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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유미선 사건의 '판단'

3년 정도 사업팀에서 일을 하다 오랜만에 사회부 기자로 복귀했다. 각종 사건 사고와 LA한인회, 축제재단, 평통 등을 맡게 됐다.

'현장'에 다시 나간다는 사실에 기분 좋은 떨림을 느꼈다. 단순하게 정보만 전달하는 기사를 쓸 때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옳고 그름의 가치 판단이 기사에 내재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기자는 팩트(사실)만을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가치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하지만 기자도 감정이 있고 생각이 있기 때문에 현장에서 취재를 하다 보면 이런저런 판단을 하게 된다. 최대한 선입견을 배제한 채 취재하고 기사를 써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독자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고 또 누군가에게 피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기에 기자가 쓴 글은 바로 보도되는 것이 아니라, 게이트 키퍼(gate keeper) 역할을 하는 데스크와 편집국장 손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기사'로 독자들을 만난다.

남편을 흉기로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던 유미선씨가 1심 재판에서 유죄평결을 받았다. 사건 발생 당시에 경찰이 발표한 내용이나 검찰이 기소한 내용을 보면 누가 보더라도 유씨의 범행이 확실한 것 같았다. 이 사건을 취재하며 기자는 배심원이 된 것처럼 당시 정황들을 접하게 됐다.



재판을 통해 처참했던 사건 당시의 사진들이 공개됐는데 바닥은 피로 물들어 있었으며 피해자인 남편 성씨는 왼쪽 가슴에 칼이 꽂힌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재판정에 나와 있던 유가족은 차마 사진을 보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기도 했다. 경찰의 수사결과와 현장 증거들이 공개됐고 검찰은 배심원들을 상대로 유씨의 범행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변호인 측이 발표한 내용은 또 다른 각도에서 사건을 볼 수 있게 했다. 상식적으로 피의자의 손엔 혈흔이 있어야 했지만 그의 양손은 물론 옷도 깨끗했다. 또 맨 정신의 성인 남성에게도 힘든 일인데 만취 상태의 여성이 흉기로 남성의 가슴을 찔러 심장을 관통시킨 것도 상식적으로 쉽게 이해가 되질 않았다.

유씨의 언니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동생의 무죄를 주장했다. 가족들이 공개한 내용을 들어보면 유씨가 억울한 누명을 쓴 것으로 보였다. 현장에 있던 기자들 사이에선 '국민청원운동'을 통해 억울한 누명을 벗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발언이 나올 정도였다.

변호인 측은 성씨가 자살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른 여러 증거를 제시했다. 하지만 배심원의 판단을 유리하게 이끌어 내기엔 분명 한계가 존재했다.

배심원 평결 작업이 끝난 후 한참 뒤에서야 이 사건을 맡은 한인 변호사가 재판정에서 나왔다. 그를 돕고 있는 동료 변호사 손에는 변론을 위해 준비했던 사진 등의 자료가 잔뜩 들려 있었다. 항소할 거냐는 질문에 변호사는 "당연하다"고 짧게 답했다. 2주간의 재판 동안 3명의 검사로 구성된 검찰 측을 혼자 상대하느라 에너지를 모두 소진한 것 같았다.

유죄 평결에 대한 실망감 때문인지 발걸음은 더욱 무거워 보였다.

'판단'이라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을 뒤바꿀 수 있다. 덩달아 나의 어깨도 무거워졌다.


신승우 /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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