 ‘새로운 시작’이라고 씁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