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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산책] 스승님 찾아서 모시기

"그 동안 많은 영화를 보셨다는데, 그 중에서 하나를 꼽는다면 어떤 작품을?"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뭐라고 대답할까?

뭐라구, 하나만 꼽으라고? 그런 무식하고 잔인한 질문은 상대하기도 끔찍하지만, 그래도 하나를 꼽지 않으면 안 된다면, 나는 찰리 채플린의 '라임라이트'(1952년작)를 꼽겠다. 물론 여러 작품을 꼽아도 된다면, 채플린의 전 작품을 꼽겠지만.

이유는? 인생과 예술과 사랑 이야기를 이처럼 슬프고 우습고 진하게 풀어낸 영화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알아먹기 쉽고 편안하게. 무려 1인8역을 맡아 열연하고, 옛 친구 버스터 키튼을 불러내 완벽한 궁합을 보여주고, 온 식구들까지 출연시킨 것을 보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은 것이 분명한 데도, 작품에서는 전혀 그런 티를 내지 않는다. 이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튼 내 눈에는 '라임라이트'가 단연 최고의 영화다.

지금도 젊지만, 지금보다 젊었던 시절에는 '모던 타임스'나 '위대한 독재자'처럼 날카롭게 현실을 풍자하는 톡 쏘는 작품들에 감탄하며 넋을 잃었지만, 지금은 진득하게 인생과 예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채플린의 목소리가 좋다. 어릿광대 분장을 하지 않은 채플린의 민얼굴도 믿음직스럽고, 채플린이 작곡한 주제음악 '이터너리'도 저릿하게 스며든다.



내가 한창 예민한 감수성으로 영화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청춘시절에는 채플린 영화를 볼 수 없었다. 채플린이 매카시 광풍에 걸려들어 공산주의자로 몰려 미국에서 추방당했고, 그 바람에 철저한 반공 국가인 대한민국에서는 그의 작품을 상영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무지막지한 시절이 있었다.

한국에서 채플린 영화가 정식으로 극장에서 상영된 것은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였다. 나는 그보다 10여 년 앞서 채플린의 명작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일본 유학에서 얻은 또 하나의 큰 선물이었다. 마침 그 때 일본에서는 채플린의 전 작품을 일년 내내 상영하는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었다. 내게는 축복이었다. 처음 본 작품이 '모던 타임스'였는데, 단박에 넋이 나가고 말았다. 그리고는 모든 작품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봤다. 보고 또 봤다. 보면서 웃고 울었다.

채플린 영화의 자극으로, 나는 세계 영화 역사에 나오는 명작들을 모두 보겠다는 엉뚱한 결심을 하고는 헤매 다녔다. 당시 일본에는 고전 영화들을 전문으로 상영하는 예술영화관들이 제법 있었고, 싼값에 두 세 편의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채플린을 스승으로 모시기로 단단히 결심했다.

그 후로 나의 첫 스승은 단연 채플린이다. 연극을 하면서, 글을 쓰면서, 웃음과 슬픔이 하나로 결합된 그 경지를 조금이라도 닮아보려고 무던히도 발버둥 쳤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지금도 그 진한 희비극의 세계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는 것이 나의 꿈이다. 그래서 또 '라임라이트'를 꺼내서 본다. 보면서 울다 웃다 한다.

그러나 저러나, 무조건 따르고 싶은 스승이 있어, 극진히 모시는 것은 행복하고 뜻 있는 일이다. 삶의 목표와 화살표가 뚜렷하다는 뜻이므로.

생각해보면, 스승이란 내 스스로가 모시는 것이다. 그 분이 나를 제자로 여기시건 말건. 내게는 채플린 외에도 진심으로 모시는 스승이 몇 분 계신다. 그래서 늘 든든하고 고맙지만 제대로 사람 구실하며 살지 못하는 꼴이 그저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장소현 / 극작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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