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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까닭 있는 공부

까닭은 ‘어떤 일이 있게 된 이유나 사정’을 뜻한다.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마음공부(신앙과 수행)를 왜 하는지 어떻게 하는지 정확히 알고 하자는 것이다. 뜬 구름 잡는 식으로 막연하게 하지 말고.

대학시절 중학생에게 영어를 지도한 일이 있다. 당시 유행하던 “00기본영어”를 추천했더니, 우리 반 반장은 “00종합영어”를 본다며 자신도 그 책을 봐야 할 것 같다고 한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00종합영어”는 상당한 실력이 갖춘 학생들이 보는 책이다. 반에서 하위권인 필자의 학생이 “00종합영어”를 가지고 공부를 했다면 교육적 효과는 말할 것도 없고, 영어가 어렵다고 포기 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는 참 나를 찾으라고 하고 동하여도 동하는 바가 없고 정하여도 정하는 바가 없이 행동하라고도 한다.

내 수준에서 이해가 안 되거나 실행할 수 없다고 위의 법문들이 틀렸다거나 문제가 있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위 학생의 예처럼 배워야 할 내용들이 학생 수준에 비해 과하게 어려운 경우는 실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불법의 수준 높은 가르침에 비해 학생들의 수준은 어떠한가?

두 조직폭력배 사이에 큰 싸움이 벌어졌다. 술집 여종업원의 “너의 조직이 요즘 상대 조직에게 밀린다며?” 이 한마디가 원인이었다고 한다. 시사프로그램에서 이 주제를 다루던 사회자와 패널들이 역시 조폭이라 유치하다며 혀를 찬다.

“너, 나와” “멍텅구리” “웃기로 앉아있네. 병신 같은 게” 회의 중에 나온 말들이다. 어디에서 벌어진 일들일까? 전직 판검사님과 박사님들이 즐비한 국회 상임위원회 회의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사정이 이러해도 조폭이 유치하다고 비웃을 수 있을까? 세상 지식에 관해서는 전문가가 수두룩하지만, 수양력이나 지혜의 관점에서 보면 한없이 유치하고 어리석기도 한 존재가 인간이다.

설법시간에 쉽게 들을 수 있는 정견(正見, 불교 수행법인 팔정도의 하나)을 해야 한다거나, 관조(觀照)로 깨쳐 얻으라거나, 진공으로 체를 삼고 묘유로 용을 삼아 마음을 작용하라는 말들은 아무나 마음만 먹으면 실행 할 수 있는 만만한 내용들이 아니다.

설법의 내용이 마음에 와 닿고 이해가 되면 그대로 수행하면 된다. 만약 이해하기 어렵거나 본인 수준과 동떨어진 느낌이 들면 본인이 수행할 수 있을만한 수준으로 표준을 수정해야 한다. 도가에서 스승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것도 어려우면 아무리 근사한 법문이라도 일단 공부 표준에서 제외하는 게 맞다.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은 막연하고 수준에도 안 맞는 내용을 머릿속으로만 수행하는 것이다. 수행의 실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수행의 원동력인 신심(信心)을 상하게 한다.

오른뺨을 치면 왼뺨을 돌려 대고 원수도 사랑하라 하신 말씀을 관념적으로 ‘그래, 맞는 말씀이야’ 하고 넘어간다거나 혹은 실행하기 어렵다고 불평만 할 것이 아니라, 먼저 오른뺨을 맞았을 때 화 내지 않고 원수를 미워하지 않는 단계부터 순서 있게 공부해 가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00종합영어”를 들고 다니며 자위하는 어리석은 학생이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양은철 교무 / 원불교 LA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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