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태종수 칼럼]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최근에 우연히 ‘칼리지 인사이드(College Inside)’라는 인터넷 웹사이트에 들어간 일이 있었다. 미국에 공부하러 온 한국 유학생들이 주로 왕래하는 곳이다. 그중에 ‘한국에 가면 그리워지는 미국 문화는?’이라는 제목의 글이 내 시선을 끌었다. 미국에서 살다가 미국을 떠난 후 그리워지는 것 중에 이곳 사람들의 인사 습관을 들었다.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도 나누는 미국 사람들의 눈인사나 격식 없는 친절한 인사 습관이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차차 익숙해진다고 했다. 이런 인사 습관을 모르고 한국식으로 그들을 대하면 정 없고 무심한 인간으로 보이게 될 수도 있다고 했다.

한국전쟁 때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은 미국의 참전과 희생으로 혈맹 우방이던 한미관계가 문재인 정권 집권 후 하루아침에 소원해지고 반미 정서도 높다고 하는 때다. 모처럼 고국 동포에게서 듣는 이런 긍정적인 이야기는 미국에 반백 년 넘게 살아온 나 같은 이민자의 귀에는 솔깃하고 싫지 않게 들려온다. 내가 미국에서 산 세월이 한국에서 산 날들보다 훨씬 많으니 이곳도 내 나라라고 작정한 지 오래다.

여러 해 전에 탈북 난민으로 중국, 라오스를 거쳐 미국에 온 북한 청년이 방송 매체와 인터뷰에서 미국에 살면서 제일 인상 깊은 것이 이곳 인사 습관이라고 한 일도 있었다. 그가 말하기를 “제가 미국 와서 제일 처음에 인상 깊었던 것이 미국인들의 인사였습니다. 북한에서는 먹고 살기가 바쁘니까 인사도 잘 안 하고 아는 사람도 본척만척합니다. 미국인들은 눈만 마주쳐도 인사하고 날씨가 어떠냐 어디에 사냐 이런 대화를 이어갑니다. 이름도 물어보고요. 북한에서는 전혀 겪어보지 못한 문화였으니까요. 어색했어요.” 그는 이를 두고 ‘발달된 나라의 민족 문화’라는 표현도 썼다.

서로 생전 일면식도 없는 사이일지라도 마주칠 때 눈인사를 하거나 ‘하이’ 또는 ‘굿모닝’ 하는 게 미국 사람들이다. 우리 부부는 아침마다 근처에 있는 쇼핑몰에 가서 운동 삼아 걸으며 십 년 넘게 하는 현장 체험이다. 쇼핑몰에서 자주 마주치는 단골들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처음 보는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 두 늙은이의 걷는 속도가 느리다 보니 뒤에서 우리를 지나쳐 가는 경우가 허다하고 이런 때도 그들은 ‘굿모닝’, ‘헬로우’, ‘익스큐스미’하며 우리 곁을 지나간다. 한국인이나 동양인들은 대개 말없이 지나치는 게 보통이다.



미국에서는 개인의 공간(personal space)을 존중해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다. 그러기 때문에 상대방의 앞이나 옆을 가까이 지나쳐 갈 때 실례한다, 미안하다 등의 말을 하는 것이다. 부딪치거나, 상대의 발을 밟거나 어떠한 신체 접촉도 피해야 한다.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하게 되면 사과하는 것이 예의다. 내가 미국에 처음 와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월그린 약국(Walgreens)에서 생일 카드 진열대 앞에 서 있는 내 앞을 지나치던 미국인이 “실례합니다. (Excuse me!)” 하던 일을 잊지 못한다. 처음 당하는 일이라 그때는 얼떨결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을 지나칠 때 이런 말로 양해를 구하는 그들의 문화를 모르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경험해 본 일이 없는 일이었다.

한국에서야 남의 앞을 부리나케 가로질러 가며 미안하다고 말하는 일 없고, 심지어 부딪치거나 복잡한 장소에서 남을 밀치거나 발을 밟고도 태연하기 일쑤다. 어쩌다 재수 없어 고약한 인간에게 걸리면 적반하장으로 가해자가 오히려 눈을 부라리거나 막말을 내뱉는 망신스러운 일을 당할 수도 있다. 은퇴 후 애틀랜타에 와서 살면서 교포들 많은 한국 음식점이나 식품점에 가면 이곳 공공의 예절에 무지하고 무례한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라야 하거늘.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