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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낡은 얼굴

제작 년도가 오래된 차를 낡은 차라 부른다.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여도 그다지 좋은 값을 주지 않는다. 이미 여러 가지 부품의 사용 기한이 지나서 고장의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자동차의 값을 결정하는 것이 세월이라고 말할 수 있다. 태어난 지 오래 된 사람을 늙은 사람이라 한다. 용어를 바꾸어 말하면 낡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은 세월만 가지고 판단하지 않는다. 낡은 사람이 아니고 늙은 어른이라고 불리며 많은 시간 살아낸 삶이 오히려 더 큰 가치를 갖기 때문이다.

사진 작가들 중에는 사람의 얼굴만 찍는 인물 사진 작가가 있다. 유명인들의 얼굴을 작가의 시선을 담아 그려내어 그 인물이 이루어낸 특별한 무엇을 얼굴 사진에 잘 녹여서 끌어낸다. 그래서 보다 감동적인 이야기를 전해 주는 사진을 완성하여 지난 일들을 더욱 생생하게 만들어 준다. 다른 경우의 인물 사진은 유명 인사는 아니지만 주름 가득한 평범한 인물의 얼굴을 통하여 또 다른 이야기나 옛날을 되살려 낸다. 고난의 행로를 견디어 내던 사라진 종족의 얼굴, 추운 고장의 차가운 바람을 이겨낸 단단한 얼굴, 원색으로 치장한 어느 원시 종족의 바람 같은 생애의 얼굴, 전쟁의 틈새에서 총성을 넘어 살아남은 강인한 생명의 얼굴들이 현장을 뛰는 사진 작가의 노력으로 증인의 시선이 되어 우리들을 바라 본다. 굴곡진 얼굴에 살아온 내력이 고스란히 새겨진 늙은 얼굴이 거기에 있다.

어느 오지에서 그들만의 삶을 이어오는 종족이나 밀림 속에 작은 부족 사회에서는 그 공동체에 문제가 생기면 그 마을의 원로를 찾아가 지혜를 구한다. 그때에 모습을 드러내는 늙은 얼굴은 그 보여지는 모습 만으로도 이미 많은 것을 말해주는 때가 있다. 긴 시간 살아 온 나날이 겪어낸 많은 이야기가 담긴 크고 작은 주름과 함께 깊이 바라보는 눈길이 이미 노인의 지혜를 젊은이들에게 전해 주는 듯 하다. 그들의 한마디는 그 사회의 길이 되고 이정표가 되어 부족을 인도한다. 한국도 한 집안의 연장자는 그 집안의 지혜가 되고 원칙이 되고 세상 물정의 판단 기준이 된다. 한 마을의 경우도 원로의 의견은 오랜 세월 그 마을을 지켜 내려오며 그 마을이 있게 만든 귀중한 지혜의 원천이다. 원로의 원숙한 얼굴이 마을을 한 번 주시하면 그것으로 질서는 바로 서고 기강이 유지된다. 늙은 얼굴의 힘이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러나 어느 날 노인의 지혜를 소용 없게 만들었다. 그들이 살아 온 방법은 더 이상 살아가는데 효력이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살아가는 방법의 원리가 전혀 다른 차원으로 바뀌어 버렸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더 이상 노인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게 되었다. 값이 없어졌으므로 늙은 사람이라 생각하던 것을 그저 소용 없어진 오래된 자동차처럼 낡은 사람이라 여기는 시절이 되어 있다. 큰 바위 얼굴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을까 하는 물음과 함께 연장자의 말씀이 낡은 생각, 낡은 방법, 낡은 지혜로 밀려나는 세태를 맞아 낡은 얼굴이 되어가는 길 위에 모습으로 나타난다. 존경 받는 늙은 얼굴이 되지 못하고 쓸모 없는 낡은 얼굴이 되어가는 걸 알게 되는 일은 아주 슬픈 일이다.



늙었으나 큰 바위 얼굴인가, 낡아서 소용 없이 버려지는 얼굴인가, 오늘도 갈림길로 다가 서는 많은 얼굴들이 있다.


안성남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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