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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수 칼럼] 늙으며 잊으며

“낮에는 꾸벅꾸벅 졸고 밤에는 잠이 오지 않는다. 곡할 때는 눈물이 없고, 웃을 때는 눈물이 흐르며, 30년 전 일은 모두 기억해도, 눈앞의 일은 문득 잊어버린다. 고기를 먹으면 배 속에 들어가는 것은 없이 모두 이 사이에 낀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성호 이익(李瀷)이 늙음을 한탄하며 했다는 말이다.

언제부터인지 잊기를 잘 한다. 요새는 까마득한 어렸을 때 일은 또렷하게 기억해도 핸드폰을 찾으려 집안을 뒤지는 일은 예사고 그로서리 장 보고 나서 가게를 나서며 주차한 곳을 찾느라 두리번거리는 일도 자주 있다. 이럴 때마다 여기저기서 보고 듣는 치매니 알츠하이머에 관련된 얘기가 생각나서 불안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누구에게서 오래전에 들은 말이지만 자동차 열쇠를 어디에 놨는지 생각이 안 나는 것은 괜찮으나 자동차 열쇠를 손에 들고 “이게 뭐하는데 쓰는 것이지” 하게 되면 큰일이라고 한다. 전자는 단순한 건망증이고 후자는 치매라는 것이다.

내가 집을 나서기 전에 매번 챙기는 것이 세 가지 있다. 열쇠 꾸러미, 핸드폰, 그리고 운전 면허증이 든 지갑이다. 밖으로 나돌 때 어느 하나라도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다. 언제부터인지 집에 돌아와서는 이 셋을 꺼내서 한군데 모아 놓는 습관이 생겼다. 그래야 다음 행차 때 수월하다. 외출할 때마다 이것들을 찾느라 온 집안을 헤집다가 생각해낸 아이디어다. 그런데 때로는 생각대로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오늘 아침에도 열쇠꾸러미를 찾느라 20여 분을 소비했다. 엊저녁에 차 트렁크에 남겨놓은 물병을 꺼내 오고 나서 열쇠를 원위치시키지 않은 것이다. 한번은 핸드폰을 냉장고에 넣고 하루 만에 찾은 일도 있었다. 그로서리를 냉장고에 넣으면서 얼떨결에 같이 넣었으리라는 것이 집사람의 추측이나 황당한 일이다.

건망증은 나이와는 무관하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증세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렇다 해도 기억력이 감퇴하는 것은 나이가 들면서 몸으로 느끼게 된다. 잘 알던 유명 인사의 이름이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기도 하고 매일 챙겨 먹는 의사 처방 약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불확실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이라고 자위하면서 마음을 다독이긴 한다.



건망증 하면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아인슈타인은 자기 집 주소나 전화번호도 종종 잊어버려 곤경을 겪었고 록펠러 재단에서 받은 1500달러짜리 수표도 책갈피로 사용하다가 책과 함께 분실해 잃어버렸다고 한다. 더 재미있는 일화는 기차 여행 중 차표를 잃어버린 이야기다. 차장이 차표 검사 중 아인슈타인이 차표를 어디에 두었는지 몰라 부산스럽게 차표를 찾게 되자 아인슈타인을 알아본 차장이 괜찮다고 했다. 아인슈타인은 계속 차표를 찾으면서 하는 말이 “차표를 찾아야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있을 텐데.” 조선 말기의 지사요 명필인 윤용구(尹用求)가 서예 한 폭을 다 쓰고 명호를 쓰고 낙관을 할 단계에 “내 이름이 뭐지?” 했다는 일화도 있다.

내 지인 중에 자기 부인이 TV 보다가 휴대폰 소리가 나니까 휴대폰 옆에 있는 TV 리모컨을 집어 귀에 대며 “여보세요” 했다고 치매 초기 증상이 아닌가 걱정하는 말도 들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라는 우리 옛 속담이 얼핏 생각났지만, 치매가 환자 자신뿐 아니라 수발하는 가족과 보호자에게 끼치는 해악 때문에 나온 과민 반응 아닌가 한다. 인간의 본질은 이성적인 사고와 조리 있게 뇌세포에 정돈된 기억에 근거한 인지 기능에 있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에서 ‘생각’을 빼면 ‘나’는 없어진다. 치매는 이 ‘생각’을 몽땅 빼앗아 인간의 근간을 뿌리째 뽑아 버리는 병이다. 암보다 치매가 더 무섭다고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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