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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수 칼럼] 역발산



중고등학교 다닐 때 보면 반에서 누가 제일 쎈지 안다. 서로 힘겨루기를 하거나 반 전체가 격투기 토너먼트를 한 것도 아닌데 자연스레 실력자가 나타나고 누가 최강인지 정평이 난다. 다들 그와 다투거나 그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 한다. 친해지려고 그의 주변에 얼씬거리며 그의 환심을 사려고 하거나 아부하기도 한다. 가만 생각해 보면 힘세고 싸움 잘 하는 강자를 선망하고 그 주위에 집결하는 것은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동물 세계의 법칙과 별로 다를 게 없다. 하긴 원초적 인간 사회는 힘센 사람의 세계였다. 보통 사람보다 월등하게 힘이 세면 장사라고 하고 우리가 어려서는 천하장사나 항우장사는 경외의 대상이었다.
요즘 한국에서 천하장사는 씨름판에서 우승자에게 주는 타이틀이다. 미국에서 장사로는 전설적인 거인 벌목꾼(lumberjack) 폴 버니언(Paul Bunyan)이 있다.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역사상 최고의 역사(力士)는 단연 삼손이다. 그는 맨손으로 사자를 찢어 죽였고 블레셋 성전의 기둥을 맨손으로 무너뜨려 수많은 블레셋인과 목숨을 같이함으로써 복수를 했다. 전통적으로 올림픽 역도 경기 무제한급 우승자에게 세계에서 제일 힘 센 사람이라는 칭호가 주어진다. 매년 ‘세계에서 가장 힘센 사나이 대회(World’s Strongest Man competition)’라는 시합도 있어서 몇 개 부문의 경쟁 점수를 합산해서 세계 최강 장사를 가려내기도 한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장사 중의 장사는 단연 초 패왕 항우(項羽)다. 중국 한나라 유방과 천하를 놓고 자웅을 겨루던 인물이다. 그의 이름 앞에는 ‘역발산 기개세(力拔山 氣蓋世)’가 으레 따라붙는다. ‘힘은 산을 뽑고 기개는 세상을 덮을 만하다’는 뜻이다. 아무리 중국인들이 과장 표현을 잘 쓰고 허풍에 능하다 해도 산을 뽑을 만한 힘은 가히 초인간적인 어마어마한 힘이다. 이런 항우에 필적할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아니 미래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상 장사로는 임꺽정을 치고 그가 맨손으로 나무를 뿌리째 뽑았다는 일화도 읽은 적이 있지만, 나무를 뽑는 힘을 어찌 산을 뽑는 힘에 견주랴. 어른과 아이의 비교다. 이것이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면 항우는 2000년도 훨씬 전에 중국 땅에 나타난 외계인이다.
과장된 표현의 대표급으로는 당나라 시선(詩仙) 이백을 꼽는데 근심으로 하얗게 센 머리카락의 길이가 삼천 길이나 된다고 하였다(白髮三千丈). 또한 ‘물줄기 내리꽂아 길이 삼천 척, 하늘에서 은하수 쏟아지는가(飛流直下三千尺 疑是銀河落九天)’라고 하여 폭포가 흘러내리는 모양을 호방하면서도 낭만적으로 묘사했다. 삼천 척은 900m이고 세계 최대 브라질의 이구아수폭포의 낙차가 겨우 70m라니 과장도 이쯤 되면 예술이다. 중국 역사책에는 삼국지의 관우와 장비는 가히 홀로 만 명을 대적할 수 있는 장수라고 하여 만부부당(萬夫不當)이라고 했다. 일만 명의 남자가 당하지 못할 정도로 강하다는 뜻이다.
김삿갓의 많은 일화 중에 항우에 관한 것이 있다. 김삿갓이 어느 산골 서당에 들렀을 때 훈장은 자리에 없고 아이들의 숙제를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다. 숙제의 제목이 ‘역발산’이었는데 그중 하나가 “남산 북산 산신령들이 말하길(南山北山神靈曰) 항우 있을 당시 산 되기 어렵더라(項羽當年難爲山)”. 김삿갓이 그 아이 실력에 놀라 다른 아이 것을 보니 “오른손 왼손으로 막 뽑아 공중에 던지니( 右拔左拔投空中) 평지 여기저기에 새 산이 많다(平地往往多新山)”. 김삿갓이 어린 학동들의 신통한 글재주에 자못 감탄하여 슬쩍 그곳을 떠나며 일필휘지로 한 수 남기기를 “항우가 죽은 뒤론 장사가 없으니(項羽死後無壯士) 누가 산을 뽑아 공중에 던지려나(誰將拔山投空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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