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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속 뉴스] '조금' 흔들려야, 안전하다

[LA중앙일보] 발행 2017/02/27 미주판 8면 기사입력 2017/02/26 17:25

# 순간 공기까지 얼어붙는다. 탁자 밑으로 피하라고? 솔직히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땅이 흔들리는 지진이 올 때 두세 살 난 애들끼리는 말한다. "바닥에 착 달라붙어 있으면 돼." 그래, 모든 건물이 땅에 굳게 박혀있으면 안전하지 않겠는가. 지진이 어제오늘 일이 아닐 텐데, 모르긴 몰라도 건축학적으로 수많은 시도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이상한 발상이 튀어나왔다. "흔들리는 지진에 맞춰 건물도 어느 정도 흔들리게 하자." 내진 공법. 건물에 가해지는 지진력을 산정, 이것에 대한 구조물의 응력(應力) 등을 계산해 허용치(쓰러지지 않을) 이내가 되도록 짓는 것이다. 응력이란 물체가 외부 힘의 작용에 저항하여 원형을 지키려는 힘이다.

# 옆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라. 성실이 무엇입니까? 대부분은 '항상 일정하게' '꼬박꼬박' '꾸준한 노력' 등의 뉘앙스를 담은 답변을 할 것이다. 정성스럽고 참됨. 성실(誠實)의 원래 뜻이다. 보통 사람들의 인식보다 훨씬 넓고 깊다. 1년 내내 지각·결석 한번 없이 출근해 맡은 업무를 하는 사람은 성실한 사람인가? 맞기도하고 틀리기도 하다.

아돌프 아이히만. 나치 유대인이주 과장으로 유대인을 유럽 각지에서 폴란드 수용소행 열차로 이송하는 최고 책임자였다. 그는 매우 성실(흔히 말하는 차원에서)하게 수백만 명을 죽였다. 합법적 선거에 의해 정권을 잡은 히틀러의 지시에 순응한 공무원. 나중에 재판정에서 그는 "당시는 전쟁 중이었고 나치 상부에서 지시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지금도 둘러보면 아이히만은 널려있다. 그들은 성실한 부류로 지칭되거나, 어떠한 생각이나 자발적 선택 없이 편안히 몸을 사린다. '성실한 나 몰라라'.

# 좋고 나쁘고, 옳고 그르다. 이 네 가지는 사람의 행동을 이끈다. 인간은 좋고 나쁘고의 인식으로 먼저 사물을 구분하고, 이어 옳고 그름의 인식을 통해 앞선 좋고 나쁘고의 판별 이유를 정당화한다.

얼마 전 안희정 지사가 '선의의 의도'를 이야기한 것은 이 범주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비난이 쏟아지자, 안 지사는 결국 이 발언을 사과해야 했다. 그의 본심은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과는, 다만 그가 '정치 철학도'에서 '실제 정치인'으로 나서는 변곡점으로 보인다.

# 미국(트럼프)과 한국(박근혜)에서 연일 신념의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좋고 나쁘고로 시작된 신념은 이후 옳고 그름이 첩첩이 보태지고, 성실한 지지자들이 뒤를 따르면서 매우 단단한 형태가 됐다. 거리에서 표어로, 언론에서 주장으로, 수치를 통한 세력의 크기로 격렬히 부딪치고 있다. 신념은 굳게 믿는 마음이다. 단단해야 하고 다른 쪽의 신념(생각)이 파고들 여지를 줘서는 안 된다. 그래서 단단한 두 개의 신념이 맞부딪치면 대지진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파국은 눈 앞에 생생하다. 수많은 의견이 쏟아지는 현대사회에서 막무가내식 단호함과 교조적 성실함은 개인은 물론 조직, 사회, 국가의 적이다.

올바르고 안전한 신념은 나침반의 바늘과 같아야 한다. 바늘은 언제 어디서든 반드시 남북을 가리키지만 항상 바르르 떨리고 있다. 그 미세한 흔들림은 유대인을 학살한 '교조적 아이히만'에겐 없었던, 비판적 사고와 너그러운 이해 사이에 있다.

한국의 탄핵정국 승부가 조만간 끝난다. 한쪽은 패하고 그 분노는 여진이 된다. 이 여진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흔들림'이 필요하다. 승리한 '신념의 건물'도 어느 정도 흔들려줘야 안전하다. 충돌, 떨림, 흔들림은 와해의 전조가 아닌 새로운 탄생을 위한 신념 속의 대지진이다. 내진공사는 일정한 강도(强度)의 확보와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연성(延性)의 조화.

대한민국은 정치적 내진공사를 준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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