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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원 칼럼] 제자리 찾기

십수년 전, 미국에서 맞은 첫 크리스마스 이브. 한국으로 기사 송고를 모두 마친 저녁 시간, 뒤늦게 쇼핑몰을 찾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 준비가 안된 아이들용 '산타 할아버지 선물'을 사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쇼핑몰이 문을 닫은 상태였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더 북적이는 한국의 쇼핑몰과는 전혀 딴 판이었다. 이웃 동네 대형 백화점까지 가봤지만 마찬가지였다. 돌고 돌다가 결국 집 근처 편의점에서 빈약한 선물과 카드를 사서 트리 아래 놓아 두었고, 게으른 아빠의 미안함은 한동안 가시지 않았다.

조지 부시 정권 말기부터 크리스마스에 "메리 크리스마스" 대신 "해피 할러데이" 인사가 더 자주 들리기 시작했다. 신문과 방송은 '해피 할러데이'를 '다문화 인정 매너'로 계몽했고, 버락 오바마 정권 들면서는 "해피 할러데이"가 "메리 크리스마스"를 완전히 대체했다.

청교도 정신을 바탕으로 건국한 미국은 '멜팅 팟'(Melting pot)이 아닌 '샐러드 보울'(Salad bowl)을 지향해가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자본'이 미국의 경제 뿐아니라 정치•법조•사회•문화까지 주도해가는 것으로 보였다.

지난 주말, 갑자기 필요한 물건이 생겨 대형 마트를 찾았다. 마트 앞 도로로 접어든 순간, 텅 빈 주차장이 보였다. 다른 쇼핑몰로 급히 차를 몰았지만 역시 문이 닫혀 있었다. 부활절. 예수의 부활, 기독교에 있어 가장 큰 의미를 지니는 날을 기념하기 위한 휴무였다. 기독교 정신을 앞세운 기업 칙필레이는 물론 코스트코, 샘스클럽, 메이시스 등 상당수 업체가 이날 문을 닫았다.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많은 업체와 업종이 참여한 듯하다.



성탄절과 부활절은 기독교인들만의 기념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의 근간을 형성하는 데 있어 기독교 정신이 절대적 역할을 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미국이 갖고 있는 전통이자 문화이기도 하다.

이같은 기념일이 타 종교 신자들에게 특별한 불편을 끼치지 않는다면 반대하거나 외면할 이유는 없다. 각 종교 지도자들이 다른 종교의 기념일을 축하하는 것도 이런 까닭일 것이다.

크리스마스에 "메리 크리스마스" 대신 "해피 할러데이"로 인사해야 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억지 또는 강요다. 유대교나 이슬람, 불교의 특정 경축일 인사도 모두 '해피 할러데이'로 바꾸거나, 보편적 표현을 써야 한다고 주장할 수 없지 않은가.

가치와 이념 문제도 마찬가지다. 내 생각을 기준으로 나와 다른 의견을 "틀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가치와 이념은 각자 삶의 배경과 경험에 따라 형성된다. 상대에게 "당신 생각을 버리고, 내 의견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것은 곤란하다.

어쩌면 특정 가치의 절대성을 주창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위험한 도그마가 아닌가 싶다. 개인이든 사회든 국가든 모두 마찬가지다. 특히 정부나 권력이 의도를 갖고 사회나 역사의 일정 부분을 그때 그때 비트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보수와 진보, 민주와 공화, ‘태극기’와 ‘촛불’을 무 자르듯 구분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대척점에 있다기 보다 보완•경쟁의 개념이다. 생각이나 가치, 이념이 경험을 통해 정제되거나 변화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약간의 불편을 감수해야 했던 부활절 휴무를 통해 전통의 제자리 찾기, 상대에 대한 존중이 되살아나는 듯해 오히려 반가웠다. (발행인)


노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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