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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그림찾기] 다시 새해, 그리고 가족

배운성, 가족도, 1930~35년, 캔버스에 유채, 139x200.5㎝, 대전 프랑스문화원 소장. [사진 갤러리현대]

배운성, 가족도, 1930~35년, 캔버스에 유채, 139x200.5㎝, 대전 프랑스문화원 소장. [사진 갤러리현대]

마당부터 대청마루와 사랑방까지, 닮은 사람들이 한데 모였습니다. 색동옷 입은 여자아이를 맨 앞줄에 앉히고, 조바위 쓴 아기를 안은 왕할머니가 든든히 중심을 잡았습니다. 17명 대가족에 백구까지, 총출동입니다. 2m 넘는 이 그림은 1930년대 배운성(1900~78)이 독일에서 그린 것입니다.

이 대형 가족 초상화의 주인공은 화가가 서생으로 신세를 진 서울 갑부 백인기(1882~1942) 가족으로 추정됩니다. 가난한 배운성은 주인집 아들 백명곤을 따라 일본 와세다대학을 거쳐 독일 베를린으로 건너갑니다.

유학 중이던 백명곤이 병에 걸려 귀국했으나, 돌아갈 여비를 보내주지 않아 배운성은 남았습니다. 이렇게 혼자 남아 이룬 일은 당시 조선 태생의 그 어느 화가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1927년 베를린국립미술학교 전람회에서 3등상, 1929년 파리국제전람회에 5점의 판화 출품, 1933년 폴란드 바르샤바 국제미전서 1등상…. 1935년엔 함부르크 민속미술박물관서 이 ‘가족도’를 비롯한 87점으로 대규모 개인전을 열었고, 1937년 파리로 건너가 살롱 도톤느에 출품해 장식미술부 회원으로 추대되기도 했습니다.

다시 ‘가족도’로 돌아갑니다. 한옥 창밖 풍경에선 제법 원근감도 느껴지고, 맑게 쓴 색감과 윤곽선은 어딘가 친근해 한국화 느낌도 납니다. 아이들 색동옷 차려 입혀 모인 것이 명절쯤 됐을까요. 흥성스러운 모습 뒤편엔 타국에서 화가가 견뎠을 외로움이 녹아있는 것 같습니다. 화가는 맨 왼쪽에 흰 두루마기 차림의 자기 모습도 그려 넣었습니다. 다시는 돌아가 그 일원이 될 수 없는 자화상입니다.



남의 가족이지만 어딘가 친숙합니다. 이런 집에, 이렇게 많은 가족이 명절에 모이던 시절들이 있었죠. 사랑방 앞에 다소곳이 앉은 남치마 입은 여자 아이나 백구 뒤에 앉아 대님을 매는 소년에서 자신의 옛모습을 찾을 독자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왼쪽에 차렷 자세로 선 빨간 치마 소녀부터 칭얼대는 남자 아이 손을 잡고 정면을 보는 어머니까지, 닮은꼴 가족의 모습이 한 사람의 일생을 보는 것도 같습니다.

해가 바뀌었고, 곧 설날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권근영 / JTBC 스포츠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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