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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한인 봉제업의 '트럼프 갈등'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봉제공장을 운영하는 H사장은 요즘 심경이 복잡하다. 트럼프 대통령 탓이다. 지난 대선이 끝났을 때만 해도 H사장은 사실 기대가 컸다. 수입품에 국경세를 부과하고 특히, 중국산 수입품에는 고율의 관세를 매기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 때문이었다. 공약만 지켜진다면 LA에서의 의류생산도 다시 활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이 있었다.

H사장만이 아니다. LA에서 봉제업을 하는 많은 업주가 그런 생각을 했다. LA 봉제업은 거듭하는 임금인상과 노동법 단속 강화로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이미 2년 전부터 LA 봉제공장들은 멕시코를 비롯해 라스베이거스, 텍사스 엘파소 등으로 옮겨 갔고, 봉제업은 크게 위축됐다. 값싼 외국산 의류에 밀려, 미국에서 옷을 만든다는 건 더욱 어려워진 상황이다. 오죽하면 '메이드 인 USA'의 경쟁력을 믿고 국내 생산을 고집하던 매뉴팩처들도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하고 해외 주문으로 눈을 돌리고 있을까.

그러던 터에 트럼프가 등장하고,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매기겠다니, 봉제업자들에게는 '가물에 단비' 같은 소식이었을 것이다. 고율의 관세로 국내산 의류도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으니, 의류제조의 메카인 LA 봉제공장으로 일감이 몰릴 것을 계산하는 것은 당연했다. 뭔가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는 바람이었다.

하지만, 요즘 들어 LA 봉제공장주들은 새로운 고민에 봉착했다. 불체자 단속 탓이다. LA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은 대부분이 멕시코 등 중남미에서 왔다. 그런데 이들 중 상당수가 합법적 체류 신분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한인 봉제업자들에 따르면 공장마다 80% 이상이 불체자일 것이라고 추산한다. 멕시코 등 중남미 이민자들이 없으면 사실상 봉제업 자체가 돌아갈 수 없다는 의미다.



지난 16일에는 자바시장 일대에 이민단속국의 불체자 체포 소문이 나돌면서 공장마다 작업에 큰 지장이 있었다. 때마침 '이민자 없는 날' 캠페인이 겹치면서 작업장마다 적게는 2~3명, 많게는 7~8명까지 결근한 곳이 많았다. 사장이 직접 재봉틀에 앉아 박음질을 하고, 다림질을 하는 풍경도 있었다. 어떤 공장에서는 '단속반 떴다'는 얘기에 재봉틀을 돌리던 종업원이 곧바로 도망가는 해프닝도 있었다고 한다. 분위기가 그러니 작업이 제대로 될 리 만무다. 일단 봉제공장 불체자 단속은 소문에 그쳤지만 돌아가는 형세로 봐서는 아무래도 한바탕 대대적 단속이 있을 모양이다.

트럼프가 미국 제조업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특히, 중국산 수입품에 45%나 되는 높은 관세를 매기겠다고 했을 때는 '약'이 될 것으로 믿었지만, 뒤이어 터져 나온 불체자 단속은 봉제업의 근간을 흔들 '병'이 될 우려가 크다. 약은 아직 주지도 않았는데 병부터 주려는 것은 아닌지.

불체자 단속은 비단 봉제업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멕시코 등 중남미 출신 고용이 많은 식당이나 건축, 청소업 등은 직격탄을 맞게 된다. 제조업을 활성화하고 일자리를 확보하기는커녕 오히려 봉제업이 타격을 받고, 사회 기반이 되는 주요 저임금 업종들은 기로에 설 수밖에 없다.

H사장은 그래도 '트럼프를 믿고 싶다'라고 했다. 불체자 단속은 소문처럼 그렇게 무분별하게 마구잡이로 순식간에 이뤄질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불체자 단속은 법으로 하는 일이라 무작정 반대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전후사정을 봐 가면서 절차에 따라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는 사이에 해외 생산 의류에 대한 관세를 높이면 일단, LA 봉제공장들도 종업원 임금 제대로 주면서 비즈니스를 할 수 있을 것이다. LA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갈 이유도 없어질 것이다.'

물론, 40년 이상 자리를 지켜 온 LA 한인 봉제업이 트럼프 경제정책으로 활성화하면 좋겠다. 그런데 쏟아지는 후속 이민정책을 보니, 당분간은 '병'이 위세를 떨칠 모양이다. '환자'에 따라 살살 '약'으로 달래야 할 때도 있는 데 말이다.


김문호/경제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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