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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수 칼럼] 개념 없는 대통령

얼마 전 TV 쇼에서 이런 장면을 보았다. 두 젊은이가 탄 차가 적색 신호등에 멈춰 섰다. 그들 앞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던 차의 창문이 열리면서 운전자가 담배꽁초가 담긴 재떨이를 창문 밖으로 털어버린다. 뒤의 젊은이 중 하나가 하는 말. “야~ 정말 쟤는 왜르케 개념이 없냐.”

흔히 쓰는 말도 시간이 가고 세태가 바뀌면 달라진다더니 ‘개념’이라는 말의 의미도 달라졌다. 내가 아는 개념은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이다. 하지만 요새는 ‘개념이 없다’가 무식하거나,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거나, 혹은 많은 사람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짓을 뻔뻔스럽게 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특히 젊은 층에서 많이 쓰는 유행어다. 이런 얘기도 있다. 선배가 돈이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 만날 때면 매번 밥 사달라는 후배를 마지못해 식당에 데리고 간다. 자기는 제일 싼 메뉴를 고르고 “넌 뭐 먹을래” 하니까 메뉴에서 엄청 비싼 놈을 고른다. 개념 없는 후배다.

신세대들이 쓰는 ‘개념 없다’가 어쩌면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에 걸맞은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지난 2년간의 치적을 보면 천방지축(天方地軸), 좌충우돌(左衝右突)이라는 두 사자성어가 알맞은 것 같다. 능력이 없는 사람이 종작없이 덤벙이는 일을 천방지축이라고 하고 아무에게나 또는 아무 일에나 함부로 맞닥뜨리는 것이 좌충우돌이다. 미국 상원에서 최고 실력자인 다수당 대표(Senate Majority Leader)를 지낸 후 2년 전에 은퇴한 전직 네바다 출신 민주당 상원 의원 해리 리드(Harry Reid)가 지난주 뉴욕 타임스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은 트럼프라고 했다. 미국 역사상에 더러 나쁜 대통령도 있었지만, 트럼프 다음으로 두 번째 나쁜 대통령은 트럼프 근처에도 못 온다고 했다(“We’ve had some bad ones, and there’s not even a close second to him.”). 트럼프는 거짓말하고, 속이고, 그와는 합리적인 대화가 불가능하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해리 리드가 누구인가. 4년 동안 네바다 출신 미국연방의회 하원 의원을 지낸 후 1987년 상원 의원으로 당선되어 2017년까지 30년을 상원에서 보낸 미국 정계의 거목이다. 그뿐만 아니라 8년 동안(2007-2015) 민주 공화 양당을 통틀어 상원에서 제일 영향력 있는 지위인 다수당 대표로 미국정치의 핵심에 있던 인물이다. 그가 상원에 있는 동안 레이건을 필두로 다섯 대통령을 거쳤다. 그의 명성과 경륜에 비추어 리드가 단순히 트럼프가 공화당 대통령이라고 해서, 또는 트럼프의 발언이나 행동이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파격적인 면이 있다고 해서 그를 비난하거나 매도하려고 한다고 보기 어렵다.



리드는 트럼프가 부도덕(immoral)하진 않지만, 무도덕하다(amoral)고 했다. 우리가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마땅히 지켜야 할 행동 규범에 어긋나는 행위를 부도덕하다고 한다. 무(無)도덕은 도덕 관념의 부재다. 도덕 관념이 없는 곳에는 선과 악, 옳고 그름의 판별이 불가능하다. 무도덕한 사람은 도덕에 어긋난 짓을 하고도 그 행위가 잘못이라는 것을 모른다.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사기를 치는 일이 양심하고는 무관하고 거리낌이 없는 것이 ‘amoral’이다. 예컨대 트럼프가 내 세우는 ‘미국 우선주의’에 어긋나면 어떤 정책도 그리고 외국과의 조약이나 동맹도 헌신짝처럼 내버릴 수 있다는 말도 된다.

트럼프는 최근 멕시코 국경 장벽예산안 승인을 놓고 민주당이 다수인 미국 하원과 대치 중이다. 현재 진행 중인 연방정부의 ‘셧다운’이 몇 년이 가도 상관없다고 하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해서라도 장벽 건설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지난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하면서 트럼프에게 닥친 곤경이다. 미국 하원의 임기가 2년인 것은 민의를 정책에 신속히 반영하기 위한 미국 헌법 초안자들의 의도였다. 공화당이 지난 선거에서 하원을 잃은 것은 민의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는 트럼프에 대한 심판이라고 봐도 된다. 이를 깨닫지 못하고 민의를 거스르는 정책을 고집하는 트럼프는 요새 신세대 말을 빌리면 개념 밥 말아 먹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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