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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칼럼] 인생, 수지맞는 장사잖소


꽃샘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을 바라보며 혼자 커피를 마시고 있다. 물러가는 듯하더니 다시 찾아온 쌀쌀한 날씨에 오후 산책의 즐거움을 잠시 미루고 저녁 어스름 내리는 창밖을 바라본다. 손에 감싸 쥔 찻잔의 감촉과 코끝에 와닿는 커피 향 그리고 텅 빈 집안 가득한 정적을 가르는 시계 초침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익숙한 소음들. 이렇게 말하고 보니 하루의 마무리가 꽤 낭만적이고 풍요로운 듯해서 내심 뿌듯하다.

생각해 보면 풍요로운 인생이란 게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풍요’가 주는 의미는 사람마다 제각기 다르겠지만, 행복의 근원이 마음에 있다고 믿는 나에게 ‘풍요’란, 마음을 비우거나 단순화시킬 때 얻는 것이다. 하지만 빈곤 속에서 어찌 풍요로움을 즐기는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먹고사는 문제로 코피를 흘리는 사람에게 ‘풍요’를 즐기라고 하는 것은 뜬구름을 잡으며 살라는 말처럼 들리기도 할 것 같다.

미국에 유학하러 왔던 시댁 조카가 삼 년 전부터 교제했던 사람과 결혼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결혼날짜를 한 달 정도 앞두고 일이 터졌다. 공부를 마치면 귀국할 것으로 기대했던 부친의 극심한 반대를 극복하느라 미처 직면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표면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상대의 생활 환경이나 가정형편, 가족력이나 학력 등 많은 것들이 거짓이었다. 어린 나이에 부모 따라 이민 와서 사느라 생활고를 겪은 탓일 거라며 상대를 이해하려는 조카 덕분에 결혼 전선에는 변함이 없었다.

주위의 만류에도 꿋꿋이 버텨냈었지만, 시간이 흐르자 결혼을 물질적으로 계산하는 상


대의 타산적인 성품이 조카의 눈에도 보였다. 거짓으로 미화시켰던 과거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상대의 집착과 행동이 지금 누려야 할 즐거움을 방해하는 큰 문제라는 걸 깨달았던 조카는 결국 날짜를 며칠 앞둔 결혼식을 포기했다. 딱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이 붙들고 늘어지기보다는,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 때로는 과감히 버려야 할 것을 선택해야 하는 것도 인생 지사다.

누구나 행복하고 풍요롭게 살기를 원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사람은 대부분 자기중심적이다. 내가 변하기보다는 내 주변의 사람들이 노력해서 변해 주기를 바란다. 오랜 세월 내 방식으로 살아온 내가, 누군가의 입맛에 맞추어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는 것처럼, 남도 쉽게 변할 수 없다는 것은 진리인데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대중가요 중에 ‘타타타’라는 노래가 있다. 그 노랫말에 이런 내용이 들어있다.
“바람이 부는 날엔 바람으로, 비 오면 비에 젖어 사는 거지. 그런 거지. 산다는 건 좋은 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노래 마지막 부분에 마치 인생을 달관한 듯, 호탕하게 웃는 소리가 나오는 것 때문에 많은 사람이 한 번 듣고도 쉽게 기억한다. 노래 제목인 ‘타타타’는 산스크리트어로서 의역하면 ‘여여(如如)’라는 뜻이다. 여여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진실하게 보는 것이다. 즉 사사로운 의견이나 개인의 판단력에 상관없이 그 실체를 왜곡하지 않고 묵묵히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타타타’의 의미를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한평생 아득바득거리며 살 필요도 없겠구나 싶다. 알몸으로 태어나서 사는 동안 내가 건진 것이 어찌 옷 한 벌뿐이랴. 인연을 만나서 가정을 꾸리고 가족까지 얻었으니, 내 인생은 이미 수지맞은 장사가 아니던가.
삶은 어떤 사람에겐 괴로움이고, 어떤 사람에겐 즐거움일 수 있다. 삶 속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그렇게 일어날 일이었구나, 하는 마음으로 사실을 여여하게 받아들인다면 인생의 수레바퀴는 제 갈 길을 따라 잘 굴러가지 않을까. 이별 후에 홀로서기 하는 조카에게 해주고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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