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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을’이다

이소영/언론인

또다시 월요일이다. 학생과 직장인은 말할 것도 없고 주부든 사업가든 이 세상에서 월요일을 반기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다. 꿀 같은 휴일을 보낸 뒤 맞이하는 월요일은 마치 맹수가 우글거리는 정글 속으로 다시 뛰어드는 느낌이다. 정글 중에서도 사나운 맹수들의 공격이 치열하기로 유명한 곳은 사바나다. 인간 세상에서의 사바나는 뉴욕 맨해튼쯤 되지 않을까.

더글러스 케네디의 소설 ‘더 잡, The Job’(사진)은 무자비한 정글의 세계, 뉴욕 맨해튼의 비즈니스 세계를 무대로 하고 있다. 기업 구조조정, 인수합병, 정리해고 등의 단어가 한창 신문을 도배하고 있던 1990년대 중반의 이야기다.

서슬 퍼런 칼바람이 맨해튼 한복판을 후비고 있을 때, 네드 앨런 역시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당한다. 주인공 네드 앨런은 알래스카에서 냉장고를 팔 수 있을 만큼 능력이 뛰어난 세일즈맨이다. 그가 근무하는 잡지사 ‘컴퓨월드’는 네드 앨런의 활약으로 엄청난 광고 수주 실적을 올리게 되고 눈에 띄게 성장한다. 네드는 입사 3년만에 팀장에 오르며 승승장구하지만, 적대적 M&A를 통한 회사의 인수합병 과정에서 비열한 음모의 희생양이 된다. 경력을 살려 다른 곳에 취직하려 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게 되고 아내와의 관계도 오해만 쌓여간다.

이런 네드에게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제리가 손을 내민다. 사모 펀드인 ‘엑스칼리버 펀드’에서 일을 하도록 주선해주는데 막상 회사에 와보니 실제로 그가 하는 일은 제리의 설명과 많이 달랐다. 네드가 하는 일은 바하마에 개설된 비밀계좌를 통해 남미의 마약조직 비자금과 마피아 자금에 대한 돈세탁을 대리하는 일이었다. 비자금이 든 노트북 가방을 바하마로 운송하고 입금하는 운반책 역할이었다. ‘엑스칼리버 펀드’라는 이름의 유령 회사는 사실상 마피아 불법자금 세탁창구였다. 자기가 하는 일이 어떤 위험하고 더러운 일인지 알면서도 당장 생활이 막막한 네드는 그만둘 수 없었다. 샐러리맨 월급으로 살인적인 뉴욕의 집값과 생활비를 충당하기도 벅찼기에 네드는 도덕과 윤리를 따질 여유가 없었다.



“법적으로는 ‘비윤리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다. 노골적으로 피터슨을 협박하지도 않았고, 발행인으로의 승진을 비밀에 부쳐야 한다는 크레플린의 지시를 충실히 따랐다. 그렇지만 나는 분명 양심에 부끄러운 짓을 했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일단 부도덕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으면 방향감각을 잃고 바다 한가운데로 표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더글러스 케네디 작가의 ‘더 잡’ 본문 중-

케네디 작가의 글은 통쾌한 반전이 묘미이다. 전작 ‘빅 피쳐’, ‘파리 5구의 여인’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 또한 ‘을’을 조종한 ‘갑’에게 통렬하게 복수하고 주인공이 새 삶을 여는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이야기의 기본 골격은 너무나도 뻔한 구조이지만, 네드가 복수를 계획하면서 물고 물리는 치열한 두뇌 싸움을 벌이는 과정이 큰 볼거리이다.

소설의 배경은 90년대 후반. 당시 우리나라 또한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직격탄을 맞고 피바람이 낭자한 때였다. 수 많은 기업이 쓰러졌고 그곳에서 근무하던 수많은 아버지들이 정리해고를 당했다. 이뿐인가. 번듯한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할 곳이 없어 편의점 파트 타임 자리조차 하늘의 별 따기였다. 지금까지도 한국 사회를 괴롭히고 있는 지긋지긋한 청년 취업난의 시작은 이때부터였다.
뉴욕 한복판에 실업자로 던져진 네드의 인생과 우리네 직장인의 삶이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돈이 곧 권력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고자 노력한 네드에게 과연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내가 만약 하루 아침에 직장을 잃은 실업자 신세라면 당장 이번 달에 빠져나갈 각종 공과금과 휴대폰 요금, 월세 걱정이 앞섰을 것이다. 내 통장에 채워지는 월급이 검은돈이든 흰 돈이든 그런 건 알고 싶지도 않은 문제가 된다. 이런 예민하고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어 이 책은 마치 미국판 ‘미생’을 보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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