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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열며] '랭면'

쌀을 생산할 수 있는 논보다 산이나 밭이 많은 이북지역에서는 쌀은 귀했고 콩이나 수수, 조나 메밀 같은 잡곡은 많이 생산되었다고 한다. 내 친정어머니는 평안북도 지역에서 살다 내려 오신 분으로 우리는 사시사철 냉면을 많이 먹고 자랐다. 명절에는 떡 대신 만두를 즐겨 해 먹고, 두부나 녹두 지짐, 순대도 주로 명절에 먹곤 하던 기억이 난다. 해방 후, 이북에는 인민위원회라는 것이 생겨 땅을 많이 가지고 지주로 사시던 외할아버지는 저녁마다 끌려가 사상교육을 받고 기운이 쪽 빠져 집으로 돌아오시더라고 어머니는 그 때를 회상하며 말해 주었다. 결국 모든 토지를 몰수 당하고 맨몸으로 온 식구가 쫓겨났다는데 어디로 가셨는지는 삼팔선에 막혀 그 뒤 친정소식을 알 수 없었다고 한다.

한겨울에도 얼음 버석이는 김치국물에 면을 말아 드시던 엄마를 따라 우리도 그 맛에 익숙해 있다. 우리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던 전 날, 어머니와 먼 친척뻘 되는 숙모님은 우리 가족을 위해 정성껏 고기를 삶아 육수를 내고 냉면을 삶아 "많이 먹고 가라, 더 먹으라, 더 먹지 그러네" 하시며 자꾸만 큰 냉면 대접에 사리를 넣어주고, 또 넣어주고 해서 그것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드리느라 무척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요즈음 북한의 '옥류관 랭면'으로 인해 국민들의 자존심이 크게 훼손되어 참기 어려운 분노를 유발시키고 있음을 본다. 현 정부가 억지로 끌고 갔지만, 대외적으로는 북한의 초청으로 간 세계적인 한국 대기업 총수들의 식탁에서 면전에 대고 대기업 회장들에게 "지금, 랭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네까?" 라고 한 북한의 이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의 어이없는 몰상식한 막말 사태를 보며, 북한은 이런 곳이다. 북한 사람들의 예의 도덕 수준이 얼마나 훼손되어가고 있는지… 대를 이어 세습된 독재자 숭배와 공산사회주의라는 그들의 이념 아래 그 어떤 것도 그 우위에 있을 수 없다라고 가르친 결과가 아닐지, 섬뜩함을 느낀다. 더 큰 문제는 우리 남한 정부가 북한에 대해 어떻게 보였길래 손님으로 간 우리 측 사람들에게 저렇게 대할 수가 있을까? 심히 우려되는 부분이다.

저런 북한에 어떤 기대가 가능할까? 저들의 비핵화란 말을 어찌 믿으며, 비무장지대의 무장해제란 말에 '괜찮을까?' 걱정이 된다. 참으로 신뢰할 수 없는 저들의 말이 귀에 믿기지 않는다. 솔직하게 모든 것을 다 꺼내놓고 무력의 힘을 다 포기하고 핍절한 그들의 경제를 도와달라 하면 북에 비해 훨씬 부강한 대한민국에서 왜 아니 도와주겠는가? 현재 한국은 정부 차원이나, 종교 기관을 통하여 혹은 개인적으로 세계의 많은 나라를 돕고 있는 나라가 아닌가? 한 사람 건너면 북에 친척을 두고 있는 국민이 아직도 많이 있을 것으로 안다.



남한의 목을 비틀어 쥐고 한 손은 머리 위로 핵을 치켜들고 위협하고 있는 북한의 불온한 행태에 굽신 거리는 한국정부는 무능한 것인가? 아니면 북한의 이념과 사상을 동경하는 붉게 물든 하수 인들인가?

이선권,

남한의 경제인들을 능욕한 그가 뱉은 독설의 화살은 결국 이선권 자신과 북의 독재자에게 그대로 되돌아가 박힐 것이다.

아무래도 시원한 냉면 한 그릇 먹어야 속이 뚫리려나? 깡패 같은 자의 수욕을 참으며 찬 냉면을 삼키지 못해 목이 메었을 우리의 방북 경제인들이 안쓰럽다. 두고 온 고향의 식구들 소식을 찾아 '이산 가족 찾기' 행사를 하던 KBS방송국 마당을 눈물로 헤매 돌던 내 어머니, 바람에 휘돌아 돌던 수많은 전단지 속에 실의에 차 서성이던 어머니의 모습이 자꾸 눈 앞에 어른거려….

나도 냉면이 목구멍에 넘어가지 않고 자꾸 기어 나오려 한다.


이경애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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