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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행복?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 

[뉴욕 중앙일보] 발행 2018/09/12 미주판 15면 기사입력 2018/09/11 16:43

약물 과다복용 증상을 약간씩 보이는 병동 환자 여럿에게 행복이 무어냐고 물어본다. 정신 질환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갑자기 어떤 개념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이므로 나는 차라리 그들에게 행복에 대한 예를 들어보라고 권유한다.

한 환자가 말한다. 저녁 때 그룹으로 아래층 자판기에 내려가서 빵이나 과자를 사 먹을 때 행복하다고. 또 다른 환자는 예쁜 여자친구를 데리고 정처 없는 여행을 떠나는 것이 행복이라고 사나운 표정으로 힘주어 소리친다. 전자는 현실에서 오는 만족감을 행복이라 규정짓고 후자는 연애감정을 행복의 조건으로 내세운다. 군것질을 원하는 환자에 비하여 낭만을 꿈꾸는 환자는 어딘지 모르게 공허하고 처량한 모습이다.

슬금슬금 곁눈질을 해가면서 세 번째 환자가 말한다. 저는 정신과 의사와 간호사나 병원직원들이 병동환자들을 달달 볶지 않는 주말이 가장 편안하고 행복하다고. 식탐이 없어서인지 마른 체격에다가, 언행이 조잡하고 난폭한 다른 환자들을 요령껏 피해 다니는 평화주의적 기질의 그가 한 말이 마음에 든다. 내 몸 속에도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의 피가 흐르지 않는가 말이다.

'happy'라는 형용사는 무슨 일이나 사건이 발생한다는 뜻의 동사 'happen'과 말의 뿌리가 같다. 요즘은 뜸한 편이지만 사오십 년 전에 'How are you? 어떻게 지내세요?' 대신에 미국에서 특히 흑인들 사이에 크게 유행했던 관용어, 'What's happening?'의 바로 그 'happen'과 'happy'가 어원이 같다는 것은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일이 터지거나 사건이 발생해야만 인생이 지루하지 않고 몸과 마음이 바쁘고 즐거워지는 서구적 추세를 주말이면 주말마다 편안과 위안을 염원하는 당신과 나는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편안(便安)을 옥편은 편할 편, 편안 안이라고 싱겁게 풀이한다. 여자가 옥외(屋外)가 아닌 지붕 아래에 있어야 편안하다는 편안 안(安)은 논외로 치더라도 차제에 당신은 편할 편(便)자가 '변소(便所)'에서처럼 '똥 오줌 변'으로 쓰이는 말이라는 점에 관심을 쏟기 바란다. 편안한 마음이 행복이라면, 내 대소변 기능이 온전하고 여자가 집에 있을 때 나는 행복하다는 사연이다. 똥오줌을 가릴 줄 아는 다 큰 어린애가 엄마, 혹은 엄마 노릇을 하는 아내와 공존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태!

'comfort(편안, 위안)'은 원래 13세기에 '함께'라는 뜻의 'con'과 '힘'이라는 뜻의 'fort'가 합쳐진 말이다. 남과의 공존 상태를 넘어서 힘과 힘을 모은다는 적극적인 발상이다. 발음의 편의상 14세기에 'n'이 'm'으로 변했다. 'companion(동반자)'도 '함께'라는 뜻의 'con'이 'com'으로 변한 대표적인 케이스다.

'comfort' 또한 편안 안(安)에서처럼 상대를 여성으로 명시하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의 역할이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데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준다. '함께'라는 개념에는 반려견, 나무, 달, 금붕어 같은 대상도 얼마든지 포함될 수 있겠지만 뭐니뭐니해도 사람, 그것도 믿고 좋아하는 사람이라야 세상살이에 힘과 탄력이 생기는 법이다.

'幸福'을 네이버 한자사전에서 찾아봤다. '다행 행(幸)'은 '일찍 죽을 요(夭)'와 거역한다는 뜻의 '역(逆)'자가 합쳐져서 요절을 하지 않는 것이 다행스럽다는 의미. '복 복(福)'은 음식과 술을 잘 차려(豊) 제사(示)를 지내서 하늘이 복을 내린다는 뜻이란다. 중국식 사고방식으로 보면, 에헴, 행복하기 위하여 당신과 나는 별로 크게 할 일이 없는 걸로 보이네. 글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조상을 숭배하듯이 하늘을 향한 숭배의식을 죽자 살자 키우든가. http://blog.daum.net/stickpo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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