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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흡 칼럼]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신의 말씀이 곧 진리요 모든 것이 신의 뜻대로 행해졌던 중세시대, 그 암흑의 시대에 살면서 하나의 평범한(?) 의문에서 출발해 동시대의 철학관을 뒤집어버린 사람이 있다. 르네 데카르트다. 당시까지의 관습을 깨고 프랑스어로 쓴 최초의 철학서인 그의 저서 <방법서설> 을 통해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불후의 명제를 탄생시킨 그는 ‘근대철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진다.

데카르트는 또한 대단히 유능한 수학자였다. 오늘날 모든 수학 교과서를 뒤덮고 있는 x, y축 좌표를 고안해 내고 해석기하학을 탄생시킨 뛰어난 수학자였으며 양수, 음수의 개념을 직선 하나로 명쾌하게 정리한 천재였던 것이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 에서 이렇게 말한다. “천천히 걷되 곧은 길을 따라가는 사람은, 뛰어가되 곧은 길에서 벗어나는 사람보다 훨씬 더 먼저 갈 수 있다.” 이 글은 정확한 방법론 없이 학문을 탐구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는 데카르트의 생각을 잘 대변한다. 데카르트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권위를 의심했고, 전통 관습 상식 통념을 의심했고, 개인의 주관적 편견과 선입견을 의심했다. 인간의 다섯 감각은 물론, ‘2+3=5’라는 수학적 진리마저 의심했다.

데카르트는 세계에 대한 지식을 확실한 기초 위에 다시 세우고자 했다. 모든 지식을 가능한 한 작은 부분으로 나누고, 단순한 것부터 복잡한 것으로 쌓아 나가고, 모두 열거한 뒤 빠뜨린 건 없는지 검토했다. 그는 아르키메데스의 점처럼 확고한 철학의 출발점을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을 의심한 뒤 남는 단 하나의 진리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회의했다”고 썼지만, 이 세상엔 여전히 회의할 게 수두룩하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자기 머리로 모든 걸 다시 회의해야 할 운명일까. 이른바 ‘합리주의’의 태두로 불리는 데카르트는 최소한의 합리성을 갖춘 사람이었기에, 자기주장도 회의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실제로 데카르트는 <방법서설> 머리말에서 모든 사람들이 ‘자기 머리’로 생각할 자유를 강조했다. “이 시론은 본받을 만한 것도 있지만 본받지 않는 게 더 좋을, 다른 이야기도 들어 있는 하나의 우화다. 내가 걸어온 오솔길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내 삶을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서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데카르트가 제시한 ‘철학의 제1원리’는 세상 사람들 수만큼 다양한 ‘존재의 제1원리’가 되었다. “나는 OO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란 말은 무수한 변주가 가능하며, 실제로 숱한 패러디를 낳았다.“나는 폭로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장 주네) “나는 반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알베르 카뮈) “나는 소비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장 보드리야르) “나는 접속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제레미 리프킨).

“나는 OO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지상의 70억의 인간은 모두 자기 존재이유를 주장하는 게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미식가라면 “나는 먹는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독서광이라면 “나는 읽는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몽상가라면 “나는 꿈꾼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등등…. 데카르트는 자기 이야기를 진솔한 우화로 표현하여 누구나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다는 선례를 보여 주었기 때문에 위대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정체성이 허물어지고 있다. 조국을 지키려다 공정과 정의라는 진보의 가치를 잃어버렸다. 조국의 위선을 옹호하는 대통령을 바라보는 진보의 내면 풍경은 우울하다. 생각을 달리하는 동지들을 ‘반역자’, ‘밀정’이라고 공격하는 광기에 합리주의자들은 둥우리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내부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광장은 전체주의의 감옥일 뿐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조롱당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세계는 쓸쓸해질 것이다.

자신이 내린 판단의 오류 가능성을 엄정하게 점검하는 것은 성숙한 정치지도자의 기본자세다. 17세기의 회의주의자 데카르트는 마침내 자신의 감각까지 의심했다. 이 철학 물리학 수학의 천재는 눈앞의 현실세계가 꿈인지 생시인지를 확신할 수 없어 번민했다. 이렇게 자신을 향한 지독한 회의 속에서 광신을 이겨낸 합리적 이성의 시대인 근대가 탄생했다. 자기 확신으로 무장한 채 비판을 봉쇄하고 단죄하는 세력의 무도한 행태는 광신도의 마녀사냥이다.

조국의 친구인 진중권은 고백한다. “신뢰했던 사람들을 신뢰할 수 없게 됐으며, 존경했던 분들을 존경할 수 없게 되고, 의지했던 정당을 믿을 수 없게 됐다. 이런 상황이 되니 윤리적으로 완전히 패닉 상태다.” 그는 “진보가 거의 기득권이 돼버렸다는 느낌이 든다”고 참회했다.

일찍이 전체주의에 맞섰던 칼 포퍼는 이렇게 말했다. “지상천국을 건설하고자 하는 모든 시도는 지옥을 만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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